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지금 시대에 봐도 어색하지 않은 명작 로맨틱코미디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이야기 입니다. 이 작품은 아무래도 10대 하이틴이 보기보다는, 우리(?)처럼 이미 20대까지도 훌쩍 넘긴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요. 그것은 과거를 살아가는 내 모습을 많이 반성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봤더니, 그 못난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겁니다.
영화에서의 남주 알렉스는 한 때의 스타였고, 지금은 라이브 공연하기에는 저질 체력이 되어버린 추억의 스타이고, 아리따운 여주 소피는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성공의 문턱에서 도망가기를 선택해버리는 겁쟁이 소녀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노래 하나 만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워 합니다. 이른바 "피곤한 데드라인"이 있어서, 억지로라도 창조물이 나왔던게 아닐까 싶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서론 겸, 여담으로 데드라인(마감시간)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이론은 심리학계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정신차린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도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빚쟁이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다작을 했다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어지간한 학자나 교수님들도 신문 마감시간을 지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때 열정적인 포스팅을 해나가던 저도, 했던 약속들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고, 지금은 소소하게 도메인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하.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자, 이제 바로 본론으로. 저는 영화에서 이 두사람이 며칠씩 함께 다니면서 노래가사를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고민하는 대목이 가장 행복했고, 설레였습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거기서 괴로워만 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가구를 마구잡이로 재배치도 해보고, 집에서 해결이 안 된다면 거리로도 함께 나가보는 그 시간들. 그것이 인간이 누리는 진짜 행복임을, 영화는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벽 3시, 새벽 4시까지도 밤을 새워서 커피를 무기로 작업에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은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문구처럼, 영감은 곳곳에 있기 마련인데,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저절로 꽃피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구름이든,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된 단 한 곡의 노래가 인기가수에 의해서 "채택"되는 과정을 통해서, 두 사람은 멋진 음악 동반자가 되었으며, 스스로의 재능을 다시 한 번 빛나게 인정받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들은 "오늘 이 순간이 최고인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가요? 과거가 좋았다면서 한탄만 하는 인생은 불쌍한 인생에 가깝잖아요. 반면, 오늘이 좋다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근사할 뿐더러, 무엇인가를 창조해낼 가능성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게끔" 해주는 놀라운 저력 역시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맨틱코미디 이면서도, 중년의 성장기가 담겨 있는 영화!
특히 좋아하는 대사 중에는 알렉스가 소피의 약점을 콕 집어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숨어 있는게 편하니까, 그런 가짜 캐릭터 뒤에 자신을 숨겨놓으려는 거잖아요. 왜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려 하나요. 당신은 훨씬 더 멋있는데." 소피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알렉스가 보여주는 총명함이 대단히 빛나던 대목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라는 어려운 돌직구에, 정면승부로 대답하는 모습도 무척이나 재밌는 명장면 입니다. 그 사람을 잘 관찰해서, 평상시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을 선택한다면 그 때부터는 애정도 100% 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오전 8시 45분에 분홍색 코트를 입고 CGV영화관 앞에서 토요일에 만나요. 라고 막무가내식 황당한 이야기를 던졌을 때에도, YES 라면 그 때부터는 두 사람은 연인과 다를 바 없겠지요. 얼굴만 봐도 좋을 사이인 사람, 그러면 함께 거리를 다니고, 추억을 쌓아나간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매일이 천국같이 펼쳐지는 연인의 일상이란, 그토록 멋진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리뷰하는 입장으로서, 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무엇보다 강한 것이,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 사람의 고민을 밤새도록 이해해주는 마음만이, 우리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밀고 당기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고, 나를 밤새 응원해주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그 마음들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살아갈 때 든든한가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싶어지는 명작 영화. 지금까지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이었습니다. / 2014. 10. 리뷰어 허지수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