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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droid] 파이널 판타지 6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4. 7. 8. 02:15

 

 ※ FF6을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는 본문이 난해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필력부족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동호회 가족분들 - 죠커님, 감꼭지님, 햐안거성님 외, 많은 고전RPG 팬들에게 바칩니다. (2014년 3월 작성)

 ※ 누설이 들어 있습니다. 누설 없이 게임을 플레이 하실 분들은, 꼭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당부드립니다.

 

 1. 서론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가면서, 스스로가 "실패한 인생"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실을 회피하는데 매우 능숙한 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생일 뿐, 개인적으로 만족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자위했습니다.
 
 대체 어느 날 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를 끈기 있게 해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계속 부담감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방법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언젠가 하겠지 라고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가 열개가 되고, 백개가 되어갔습니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적어놓는다는 나의 버킷리스트는, 산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손가락만 담그고, 맛만 보는 일상이 계속되었고, 무기력한 하루하루는 이어져 갑니다.
 산다는 것은 이토록 경이로운데, 즐거운 것은 이렇게나 가득한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책은 밤마다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나는 행복한 경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 본론
 

 영화 토이스토리3이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낡은 서랍 속에서 행복했던 추억을 끌어안는 느낌이랄까요.

 

 파이널판타지6 의 존재란 - 추억의 시공간 속에서 너무나 즐거웠던 것을 발견해낸 기분이었습니다.

 2014년에 파이널판타지6 한글판이 발매되었다고 했습니다. 조작감이 이상하다는 악평도 자자했습니다.
 추억보정인지, 애정보정인지,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그 녀석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세리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지... 20년이 지나서,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 격인 티나. 게임 시작부터 기억을 잃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소녀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립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방황하고,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티나를 구원해 주는 것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아. 계속 살아가다보면 알게 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의지를 보여줘."

 티나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세계는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싸울 힘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티나.

 그녀는 싸움 대신에, 작은 공동체를 돌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타협하고 맙니다.

 곧이어, 무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결코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란, "비겁한 변명만 하는", "입만 살아있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티나는 마침내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한 마디.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은 충분한거에요."
 마음 한 편이 아주 따뜻해졌습니다. 성공한 인생이냐, 실패한 인생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고, 그 길을 걸어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지 알려줍니다.
 
 나는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 그제서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의미한 일들을 매일같이 열심히 반복하면서,

 발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끝없이 괴롭히며,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프레임을 바꿔야 했습니다. 괴테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을 "할 수 있는,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 로 대해야 했습니다.

 
 .
 
 세리스 장군의 이야기. 어린 시절에, 감동의 오페라 씬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 였습니다.
 제국에게 버림 받고, 조직에게 이용만 당하며 살아왔지만,
 때로는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린 채, 절벽에서 몸을 던지지만,
 그런 절망으로 가득차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때로는 행복을 만날 수 있다고 그녀는 여전히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나, 그 때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말로 희망은 존재했던 거야."
 보잘 것 없는 가능성에서 출발했고, 앞이 시커멓고 깜깜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계속되는 발걸음,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섀도의 이야기. 완전히 재발견하게 된, 정말이지 무거움으로 가득차 있는 캐릭터 입니다.
 거의 대사가 없지만, 티나에게만큼은 조언을 건넵니다. "답은 결국 스스로가 찾아낼 수 밖에 없는거야."
 밝혀지는 섀도의 과거사들은 슬픔의 무게로 완전히 가득차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고, 그 죄책감을 안고서 살아가는 비운의 인생.

 
 친구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그야말로 나의 깨끗함을 위해서 타인의 간절함을 짓밟았다는...
 그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섀도는 관계를 차단한 채, 스스로를 더럽히는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땐,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합리화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난 선택을 했을 때, 인간의 후회는 얼마나 깊숙하게 마음에 남는지,

 섀도는 전적으로 보여줍니다.

 악몽에 시달리는 무의미한 인생의 결정체가 되고 말았지요.
 
 어린 시절에는 몇 번이나 돌려본 파이널판타지6의 엔딩장면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섀도는 최후의 엔딩에서, 붕괴되는 마지막 던전에 자청해서 남거든요.
 이제서야, 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섀도의 마지막 대사.
 "이제 친구인 자네 곁으로 가겠네. 따뜻하게 맞이해다오."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가슴 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함께 신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순간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행복이라는 것을.
 
 .
 
 할배 스트라고스의 마지막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미 늙어버려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추억팔이만 하고 있을 때, 손녀 릴름이 기회를 줍니다.
 전설의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이번에도 또 그 때처럼 도망만 다닐꺼에요? 이 대사들은 저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드디어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데도 가만히 있을꺼냐고요."
 현명한 손녀딸의 격려에 힘입어, 스트라고스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젊고 무기력한 인생보다는, 늙고 꿈꾸는 인생이 얼마나 환상적일 수 있는지 배워갑니다.
 접어두는 인생이 아니라, 부딪히는 인생으로 살아갈 것을 한없이 다독이며 응원하게 됩니다.
 
 .
 
 전설의 트레져헌터 록의 이야기. 어쩌면 도적B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한 이야기.
 전반부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캐릭터지만, 후반부에서는 가장 늦게 참가하는 도적 록.
 그는 인생에서의 목표가 오직 하나입니다. 전설의 보물을 찾아서, 사랑하는 이를 되살리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에게는 다른 어떤 것들도 부차적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마침내 일시적으로 잠깐동안,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록은, 죽었던 연인 레이첼의 진심을 짧게나마 듣게 됩니다.
 "고마웠어요. 당신과 함께라서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이제 행복하게 살아줘요."
 록의 꿈은 허무하게 부서지고 말았지만, 원하는 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저는 록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단 하나만을 생각하고, 전력으로 노력하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인생.

 그것이 이 게임이라는 추억 여행에서, 다시 발견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3. 결론
 
 게이머로서 한계를 느끼며, 심각한 좌절에 빠져있었습니다. 거의 방전상태였습니다.
 참 좋아하는 영화나 여러가지 책들도 더 이상 보지 않았습니다.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0시간 동안 가슴 설레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재충전을 하고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저것 판을 벌인다는 게,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밥을 먹을 때는 밥만을 생각하는 것이며,
 밥을 먹고 하고 있는 것이, 나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잊고서 미친듯 쏟아부어 나갈 때,
 인간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A도 하고 싶었고, B도 해보고 싶었으며, C가 멋있어 보이고, D가 좋아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상관 없이,
 우리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맛있게 음미하고,
 청소를 할 때, 청소에만 열심히 집중하고, 목욕을 할 때,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듯,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기쁨과 행복도 맞은 편에서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을, 집착해 왔던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을 생각하기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배워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좋은 게임이 있어줘서... - fin - / 2014년의 어느 날. /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