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소원 (Hope,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4. 10. 10. 17:31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지나치게 혐오스럽거나, 지옥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강자에게는 친절하고 서비스가 푸짐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왔고, 약자에게는 알아서 열심히만 살아보라며 그냥 방치해 둔 것인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영화 소원의 첫 머리에서 저는 일상적인 부부 동훈-미희의 먹고 사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학부모 모임에서 거의 20만원을 그어댈 수 밖에 없는 것까지, 다양한 일상을 눈여겨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떻게든 알아서 잘 크겠지 라고 했던, 바로 그 순간에 영화 속 주인공 소원양은 아동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서 끔찍한 일상을 버텨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큰 길로 다니라는 엄마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또 주변에 친구들이 어느 정도 있었음에도 이 참극은 누군가를 덮치고 말았고, 지금도 이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는 통계지표를 라디오에서 종종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성범죄, 높지 않은 형량. 이 끔찍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준익 감독은 그 키워드로 "공감"을 꺼내들었습니다.

 

 

 당연히 인간쓰레기인 가해자의 입장을 싹둑싹둑 빼버리고, 영화 소원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극복하는 과정을 매우 세밀하고 정교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선생님으로 나오는 정숙(김해숙 분)선생님의 말처럼, 피해자 가족들 모두가 어쩌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넓게 해석한다면 우리 사회 모두가 아이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도구로 삼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강력한 혐오감이야말로, 그 분노함이야말로,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차라리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으면 좋겠어, 왜 하필 우리 아이냐고... 절규하는 그 정직한 부모마음에 저는 매우 공감을 받았고, 그 목소리야말로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남일처럼 멀리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회는 망가지고 균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14년에는 군부대에 있었던 구타사망사건으로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차라리 미리 통화할 때 댈 수 있는, 비상 암호부터 만들고 군입대를 시키자는 아버지의 심정은, 사회가 현재 얼마나 부패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상처입고, 죽어가고, 비극적으로 희생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역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렇게 어두운 세계로 인해서 인간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조차 회의적이고 의문만 자주 듭니다. 헬렌 켈러는 기쁨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고언을 했다지만, 그렇게 볼 때, 극중 소원양의 부모님은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많이 참아내야만 했을까요. 그것을 생각할 때면, 이 작품은 눈물의 영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우리가 소원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위로와 감동입니다. 구체적으로, 소원이가 코코몽을 힘있게 끌고 가서, 지랄 맞은 아빠 편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가슴 뭉클해 지는 것입니다. 또 예컨대, 엄마가 쓰러지는 위기 앞에서도 다시 힘내어서 식사를 먹고, 기력을 회복해서, 마침내 소망이를 출산해 내는 과정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뿐인가요, 이제는 어머니까지도 나비를 붙여가면서 정숙선생님께 빛을 비춰주게 만드는 환한 장면은 후반부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침내, "왜 태어났니, 아이고 죽겠네," 라는 죽음이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 어떤 일을 겪더라도, 힘겹더라도 사는 게 더 좋다고 말해주는 영화. 그래서 그 따뜻한 감수성과 선의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서, 영화 소원은 서 있는 게 아닐까요. 2013년에 나왔던 여럿 작품 중에서도 손수건만 있다면, 꼭 한 번 권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밝게 웃는 사람이, 아픔 없어 보이는 그 사람이, 실제로는 누구보다 흔들렸던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라지만 - 이제 겨우 30대 중반쯤 다가가서야 - 비록 누군가가 강인하고 힘찬 목소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고통은 누구나 있다는 것을 배워갑니다. 말 못할 사연이 있고, 상처 받은 인생이 있지만, 그래도 꾹꾹 살아 왔으니까, 오늘의 우리가 있는 거겠지요. 소원이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넘겨서, 자신이 해야할 새로운 일을 향해서 또 나아갑니다. 쉽게 말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 순간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소녀가 오늘을 살아가고, 비행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 때,

 혹여 우리는 피곤에 지쳐서 야구 재방송을 찾아서 바라보고 있는 인생일 지라도,

 우리 개개인의 인생 모두가 아름다운 것임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 리뷰어 허지수. 201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