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진주보다 귀한 현숙한 여인(잠언31:10-)/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4. 11. 16. 19:33

진주보다 귀한 현숙한 여인 (잠언31:10-)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본래는 추수감사절 설교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절 찬송을 불렀습니다. 뭐 당연합니까? 그런데 저는 오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추수감사절을 지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년 동안의 추수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를 맞이하여 풍성풍성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농사는 짓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우리가 감사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이 실감이 안나신 분들은 교외로 한번 차를 타고 나가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른건 몰라도 빨갛게 익은 단감이 얼마나 많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지 보는 제 마음이 다 기뻤습니다.
여기 예배가 끝나고 나면 추수감사절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맛있는 음식과 음식만큼 따뜻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주신 추수와 안식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다 보면 또 감사할 일들이 자꾸 자꾸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감사한 감사절입니다.

 

저는 오늘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성도들이 재물을 수확하는 기쁨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을 결실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결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중에서도 현숙한 여인에 대하여 말합니다. 좋은 아내, 자상한 어머니, 집안의 안주인.
예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온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 진다는 말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아내입니다. 어머니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가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아내 겸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여인들은 여기에 더해서 가정을 위해서 새벽부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보이는 면으로, 보이지 않는 면으로 우리 어머니들은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기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현숙한 여인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본문은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 앞에서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얻는 남편의 복을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현숙한 아내의 노력과 복된 결과를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다시 한번 현숙한 아내의 노력과 결과를 반복하고 끝으로 현숙한 여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현숙한 여인이 누리는 복락을 강조함으로 본문이 끝이 납니다.

 

현숙한 여인이라!
어쩌면 이 설교를 듣는 젊은 여인들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나 현숙한 여인 안할래, 재미없어.’ 예, 그럴 수는 있는데 우리 현숙한 여인에 관한 본문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하고는 약간은 다릅니다.

 

1.현숙한 여인은
먼저 현숙한 여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현숙한 여인이 지혜로운 여인이라는데 모두 동의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한 가정을 이루는데 있어서 여인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들에게는 현숙한 여인을 맞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말하고 있지요.

 

그러면 ‘현숙한’의 원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말로 ‘현숙한’ 이란 말하고는 좀 다릅니다. 원어적으로는 ‘능력있는’ ‘힘있는’ 이란 말입니다. 즉 현숙한 여인은 지혜롭고 행동이 조신하고 사려깊고 맑은 여인이라기보다는 유능한 여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현숙한 여인은 여기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지혜로운 능력을 가진 자로 나옵니다. 유능한 사람, 유능한 여인. 이게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의 정의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에서는 지혜라고 하면 실제적인 능력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물론 돈만 잘 벌면 다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여전히 ‘현숙한 이란 말을 영어성경에서는 ’고상한 성품을 가진, 완전한, 정숙한‘ 이란 말로도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귀하답니다. 참고로 원문에서는 진주가 아니라 산호, 홍보석(루비), 진주, 보석들의 뜻으로 쓰여졌는데 그 보석을 한 개가 아니라 여러개 모아 놓은 것보다 더 값지다는 말입니다. 현숙한 여인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2.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성경은 이어서 말합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믿는 답니다.
뭐를 믿는 다는 말입니까?
아내의 지혜가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 온다

 

고상한 인격과 자녀교육. 아내에게 자녀교육을 맡겨 놓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물론 그렇다고 남편들은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본문에는 그런 말은 없지요?
집안의 재산을 지키고 불리며 관리하는 문제, 결혼관계에 있어서의 정절 등등 삶의 모든 영역에 관해 여인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 자기의 아내는 현숙한 여인이거든요. 지혜로운 여인, 능력있는 여인.

 

남편은 아내를 믿을 뿐만 아니라 산업이 핍절치 않게 된답니다.
산업이 핍절치 않게 된다는 말은 수입이 부족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여인의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재물을 얻는 것이나 남편의 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치부케 됨을 말하고 또 매우 풍성한 재물을 얻게 됨을 뜻합니다.
세상에 이런 복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남편은 또 얼마나 복될까요?

 

그런 현숙한 여인은 살이 았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한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좋은 날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과 역경의 날도 포함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변함없이 남편에게 도움이 됨을 말합니다.

 

우리네는 어때요?
결혼식장에서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라고 말하지만 한국의 이혼율은 무려 30%를 넘어선지 오랩니다. 미국 다음으로 이혼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뿐입니까?
‘기쁠때나 슬플때나 서로를 사랑’하는 결혼의 서약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습니다. 열심히 뒷바라지 해서 변호사를 만들었더니만 사법연수원에서 다른 변호사와 바람난 남편, 의사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한 아내를 버린 남편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암이 걸리자 이혼을 하고는 젊고 유능한 여인과 재혼해서 출세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문에서 보았지요.

 

여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다고 이혼을 하는 여인.
실업자가 되었다고 못살겠다고 집은 나간 여인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태만을 탓해야 합니까?

 

현숙한 여인은 자기의 사는 모든 날 동안 남편에게 선을 행한답니다. 선을 행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남편에게 물질적인 유익뿐만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포함하여 총체적인 행복을 남편에게 제공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아내를 얻은 남편은 굉장한 복입니다.

 

3.현숙한 여인이 하는 일
1)가족의 옷을 만든다
이제 본문은 현숙한 여인이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녀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한답니다.

 

현숙한 여인은 장사를 통하여 양털과 삼을 얻어서 이걸로 천을 짜서 옷을 만듭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자신이 직접 아마를 재배하고 양털깎는 일을 관장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양털을 깎지는 않습니다. 이건 남편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일이지요. 칼도 있고 또 위험하기도 하고 고된 일입니다. 우선 힘이 있어야 하니까 아내가 하기는 곤란합니다.

 

양털은 겨울옷을 만들고 삼베는 여름옷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일년의 옷을 모두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부지런합니다. 그런데 부지런히 손으로 일한다고 하는데 부지런하다는 말에는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열정적으로’ 또는 ‘목적을 가지고’의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가족들의 옷을 준비하면서 매우 기쁨으로 열정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을 합니다.

 

이 여인은 결코 가난한 여인이라서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시면 이 여인은 종과 하녀가 있습니다. 아마 제법 잘사는 집안의 여주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옷을 직접 기쁨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한국여자들이 남편 잘 만나서 손 끝에 물 한방울 안 튀기고 사는게 꿈이라고 하지만 이 여인은 다릅니다. 가족들의 옷을 하인을 시키지 않고 직접 만듭니다. 심지어 그 재료조차도 신경 써서 준비합니다. 왜 옷 만들기가 제일 첫 번째로 올라왔는지 모르시겠지요?

 

이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상관없이 다 해야 합니다. 옷을 안입고 살 수는 없고 옷을 한번 마련했다고 언제까지 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 옛말에 ‘의식주’라고 입는 옷이 제일 먼저 나오쟎아요. 그 정도로 옷이 중요하니까.

 

2)양식을 가져온다
두 번째로 현숙한 여인이 하는 일은 가족들이 먹을 양식을 가져 오는 일입니다. 이것참,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살림을 하는 보편적인 관점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는데...
음, 제가 설교하면서도 여자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이거 뭐 슈퍼우먼도 아니고.

 

그런데 당시에 아무리 여자가 뛰어나도 그렇지 무슨 지중해 무역을 한단 말입니까? 배를 타고 멀리서 양식을 사온다는데 이건 어지간한 대상인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현숙한 여인이면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건 정말 여자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배를 타고 해상무역을 하는 일은 남자들에게도 엄청나고 힘든 일입니다. 또 위험하기도 합니다. 여자가 배를 타버리면 그 집안일은 어쩌고요?

 

성경이 하는 말의 뜻은 꼭 해상무역을해서 양식을 가져와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여자라고 뒷짐지고 있지 않고 진취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보면 현숙한 여인은 국내산이 부족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먹기도 한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유하다는 말이지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외제라면 굉장히 먹어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외제를 사용할 수 없었지요.

 

여하튼 이 여자는 상당히 진취적입니다. 가족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상당히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먼데서 배로 양식을 수입할 만큼 통이 큽니다. ‘나는 여자라서 못해’ 이게 없네요.
이거 점점 여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성경말씀이지 제 말은 아닙니다.

 

3)집안을 잘 다스린다
뿐만 아닙니다. 이 여자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아직 밤인데 일어나서 가속들에게 음식을 주며 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집식구들도 전부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까? 아니면 혼자 먼저 일어나서 계획하고 아침이 되어서 그런 일을 했을까요?
아무튼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여인이 혼자서 손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음식의 분배가 공평하게 잘 되고 있는가, 정해진 일은 공평하고 적당한가를 살펴보고 감독한다는 말입니다. 안주인 이쟎아요. 집안 살림의 총 감독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약간 다른 시각으로 본문을 해석하면 이 여인은 육의 양식을 가족들에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도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에서 ‘일’이 바로 ‘율법’이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4)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다
또 하나 현숙한 여인을 부동산 투기를 잘한답니다. 어떤 밭이 상품성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밭을 산답니다. 물론 히브리 사회에서 밭의 매매같은거는 남편이 하고 남편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밭을 살 때 현숙한 여인이 그 밭의 가치를 꼼꼼히 먼저 살펴보고 남편에게 조언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번 것으로 포도원을 심는답니다. 요즘말로 하면 부동산 투기의 달인이 되라? 아니면 복부인?

 

17절의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한다’는 말은 이 여인이 능력이 있고 또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긴장하고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또한 장사가 이익이 되는 줄을 알고는 밤늦게까지 일한답니다. 상점의 문을 밤새 열어 놓는다는 말이 아니라 팔 물건을 밤새 만든다는 뜻입니다.

 

아니 도데체 현숙한 여인은 철로 만든 로봇라도 됩니까? 밤에도 안자고 아직 밤인데도 일어나고 잠은 언제 잡니까? 이건 뭐 제가 설교하기가 죄송할 정도인데요.

그런데 이 말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이고 이 글의 저자는 ‘르무엘’이란 왕의 어머니입니다. 그녀가 자식을 훈계하려고 지은거라는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여자를 가장 잘아는 여자가 적었으니까 한번 끝까지 본문을 따라가 봅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요구하는지.
19절은 실 뭉치로 천을 짜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여기서는 옷이 참 중요하네요. 제일 처음 하는 일도 옷만드는 일인데 여기서도 나옵니다.

 

5)이웃을 구제하며
현숙한 여인이 비록 돈을 벌기위해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자기만을 위하여 아등바등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의 따뜻한 손길을 내밉니다.

 

그녀가 가난한 이를 위하여 손길을 내미는 것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현숙한 여인은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녀가 열심히 사는 것은 근면과 성실함, 부지런함 때문이지 결코 이기심에 쩔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물론 그녀는 사치와 허영에 날뛰지도 않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한 현숙한 여인은 자기집안의 부를 쌓아서 천만뜻밖에도 가난한 이에게 구제의 손길을 폅니다. 정말 뜻밖이긴 하지만 이건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6)집사람들에게 홍색옷을 입힌다
홍색옷은 진홍색의 옷을 말하는데 이 옷은 당시에 매우 귀한 옷입니다. 왜냐면 이 진홍색의 염료가 연지 벌레의 알에서 채취한 것으로 성막이나 제사장의 겉옷을 만들 때 사용될 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은 이 여인의 현숙함으로 말미암아 식구들이 모두 진홍색옷을 입을 만큼 넉넉하고 존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현숙한 여인은 주위의 불우이웃을 구제하며 자기 가족들을 위하여는 눈이 와도 걱정없는 따뜻하고 좋은 옷을 해 입히는 경제력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의 덕은 자기 가족을 넘어서 이웃에게로 넘쳐흐릅니다. 한 여인의 덕이 가문을 넘어 지역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7)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옷을 지으며
이 현숙한 여인은 이웃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펴며 자기 가족을 위하여는 귀한 홍색옷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꾸미는데도 소흘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이것만 입어도 되니 너희들은 좋은 옷을 입어라. 그리고 당신은 위신이 있지 이런 싸구려 옷을 입지 말고 좋은 브랜드의 옷을 입으세요. 저는 이런 싼걸로도 만족해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목표액을 정해놓고 그걸 벌기까지 절대로 좋은 옷을 입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 그냥 악바리처럼 산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건 허영이 아닙니다. 사치도 아니지요. 자기를 꾸밀줄 아는 지혜입니다.
솔직히 우리 이런 이야기는 참 자주 하지만 아내가 기본적으로 예쁘고 단정하게 꾸미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해 다녀도 좋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귀하고 아름다우며 비싼 것들입니다. 이것은 이 현숙한 여인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적당히 잘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들 가운데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억만금을 쌓아 놓고도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한푼에도 발발 떨다가 뭐먹고 살꼬 하며 결국은 저세상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면 그 돈은 누가 씁니까?
그렇게 벌어가지고 누구 좋은일 시킵니까?
현숙한 여인은 적당히 자기를 위하여도 사용할 줄 압니다.

 

4.현숙함의 결과
현숙한 여인이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고군분투한 결과 이 집안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여자 혼자 예쁜 옷을 입고 우아하게 폼나게 사는 걸로 끝이 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여인의 덕이 주위의 가난한 이에게 미치는 것에서 이제는 가족들이 잘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이 여인의 내조로 말미암아 남편은 성문에 앉아서 장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답니다. 보다 정확히는 존경을 받는다는 말이지요.
성문에 앉는 다는 말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을 다스리는 공적인 자리에 서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로 판사나 시의 최고위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편의 출세에는 아내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후에 보면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들이 막 나옵니다. 율법을 묵상하며 가르치고 집안의 대소사를 빠뜨리지 않고 잘 살피며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지만 불로소득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 여인의 덕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은 아내를 칭찬합니다. 자식들이 일어났다는 말은 현숙한 여인에 대하여 존경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 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열심히 자식들 뒷바라지를 한다고 했는데도 감사받지 못하고 해준게 없다고, 받은게 없다고 불평하는 자식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자식들이 일어나서 엄마에게 감사한답니다. 보람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들을 위해서 일생을 다 바친 엄마가 자녀가 장성하고 난 다음 할 일이 없어졌을 때 자녀로부터 인정도 감사도 받지 못해서 인생이 허무해져서 우울증에 걸리는 이들이 그렇게나 많은 실정에 비추어 보면 정말 굉장히 복된 결과입니다.

 

남편 역시 아내를 칭찬합니다. 원문상으로는 남편은 아내를 자랑하고 찬양했답니다. 찬양은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표현이지요. 그런정도로 굉장히 극진하게 그녀를 칭송하는 것입니다.

 

5.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
그런데 이런 현숙한 여자의 마지막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기자는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하지만 뭐 남자들 입장에서야 조금 실감나지 않습니다. 여하튼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세월이 가면 바래지만 여인의 현숙함은 날이 갈수록 더 발달하고 빛이 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현숙한 여인을 만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집안이 일어나고 남편과 자식이 출세를 한답니다. 그런데 도대체 현숙한 여인은 어떻게 알아 봅니까?

 

현숙한 여인이라고 인정하는 증명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숙한 여인 클럽이 존재해서 그 안에 들어가면 현숙한 여인으로 인정받는 단체도 없습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우리는 누가 현숙한 여인인지를 알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하게 현숙한 여인이 하는 일을 역으로 짚어 봅시다.

 

6.현숙한 여인은
현숙한 여인의 조건은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교회밖에서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찾아 이 여자 저 여자를 찝적 댈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 안에서 여자를 만나야 합니다.

 

두 번째로 현숙한 여인인지를 알려면 이 여인이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도움의 손길을 펴는가를 보면 됩니다. 능력보다도 마음이 아예 굳어서 아무리 어려운 이웃을 보아도 긍휼한 마음을 품지 않는 여인은 이기적인 여인입니다. 결코 현숙한 여인이 아닙니다.

 

세 번째로 현숙한 여인의 증표는 부지런한 여인입니다. ‘손끝도 얄랑 안한다’는 말을 종종 쓰는데 그런 여자는 결코 현숙한 여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건 모임같은데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능력있는 여인인가를 보면 됩니다. 굳이 돈을 잘벌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재주도 있어야 하고 지혜도 있어야 하며 정조관념도 투철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한가지 든다면 결혼 전에 데이트할 때 적어도 1/3정도는 여자가 음식값을 계산하는 지를 보면 됩니다. 아니 낼려고 하는 제스처만 취해도 좋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자고 한 말입니다.
나는 시설만 가지고 다니면 되고 돈은 모두 네가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여인은  현숙한 여인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숙한 여인의 조건에 맵시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다는 항목도 포함시키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성경기자는 르무엘왕의 어머니입니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여자의 외모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네요.
마지막으로 자기의 재주를 이웃과 사회를 위해 가족을 위해 펼칠줄 아는 진취적인 여자가 현숙한 여인이 될 것입니다. 나는 여자라서 이건 도저히 못해 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여인은 결코 현숙한 여인이 아닙니다.

 

당대의 히브리 사회는 철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였지만 이 가운데서도 현숙한 여인의 영향력은 굉장해서 본인과 남편과 아이들과 온 가족과 주위 이웃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설교하고 보니 이건 정말 추수감사절 설교가 아니라 여자들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설교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도 정말 어쩔 수가 없는게 성경을 풀이하다 보니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결실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하는데 결실은 커녕 잘못하면 실족하게 생겼는데요.
어쩌면 우리 여자 성도들에게는 이미 이런 현숙한 여인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재능들이 충분히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동안은 소극적으로 개발을 하지 않아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성들이여 경제활동에 참여해라고 주장하는 여권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잠언의 맨 마지막을 장식한 현숙한 여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고 보니 너무 이 여인은 엄청난 여인입니다. 슈퍼우먼입니다. 지혜롭고 재주가 좋고 게다가 돈도 잘벌고 부동산 투기도 하며 남편과 자식을 위하여 치맛바람도 일으키고 또 그게 성공해서 인정도 받고 ..그런가 하면 불우이웃도 돕는 따뜻한 마음씨도 있고 세심하고 배려심이 있는 만능 여인입니다.

 

너무 만능이라서 완벽해서 저도 이걸 그대로 강요하기가 두렵습니다. 남자들은 너무 힘든 일이라서 도저히 못합니다. 만능은 만능인데 얼굴이나 맵시는 제외하고 만능입니다.
거의 잠도 안자고 힘든 일들을 척척 해내는 초능력 여인을 닮자 라고 말하기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기자는 남자가 아니라 같은 여자입니다. 왕의 어머니는 왕인 아들을 위해 이런 여인이 현숙한 여인이라고 그래서 이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집안도 나라도 잘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숙한 여인이 되는 최소한의 자격은 이미 갖추었습니다. 뭡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쟎아요. 여기서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본문에 현숙한 여인이 여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 남녀를 포함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어쩌죠? 남자들도 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만능인이 될 자신이 없는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재능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의 재능이 우리의 몸 안에 이미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실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재주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꺼집어 내는 것이 바로 현숙한 여인의 지혜일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식탁을 마주하고 즐거워합니다. 이제 물질의 결실뿐만 아니라 사람의 결실도 가져오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내면이 더욱 성숙해 지고
우리의 재주가 더욱 다듬어 지고
우리의 신앙이 더욱 두터워지는 그런 결실을 맺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11월 16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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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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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행복했던 추수감사절날이었으며, 맛있는 식사를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길었던 잠언의 설교말씀이었습니다. 독특해서 한 번 듣고선 영원히 잊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현숙하고 당당한 슈퍼우먼! 남을 잘 돌아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뒷배경으로 충분한 경제력이 있어야 함을 저자는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추수감사절날 맞는 설교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가난하기 보다는 성도가 넉넉해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기를! 그렇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성도로 살아갈 때,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자학하기 보다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어머님의 마음이 어쩐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2014.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