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엘리시움 (Elysium,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6. 8. 3. 05:27

 

 서기 2154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 SF영화 엘리시움 이야기 입니다. 이쯤되면 드디어 인류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우주에서 생활할 수도 있게 되었고, 병도 쉽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선택받은 시민에게만 이같은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이것은 민영화된 의료보험제도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안심하고 치료해주겠지만, 보험이 없는 사람은 아파도 절대로 안 된다는 것, 영화 식코 식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손가락 잘못 다치면, 수천만원 내놓아라 이겁니다.

 

 지구에는 다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첨단 의료시설은 죄다 우주공간 엘리시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공 맥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단 5일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소꿉친구인 프레이의 딸도 백혈병으로 무척 아픕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멀쩡한 치료장비 놔두고서는, 이걸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의 1% 라니요. 이 1%는 정작 의료장비 쓸 일도 없어서, 호화 파티를 열기 바쁩니다. 지구에서는 그나마 존재하는 병원에 사람들이 넘쳐서 간호사들은 쉴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극명한 대비라 하겠지요. 영화는 포스터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황당한 세상, 선택받은 1%의 엘리시움을 점령해보자 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매우 도전적인 주제이지만, 이 영화 그렇게까지 평점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말그대로 액션 블록버스터 테마의 영화이고요. 선한 역할의 맥스 일당과 악한 역할의 크루거 일당이 대비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맥스가 해결사 역할을 잘 해나가기를 응원하면서 보게 됩니다. 복잡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단점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가진 것도 없는 지구에서 엘리시움 점령까지 이루어 낼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그게 다입니다.

 

 엘리시움 시민들은 되도록이면 지구에 오고 싶지 않아합니다. 우주에 천국 같은 공간을 이루어 놓았으므로,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정혜윤 작가님의 런던 여행기 책 이야기가 납니다. 대영제국이 화려할 때, 런던에 거의 모든 것이 있었으므로, 런던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 아마 이와 정확히 마찬가지로, 엘리시움 사람들도 거기에서 불어로 인사를 즐기며, 매주 파티를 열며 지냈겠지요.

 

 이와는 매우 대비되게, 공장은 지구에 있습니다. 맥스는 이 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끔찍하게 피폭되는 장면을 맞이합니다. 5일치 약만을 던져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는 이야기는, 즉 수고했고, 이만 죽든지 말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이것은 여전히 노동자를 부품으로 취급하는 첨단사회임을 알려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디선가 익숙한 것 같습니다.

 

 어느 회사의 어린 여성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아프자, 보상과 책임에서 우리는 별로 연관 없으니 제대로 못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습니다. 뭐, 나중에는 태도를 바꿔서 보상하겠다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와 22세기는 사실 세기만 다를 뿐이지, 사람이라는 존재는 크게 바뀐 것이 없겠지요. 지배층이 있고, 피지배층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 영화상에서는 22세기라면서 극단적으로 양극화가 진행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리부팅이라고 하네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이제 시민으로 격상시키고, 의료혜택을 받게 해주겠다는 것, 영화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매우 시사적이네요. 그리고 맥스는 그 커다란 꿈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전개로 펼쳐졌습니다. 이쯤에서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의 희생이 떠오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투쟁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도 열심히 하면서, 격차사회를 막아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시움의 델라코트 장관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지배계층의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실은 자녀, 미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요? 자신들이 계속해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비관용적 태도를 누림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을 매우 적나라 하게 볼 수 있습니다. (조디 포스터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얼핏 멋있어 보이기도!)

 

 영화의 결말을 지지하며, 모두에게 의료 혜택을 준다는 것이, 그럼에도 옳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이야 많겠죠. 무엇보다 예산부담이 크고, 의료쇼핑을 즐긴다고 항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파도 병원을 못간다고 한다면 이것만큼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 없습니다.

 

 맥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비춰집니다. 함께 엘리시움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전해집니다. 거기서 바라보는 지구 역시도 아름답고 멋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맥스는 그 결실을 누리지 못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친구와 그녀의 딸이 고침 받아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것에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겠지요. 내가 끝내 결실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맥스는 진정 큰 사나이가 아닐까 합니다. 미어캣을 태워준 하마도, 친구가 있는 세상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친구가 아프지 않을 때, 우리는 함께 웃으며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점, 건강할 때, 감사하며, 즐거워하며, 삶의 기쁜 순간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오늘도 기쁜 날이기를. / 2016. 08.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