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반민특위 - 반민족 행위 처벌 특별위원회

시북(허지수) 2014. 12. 24. 21:47


 이번 문서에서는, 이제 남북이 분단된 시점 이후에 어떤 일들이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해요.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일을 해야할까요? 두 가지로 나뉘어서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 광복되고 나서 해야할 일이었죠! 친일파에 대한 숙청 아니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는데, 아직은 나라가 안정되고 나서 하자고 해서 계속 미뤄둔 상태였어요. 이제 나라가 수립되었으니까, 제헌헌법에도 근거를 넣어두었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헌법에 근거해서, 이제 대한민국이 해야할 과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반민특위가 만들어 집니다. 반민족 행위 처벌 특별 위원회의 줄임말이에요. 한마디로 친일파들을 벌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반민특위는 1949년도에 주로 활동을 합니다. 친일파에 대한 처단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죠. 왜냐햐면,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려운 상황이 처해졌을 때 불의에 항거하며 과연 누가 자신의 온몸을 던지겠어요. 또한 역사적인 선례가 없다면, 우리가 다시 어려워 질 때, 역시 또 마찬가지로 친일파처럼 동족에게 비수를 꽂고 자신들은 편안하게 빌붙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생충처럼 나올꺼 아니겠어요. 역사를 두려워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친일파에 처단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반민특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니, 그런데?


 결론적으로 먼저 이야기 한다면 이 반민특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의 존재가 있어서, 북한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민특위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의 외부적 요인으로 지금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협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될 수 있겠고요. 또는 반민특위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북한을 이용해 탄압하는 (반민특위 너네 빨갱이들 이라면서!) 모습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민특위가 해체되는 과정을 그러면 자세히 살펴보아요.


 처음 반민특위가 시행되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냈는지 모릅니다. 속이 후련하잖아요. 일제 강점기 때 우리는 분명히 봤어요.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있었음을 보아 왔잖아요. 그런데 나라를 되찾았음에도 벌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벌 받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좌우합작이라는 대립 속에서 으잉? 친일파가 반공투사라고 하는 명함을 달고 애국자로 둔갑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거 이거,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죠!


 아 드디어! 이제 반민특위가 구성되면서, 척척척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들 몇 사람 볼까요, 이광수. 어떤 인물입니까. 1920년대 자치론 - 일본지배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면서, 민족진영을 분열시켰던 인물이며, 게다가 30년대 40년대에는 창씨개명하라고 외쳤던 대표적인 변절의 아이콘이었지요. 이광수가 반민특위로 끌려가게 되었어요. 또 있어요. 예컨대 화신백화점 사장! 일제가 전쟁에 광분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비행기를 사서 헌납했던 그 인물! 이런 정신줄 놓은 인물도 반민특위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조선이 낳은 천재 중에 한 명이었죠. 최남선도 끌려갑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말이지요. 이 최남선과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들어가서 이야기 했던 말이 참 다릅니다. 최남선은 자신의 친일에 대해서 반성을 합니다. 나에게 벌을 줌으로 인해서 또 다시 나와 같은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죠. 비록 변절의 개인사를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남선은 양심이 있었던 지식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광수는 자신의 친일행위는 또 하나의 민족적 사랑이었다 이것을 알아달라 라고 말합니다. 이런 나쁜..XXX....XX....X................... 네, 자체 심의로 욕설은 편집 중입니다. 하하. 여하튼 이제 많은 시민들이 속이 다 후련한 거에요. 나쁜 놈들의 전성 시대가 아니라, 이렇게 나쁜 놈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니까, 이제 드디어 정의가 세워지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겠죠.


 또한, 일제 시대에 활약했던 경찰의 경우도 계속 온존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미군정의 맥아더 포고문도 있었고 해서, 치안 유지를 위해서 일제 시대의 경찰이 지금도 경찰이었던 거에요. 이제 이런 사람들도 끌려갑니다. 그러면서 이 와중에 경찰 세력들이 반민 특위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반민특위에 대한 저항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무슨 일들이 과연 있었던 걸까요. 먼저 지금 보다시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이 딱 반민특위를 습격하면서, 이 빨갱이들 손 들어 이랬다고 하죠. 그런데 반민특위 안에 검사도 있었는데, 검사도 두 손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이 나쁜XX들...


 이후에 또 국회 프락치 사건이 있습니다. 프락치 라고 한다면, 쉽게 스파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를테면, 국회위원들 중에 지금 북한의 지령을 받고 들어온 간첩이 있다, 간첩 국회 의원들이 이제 막 탄생한 대한민국을 흔들기 위한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 의원들을 조사해 보는거에요. 너 스파이지? 하고 조사를 딱 해보았는데, 간첩혐의자 중 일부가 이럴 수가 반민특위에 들어가 있는 의원이에요. 헐!? 대~박!? 그런 걸까요! 이러면서 졸지에 반민특위가 체제 전복 세력이 되어버리는 거에요. 이런 모습들이 당황스럽게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각도에서도 접근해 본다면, 반민특위를 흔드는 정치적 공격이라 볼 수 있겠죠. 막 흔드는 거에요. 반민특위 활동 제대로 못하도록!


 이러면서 결국 친일파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 친일파에 대한 공소시효를 축소하면서, 반민특위는 해산하게 됩니다. 공소시효라는 것은 뭐냐하면,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발각되어서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쌤이 나쁜 짓을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안 잡혔어요! (아, 예가 이상하다? 저 정말 법없이 사는 청백리 지향적인 사람이에요!) 어쨌든 나쁜 짓을 해서 계속 안 잡힌거에요! 그래서 죄를 숨기고 있다고 쳐요. 그런데 공소시효가 만약 5년이었는데, 6년째 마침내 발각 되어서 딱 잡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벌을 줄 수 없는거에요. 왜냐!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중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아주 길겠죠.


 이야기로 돌아와, 친일파 라는 중대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축소해 버렸어요! 이런! 이처럼 공소시효가 짧아져 버리니까, 정작 친일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도 기간이 지났다면서, 처벌을 할 수 없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아! 가슴 아픈 우리 역사! 여러분, 독일이라든지, 프랑스라든지, 이런 나라에서는 나치 행위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지금도 신문에서 보면 독일에서 나이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 일지라도, 아주 예전에 나치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면, 반민족 행위를 했다며 잡혀가는 모습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어요. 왜냐하면 공소시효를 두지 않기 때문이죠. 그 나라들은 이렇게 생각한거죠.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 나라에 큰 해를 미친 행위에 대해서는, 그 죄가 발견되면 끝까지, 죽을 때까지라도 찾아서 벌을 줘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 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례를 만들어야만, 비슷한 상황이 또 닥쳐온다 할지라도, 역사에서 판단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민족 행위하고 끝까지 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정의롭게 살아서 민족을 위할 것인가 선택할 선례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각인 시키기 위해서,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공소시효 없이 강력한 처벌을 지금까지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축소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점이 다른 나라와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승만 정부에서 보다시피 친일파에 대한 처벌을 소극적으로 했던 이유는, 북한이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역시도 잘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반민특위가 활동하게 되면서, 정부를 잘 꾸려나가야 할 국회위원들이 자꾸 하나 둘씩 빠져나가는거에요. 그러면 당장 정부가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잘 돌아가기를 원했던 이승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반민특위가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봤던 것입니다. 남한이 밀리지 않아야 하고, 이러다간 북한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한민국(남한)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승만 정부는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반공이라고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식들 때문에 친일파 처벌이 뒤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덕술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아주 악독한 친일경찰이었어요. 일본의 주구 (=일본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 였던, 조선 사람이지만 일제를 위해서 악명 높은 친일 행위를 했던 노덕술. 반민특위 이전에 그의 삶을 보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역할을 하다가, 좌익을 때려잡는 반공투사로 딱 변신을 해버립니다. 그 노덕술이 드디어 반민특위에 잡혀온 거에요. 하지만 반민특위가 힘을 잃으면서 노덕술은 또 풀려나는거에요. 그러면서 이후에는 노덕술이 국회의원 후보에 등록까지 하게 되는 비운의 역사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게 뭡니까. 정말...... 이 나쁜XX.

 

 가슴 아픈 장면들을 보고 있네요. 반민특위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경찰 세력의 방해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산되고 있다 라는 것을 기억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남북분단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만약 남북이 분단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들이 있었을까요. 엄연히 남과 북이 대치되고 나눠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 체제에 대한 위협이 있어서 반민특위는 활동할 공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남한이 불안 속에서 체제를 잡아가기 위해서, 반민특위 역시 정부에 의해서 잠깐 활용되고 말았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래저래 우리 역사에서 무척이나 아쉬운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과제인 농지개혁은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됩니다. 법은 49년에 만들어지고요, 시행은 1950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됩니다. 한편, 북한은 1946년에 토지개혁 (무상몰수, 무상분배) 을 단행하였는데요, 북한은 땅이란 땅은 다 해당되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이고요. 남한의 경우 농지에 한해서 이루어 지고 있어서, 농지개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농지개혁은 유상매입, 유상분배 입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돈을 주고 매입을 하는거에요. 3정보이상은 유상매입을 해요, (1정보가 약 3천평 정도에요.) 그러니까 3정보 = 9천평이면, 학교운동장 정도의 넓이라고 보면 되요. 큰 넓이인, 3정보까지는 개인이 가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토지는 정부에서 매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에서는 사실 돈이 없었어요. 이제 막 대한민국 막을 열었으니까요. 나중에 돈은 줄께요 해서 약속으로 해놓은 유가증권을 지급하고 땅을 매입하는 형태였어요.

 

 유상분배는 이제 정부가 사들인 땅을 돈을 받고 나눠주게 됩니다. 그런데 농민들 역시 마찬가지로 돈이 없었겠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하니, 토지를 살 때 5년 동안 분할해서 상환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농지개혁이 단행되었어요. 북한의 토지개혁 같은 경우 무상으로 나누어준 것이 소유권인지, 경작권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어요. 왜냐하면 북한은 나중에 협동농장 하면서 토지가 국가소유로 다 들어가 버리거든요. 그래서 소유권을 무상분배 했다고 보기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에 반해, 남한 같은 경우에는 분명히 소유권을 나누어 준 것이에요. 비록 유상이지만, 이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고요.

 

 또 한가지 뭐냐하면, 6.25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이 농지개혁이 단행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6.25 전쟁이 시작되면서 북한이 밀고 내려오면서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토지 나눠주는 거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남한도 농지개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만약 농지개혁을 안 했더라면, 한반도의 농민들은 무상으로 토지를 나눠준다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로 다 빨려들어가면서 입에서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를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농지개혁이 단행되었기 때문에, 이미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 하게 된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남한의 급속한 공산주의화를 방지하는 효과를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농지개혁의 의미 좋죠. 마지막으로 농지개혁은 일제시대까지 존재했던 식민지 지주제가 폐지되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참, 농지개혁에 관해서는 나중에 경제파트 문서에서 다시 한 번 더 다루게 될 꺼에요. 그러니 이번 문서에선 여기까지만 언급하도록 할께요.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큰 과제를 실시하였네요. 반민특위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농지개혁은 나름의 역사적 의의를 가지면서 수행되고 있더라 라는 것을 정리해 놓으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운명의 1950년이 되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5년이 흘러서 1950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5년 동안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였으며, 또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1950년이 되면 북한은 전쟁 준비를 차곡차곡 하게 됩니다. 6.25 전쟁의 발발이지요. 그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사 가슴 아픈 것 참 많고, 그래도 흥미롭고 재밌죠? 하하. 저만 그런가요.

 

 오늘의 영감 - 니체의 유명한 말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괴물과 싸우려는 자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느 순간 나도 괴물이 되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경계하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가령 우리는 누군가의 갑질 잘못을 소리 높여 비판하다가도, 정작 자신이 다른 곳에 가서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인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픈 역사들을 넘어서, 인간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저는 성탄 무렵에 생각해 봅니다. 한 번 이라도, 한 해라도 제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간다면, 친절을 잃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꼭 힘내시길 응원하고 싶은 저녁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