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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바이폴라로 매우 고생하고, 끝내 정신 장애 판정을 받으시고, 폐쇄 병동을 경험하였습니다.

 나는 그 경험조차도 값진 것이었다고 받아들이기까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에 썼던 이 관해를 향한 기록은, 다시 읽기가 매우 괴로웠기에, 오랜 기간 비공개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이 기록조차도 개인의 역사로서도 귀중한 것이기에, 다시 공개합니다.

 

 초안 2014. 08. 15. / 가독성수정 2019. 11. 13.

 

 표지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 "너에게 닿기를" 입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관계 속에서 웃어가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때때론 상처입히고, 다독이며 사는 것이라고.

 (사진은, 순정만화 [너에게 닿기를] 구글링 이미지 및 작가 시이나 카루호 椎名 軽穂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아. 저는 정신장애 어머님을 병시중을 하고 있는 일반인이며, 의사가 아님을 밝혀둡니다.

 -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흔히 말하는 조울증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요한 테마입니다.

 - 누군가가 중증의 혹은 급성의 조울증이라면, 반드시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 단편 모음집으로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울증 급성 기간 중 병시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루어지기 전에 가능해보였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It always seems impossible until it s done)

 - 넬슨 만델라"

 

 관해 일기 - 제1화 세상에 단 한 사람, 어머니.

 

 행복하게 살아가던 제게 아주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2014년 8월 15일 저녁 10시경.

 일찍이 거의 들어본 적 없었던 매우 무거운 아버지의 목소리...  "너 지금 어디냐. 엄마가 쓰러지셨다. 얼른 와라."

 이른바, 88만원 세대, 아니 더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44만원 세대로 살아왔던 저... 그럼에도 행복을 만끽해왔던 인생.

 저는 일하던 가게에서, 대신 일해줄 사람을 구해보고자 노력했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밖에 없는 꽤 넓은 방. 그리고 불쾌한 공기들. 그 고요하고 기분 나쁜 적막함을 기억합니다.

 

 터질 게 드디어 터졌습니다. 우울증에서 한 단계 올라간 느낌, 조울증 증상으로, 그동안 계속 기분이 올라간 상태였던 어머니 였습니다.

 주변의 지인분들이 봐도 "조증"같다고 평가할 정도니까, 말 많고 자랑 많은 아줌마 였겠지요.

 그런데?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집에서 크게 싸운게 분명했습니다. 조증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 입니다.

 

 고성이 오가고, 어깨를 밀치는 것을 비롯해서, 심한 몸싸움이 오고 가면서, 끝내 실신한 것처럼 실려가 버린 상황입니다.

 

 얼핏 아버지께서는 매우 차분해 보였지만, 상태의 심각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응급차를 타고, 봉생병원이라는 커다란 종합병원에 실려 갔는데, 건강에 크게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죽은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동생은 차에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여기까지가 끝이라면, 얼마나 행복한 동화일까요.

 

 자, 여하튼, 저는 아버지의 말이 그렇게 무겁게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큰 안심이랄까, 위안이랄까...

 자정이 지날 무렵에는 다시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저는 배운 적도 드물고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CT촬영 결과는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큰 사건을 겪어가며, 확실한 것 몇 가지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 검토 결과, 어머니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조울병 에서 이 점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 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 흔히 말하는 조울증은, 자가조절에 실패하면, 매우 위험한 병입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환자 사례 중, 대략 15% 남짓 정도 완전한 관해(치유)가 가능하며, 지속적인 관찰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기전입니다.

 

 여기까지 사례를 분석해놓고, 다시 이야기를 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119 응급차를 타고 실려 갔다가 살아있는 상황. 간단히 말해, 어머니는 잠시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쇼크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네 가족 전체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 힘들고 괴로운 그 외줄타기 앞에 서서, 지금은 그 무엇도 아직은 모른 채로, 그 날 밤 단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다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몽이라면 끝날 것 같았으니까요.

 이만 자자, 라는 그 지친 한 마디와 함께 말이지요.

 괜찮아 질꺼야 라는 말에 힘없이 기대가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2014년 8월 15일은 자정이 넘어서야 저물어 갔습니다.

 

 아주 지독하고 괴로운 일상과의 전쟁. 그 이야기들을 저는 이제부터 좀 더 남겨놓고자 합니다.

 증상의 완전한 관해를 위해서 수 천, 수 만번이라도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그 날 밤부터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마치, 그 과정이 어린 시절 읽었던 존 버니언(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겹쳐보여서,

 감히 관해역정 이라는 임시제목을 정하고 이렇게 매 화 일기를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누군가가 비웃거나 조롱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수천, 수억의 황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제게는 그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이 귀중하지 않겠느냐고, 늘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세상에 단 한 사람 이니까요.

 

 여기서부터가 또한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상태가 위중했기 때문에, 1년 이상의 관찰이 필요하며,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관해(寬解)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던 희망.

 

 말하자면, 의사 선생님 소견서 끝머리에 붙어 있었던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법이지만, 수년 동안은 관해 상태로 지내왔다고 긍정적인 점도 알려주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제 수 천, 수 만번, 답을 직접 찾아 나서서 곧바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관해란 무엇입니까?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꾸준한 약물 치료가 뒷받침 된다면, 쇼크(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정상적인 일상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요. 차라리 저로써는 다행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류머티즘으로 잘 굽혀지지도 않던 아픈 다리로 인해 힘들어 했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런 저를 어머니가 업고 다니면서 키워왔다면,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 오늘날은 내가 바로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고쳐내야 겠다고 늦은 밤 눈물을 울컥 삼켜가며, 다짐을 잡아갔습니다.

 

 그래요. 원래부터가 우울증이고, 조울증이 그런 병입니다. 병원에서 50%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가족들도 50%를 도와가야만 하는 병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려고 노력하고, 어머니의 눈높이에서 현실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려운 길, 혹은 좁은 길이지만, 낫는다면, 그래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그 동화같은 아름다운 길. 저는 포기하기도 싫었고, 아직 포기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세상 모두가 외면하고 비난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어머니의 완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 년간 틈틈히 애정을 담아왔던, 이 곳 블로그 방문자가 100명 이하로 떨어지더라도 괜찮습니다. 나는 한 사람, 어머니를 최소 1년 동안 관찰하며 함께 다니며, 살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재능에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바쁘시거나, 또 제가 여력이 닿는 틈틈이만 글을 쓰는 편이므로, 오늘의 이야기는 서론을 겸해,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 시북 (허지수)

 

 .

 

 이 글을 써놓고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머님의 인지력은 꾸준히 저하되었고, 치매 판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현실은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었으며, 훨씬 무겁고 참혹하고 잔인했습니다. 그 흉터를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방치상태에 빠져 있던 블로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여전히 100명 이상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알 수 없이,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조울병 환자의 인구는 통계적으로 1~2%로 알려졌으나, 현대에 와서는 최대 2~5%까지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가, 라고 원망하는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의 책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제 혼자서는 밥도 챙겨 먹지 못하시는 어머니 시지만,

 나는 그래도 아픈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하루 일과를 힘겹게 마치고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용변을 보시는 어머니 시지만,

 그래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어머니지만, 이제 함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오래 전, 야학시절에 공부할 때, 공부를 마치고 오면, 나물과 함께 계란후라이를 얹어서 수고했다고 비빔밥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기억이 있기에, 나는 어머니를 여전히 소중히 대해야 함을. 그것이 인륜임을 느낍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치매가 오셨고, 때로는 실종사건을 겪어서 경찰 분들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지만,

 이 모든 괴로움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힘을 내고, 매일 기도를 하고, 할 수 있는 일 앞에 섭니다.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의 이야기를 벽에 붙여놓았습니다.

 - 위대한 일들은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견디는 것입니다.

 그가 아프다고 해서 걷어차고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서서 말없이 함께 감사하며 식사를 하는 것이 인생이라 배우게 됩니다.

 

 철없는 아들을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난한 아들은 지금껏 이룬 것이 하나도 없지만,

 당신 곁에 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더 이상 치매가 깊어지지 않도록, 하늘의 하나님이시여, 부디 이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세요.

 2019. 11. 13. 추가 작성.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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