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ándor Kocsis
오늘 살펴볼 스타는 헝가리의 레전드 선수인 산도르 코치시 입니다. 국내 표기에서는 코치시 대신에 콕시스로 상당히 알려져 있는 명선수기도 합니다. 월드컵 득점왕도 차지했었던 "골든 헤드" 코치시의 이야기,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프로필
이름 : Sándor Kocsis Peter
생년월일 : 1929년 9월 21일 (1979년 7월 22일 작고)
신장/체중 : 177cm / 73kg (정확한 기록은 아닙니다. 180cm 정도였다는 표기도 있습니다.)
포지션 : FW
국적 : 헝가리
국가대표 : 68시합 75득점
주요기록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득점왕 (11골)
황금의 머리, 산도르 코치시 (산도르 콕시스)
코치시하면 역시 황금의 머리 (=골든 헤드) 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헤딩의 달인 입니다. 그를 두고 역대 최고의 헤딩 괴물이었다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키가 특별히 큰 편은 아니었지만, 경이적인 점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발군의 타이밍 감각으로 공중전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1950년대 헝가리의 매직마자르(골든팀)의 주공격수로 맹활약하면서 68시합에 출장해 무려 75골을 넣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다시 생각해봐도 눈이 의심되는, 정말로 압도적이고 경이적인 기록이지요 :)
그럼 그가 맹활약했던 장면 중 하나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1950년대 헝가리팀은 축구역사에 영원히 남아있는 전설적인 강팀이었습니다. 1950년부터 1954년 스위스월드컵 당시까지 4년동안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팀마다 압도적 실력을 발휘하면서 대승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헝가리 대표팀은 1954년 월드컵, 우승 0순위 초유력후보였습니다. 헝가리에는 캡틴 뿌시까시(푸스카스)를 필두로 해서, 히데쿠티, 치보르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명선수들이 즐비했고, 당시 세계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오늘의 주인공 산도르 코치시까지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 팀을 두고 매직마자르, 골든 팀으로 불렀습니다. 다른 팀과 비교가 되지 않던 강팀이었지요.
그 무적 헝가리의 1954년 월드컵 첫 상대팀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아시아 국가 중에 유일하게 당시 54년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팀. 이것이 첫 출장이었는데, 월드컵 첫 데뷔 경기부터 무시무시한 팀을 만난 셈이지요 :) 경기시작, 푸스카스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골 폭풍이 몰아칩니다. 코치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스코어 9-0 ... 헝가리는 너무 강했습니다. 이어진 서독과의 경기도 코치시가 4골을 몰아넣으면서 서독을 대파해버립니다. 8-3 압승. 2경기에서 17골을 넣으면서 헝가리는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무슨 만화같은 기록이지만, 역사에 남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웃음)
헝가리는 브라질, 우루과이도 물리치면서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코치시는 토너먼트에서도 경기마다 두 골씩 넣으면서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했습니다. 드디어 결승전, 결승상대는 서독. 그렇습니다 조별리그에서 대파한 그 서독이었지요. 그런데 이 당시 결승전에서 헝가리는 캡틴 푸스카스의 부상, 브라질과의 혈투, 우루과이와의 빗속 연장 접전 등의 여파로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주심의 오심까지 더해지면서, 서독에게 유리하게 경기가 전개되었고, 끝내 이 무적의 헝가리팀은 2-3 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코치시는 54년 월드컵대회 11득점으로 득점왕에 선정되었지만, 정작 코치시 본인은 이 득점왕타이틀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무적을 자랑했던 팀이 패했다는 것이, 그리고 월드컵 우승을 문턱에서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일까요... 독일이 역전승으로 이긴 이 유명한 결승전은 베른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하는 경기입니다. 정작 헝가리 입장에서는 두고 두고 아쉬웠던 경기이기도 하지만요. 기회가 되면 당시 서독입장에서도 글을 한 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독 입장에서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 참고로 이 때의 코치시의 기록인 5시합 11득점, 즉 1시합 평균 2.2득점의 놀라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는 불멸의 기록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1956년, 헝가리 혁명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 해외원정에 있던 코치시는 헝가리로 돌아가서는 예전처럼 축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망명을 원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헝가리 축구협회는 그의 이탈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2년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약 2년 동안 프로축구팀을 벗어난 코치시는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요. 글쎄... 거기까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웃음) 여하튼 본업이 축구선수인지라 드디어 스위스를 거쳐서 1958년 코치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망명자에 대해서 너그러운 나라이자 팀이었지요. 이후 1965년까지 FC바르셀로나에 몸담게 됩니다. 코치시는 약 2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워낙 축구를 잘하던 선수였으니까요. 4년전 월드컵 득점왕에 빛났던 그의 움직임은 시간이 흘렀어도, 공백이 있었어도 여전히 굉장했습니다. 2번의 리그우승과 2번의 컵대회 우승을 이끌면서 팀에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감독생활을 하고자 노력해보았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정신적 고통이 이어진 끝에 1979년 7월, 49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코치시의 사망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며 그 중에 한 가지는 사고로 왼발을 절단했기 때문에 그 쇼크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월드컵 득점왕이자, 헤딩의 천재였던 그의 마지막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현재 그는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월드컵 한 시합 평균 2.2득점, 연속 해트트릭, 헤딩 머신, 출장경기보다도 더 많은 A매치 골 기록... 그리고 비극적인 자살. 그의 잘생긴 외모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그의 삶에 여러가지로 끌림이 가는 군요. 현역시절 세계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을 정도로 가공할 선수였던 골든 헤드 코치시. 이제는 그의 이름이 이렇게 세월에 흐름에 따라서 잊혀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헝가리팀을 기억하는 분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블로그의 지인 바셋님의 글에서도 코치시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http://blog.daum.net/puskas/7049299) 이 글도 참고해 보시면 헝가리 무적의 팀에 대해서 큰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코치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