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요. 일단 이 문서는 교과서 위주로 가겠습니다. 이 점을 미리 언급해두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개항기, 일제강점기에 이어서, 현대사를 배우게 될텐데요.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계사를 어느 정도 포함한 현대사의 큰 틀부터 접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사에서 세계사적인 큰 구분으로 냉전이 있습니다. 콜드워 라고 하지요. 미국과 소련의 체제경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냉전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면, 냉전이 절정에 이르러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푹 하고 꺼지지요. 각각의 포인트를 보면 1945년에서 출발해 1947년에 트루먼 독트린이라는게 나와요. 독트린이라는 것은 선언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냉전의 절정은 1969년도입니다. 이 무렵, 닉슨 독트린이 나오고요.
자, 그러면 두 독트린의 내용은 다르겠지요. 처음 나오는 트루먼 독트린은 냉전의 공식적 선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소련과 경쟁이야, 우리편 손들어! 라는거지요. 닉슨 독트린이 되면 냉전이 완화 (데탕트) 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냉전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겠다, 그만 싸우고, 화해도 고민해 봐야겠다라는 거에요. 그리고 마침내 1989년도가 되면 몰타선언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냉전의 종결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현재로 오는거에요.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소련)가 서로 대놓고 싸우고 하는거는 아니잖아요. 경쟁은 하겠지만 적대적인 관계의 틀 속에서 대치되는 모습은 아닐테니까요.
이제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큰 틀에서 보도록 해요. 우리나라도 냉전의 흐름과 동일하게 연결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닉슨 독트린 1969년까지 쭉 대립되면서 올라가다가, 그 이후에도 또 대립하며 올라가는! 말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세계사적인 흐름과는 좀 다르게 가는 느낌이 있어요. 신문을 펼치면, 여전히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논쟁이 있고 싸우고 있고, 남과 북과의 관계도 싸우고 있는 게 여전히 있더라 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흐름을 빨리 깨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적을 가르고, 너는 나의 적이야 라는 인식. 그런 모습들은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만 뒤늦게까지 붙잡고 있는건 아닌가, 빨리 청산되어야 할 현대의 과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계사를 먼저 먼저 언급한 이유는,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도 세계사의 흐름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요. 이를테면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이 나온단 말이에요. 이전까지만 해도 (1945-47)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의 문제를 가지고 상당히 많은 논의를 합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논의를 하는데, 1947년부터 두 대국이 대립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논의는 종결되고 맙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의 분단 이런 것들이 기정사실화 되는 시스템으로 가는거지요.
즉, 냉전이 고착화 되고, 심해지면, 남과 북도 마찬가지로 냉전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냉전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그 사건이 바로 6.25 라고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걸 반드시 기억해야 겠지요.
한편,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를 또 봐야겠지요. 6.25 이후 대한민국은 북에 대하여 반공으로 쭉 해왔단 말이에요. 그리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남한을 항해서 적화통일 시키겠다 하면서 주장하고 그랬고요. 세계사적으로 냉전시기에는 그렇게 적과 적으로 있어도 별 문제가 없었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닉슨 독트린 이후에는 반공, 적화통일 같은 흐름이 한 풀 꺾이는 추세란 말이에요. 이 흔들리는 체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해서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러면 뭐가 등장하는가. 7.4. 남북공동성명 (1972) 이라는 거죠. 와우,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였는데, 어 이제 남과 북이 통일할 수도 있겠는데, 통일 3대원칙도 나오고 했단 말이에요. 이런 것들이 왜 그랬을까? 세계사적인 흐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라는 것을 배경으로 함께 알아 두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1945년부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차례차례 배우게 되요. 인물들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좌와 우의 개념이 있어요. 프랑스 의회에서 진보세력이 앉았던 위치가 좌측이라고 해요. 그래서 좌파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광복 이후에는 좌익이라는 표현을 쓸꺼고요. 우라는 것은 보수적인 세력이었지요. 우익, 우파라고 해요.
물론, 좌랑 우라는 개념이 딱 정해져있는게 아니에요. 광복 되고 나서 이 시기에는 좌익을 사회주의 세력들로 볼 수 있겠는데,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좌라고 한다면, 개념이 달라질 수 있어요. 복지를 확대하자는 진보세력일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그 개념을 틀에 억지로 규정화 시킬 필요는 없어요.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을 하는거에요. 광복 되고 이후에 좌익은 사회주의, 우측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구분하시고 접근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인물배치를 한다면요. 중도도 있겠지요. 중도좌파, 중도우파도 있고요. 이걸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나중에 좌우 합작운동 미군정이 지원하고 할 때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럼 출발합니다. 좌에는 대표적으로 박헌영이 있고요.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 공산당 계보에 반드시 이름을 올리게 되는 인물이고요. 그 다음 북한과 관련되어 있고, 소련과 함께 내려와서 북한의 실세로 등장하는 인물, 바로 김일성이 있습니다. 박헌영은 남한에서 활동하고, 김일성은 주로 북한에서 활약을 하겠죠.
그 다음 우측에는 편의상 구분한다면, 이승만이 있겠고요. 김구가 있습니다. 좌익과 대칭해서 구분을 해놓겠습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는 누구냐, 중도좌파로는 여운형이 있습니다. 중도우파로는 안재홍과 김규식을 들 수 있겠고요. 자, 이제 광복 해방공간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들이 있어요. 그 사건들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세 가지에 관여되는 인물들을 잘 봐야 해요. 여운형과 안재홍이 좌와 우가 연결되는 단체가 있어요. 그 단체가 조선건국준비 위원회 (1945년) 가 있어요. 조선건국동맹 1940년대에서 이름이 바뀐거에요. 좌우 합작의 성격이 있고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또 다른 조직 좌우합작 운동이 있어요. 여운형과 김규식과 연결되면서 좌우합작 운동 (1946년) 이 전개가 될 겁니다. 이 운동은 미군정이 지원을 해줍니다. 남한에서 전개가 되었던거고요. 그러면 왜 미군정이 중도세력들을 이용하는건가요? 라고 질문이 있을 수 있겠지요. 왜 좌파나 우파가 아니었는가 하면, 극좌나 극우의 개념으로서는 서로 대립만 될 뿐이다 라고 미군정이 본 것이에요. 그래서 색깔이 선명하지 않은 사람들로 우선 구성하고, 극좌와 극우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에요. 물론 결국 나중에는 뜻대로 되지가 않았죠. 사실상 무게 중심추는 좌익들이 갖고 있어서, 우익들이 적극적으로 합류를 하지 않았어요. 자세히 또 배우게 될테니까 흐름만 일단 언급합니다.
끝으로, 김규식과 김구, 그리고 김일성 으로 연결되는 남북협상(1948년) 이 있습니다. 이 때, 김규식과 김구가, 김일성을 만나러 38선을 넘는 장면을 배우게 될꺼에요. 당시 이승만이 중심이 되어서 대한민국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김규식과 김구는 거기에 반대를 하는거였어요. 왜냐하면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 수립이 되어야 한다 라는 목표가 있었던 거에요. 자, 큰 그림은 여기까지입니다.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살펴봤어요. 특히 위의 세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각각의 인물들을 봤습니다.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배경으로 살펴보았고, 다음 문서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다음 문서에서 계속~ / 리뷰어 시북.
오늘의 영감 - 활동을 할 때, 올바르게 하거나 잘 하는데 신경을 쓴다면! 그 활동은 언제나 창조적인 활동이 될 것이다. 어떤가요. 좀 더 노력하는 태도가 창조적인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창조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발 밑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기운내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으쌰!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