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그녀 (Her,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6. 8. 6. 23:28

 

 영화 그녀는 가상연애를 테마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가상연애라... 저도 조금은 할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화상기능도 없던 채팅을 통해서 알게된 착한 처자와 장거리 문자 연애를 했었습니다. 연애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이성친구가 있었지요. 평생 잊지 못할 말을 몇 개 남겨주었습니다. "오늘은 일부러 예쁘게 하고 PC방에 왔어요, 채팅이라 얼굴도 못 보지만, 마음만큼은 만남의 의미를 담아서." 대략 16년~17년 정도 이전일까요?  매우 오래된 추억인데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제가 매우 큰 잘못을 했고, 사랑하던 그 친구는 크게 상처 입었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으니까요. 오래도록, 심한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 그녀에서도 이혼한 주인공이 아내를 만나서 재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기 위해서 만나는데, 만난 장소에서도 집요한 상처의 말은 계속됩니다. "뭐라고요? 당신 지금 OS와 사귀고 있다고요?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사람만 원하더니, 이제는 황당한 꼴이군요!"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역시 사람에 의한 상처가 제일 크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쯤 반성하면, 많은 잘못들을 잊을 수 있을까요? 지금껏 짧은 일생에 있어 좋은 사람들을 여러 번 스쳐지나갔지만, 저 역시 싱글족으로 홀로 외로움을 달래는, 영화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우선 테오도르는 저보다는 두 가지가 낫습니다 :) 글을 정말 잘 쓴다는 것이고요, (저 정도면 정말 자뻑해도 될 수준이었어요, 몇 가지 소개되는 문구는 작았지만, 그 임팩트에서 굉장히 감이 좋았습니다.) 또 첨단의 시대에서 열혈 게이머로 재밌게 살고 있다는 점은 좀 부러웠습니다. 저는 어머님 아프신 이후로는, 자체 게임 금지라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은, 게임 대신에 영화나 독서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필업으로 먹고 살아가는 작가 테오도르에게, 어느 날 OS 프로그램이 찾아옵니다. 이름은 무려 18만개 중에 선택되었다는 사만다양,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테오도르의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주는데요. 그 범용성이 굉장합니다. 심심할 때, 재밌는 말상대가 되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데요. 고민을 아낌없이 털어놓아도 좋을 만큼, 훌륭한 OS 프로그램 입니다. 그래서 이혼한 전 아내에게 당당히 말하지요. "이 OS는 정말 내 애인이라고!"

 

 그런데 이런 개념이 그렇게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편리한 스마트폰이 있어서, 어디서나 답답함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애마라고 부르며 아끼기도 합니다. 매주 차 청소를 깔끔히 한다고 합니다. 광범위 하게 살펴본다면, 우표를 모으는 사람, 게임CD를 소장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어린 시절에는 포켓몬스터를 수집하는 즐거움으로 기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딘가에 마음을 주고, 아끼고자 합니다. (*예컨대, 자기가 게임상에서 키운 캐릭터에 지나치게 애정을 느껴서, 그 캐릭터가 마치 자신의 분신이 되는 것처럼 푹 빠진 헤비게이머도 뉴스의 사건사고란에 간혹 나오곤 합니다.)

 

 미래에는 이 방향이 아무래도 양방향으로 소통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사만다 양처럼 인공지능의 등장이 바로 그 예라 하겠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부터 시작해서, 출근 길에 함께 음악을 듣고, 곡을 선곡해주고, 옷을 골라주는 등 더욱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개발되어 나갈 것입니다. 이렇듯 누군가 대신 결정해 준다는 것이 부담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수년 전, 옷 가게에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기본 디스플레이로 걸려 있는 옷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몇 개월 전에는, 홈쇼핑으로 속옷을 구입했는데, 이 때에도 기본 셋트가 구성되어 있으니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맞춤형으로 필요한 것들이 딱 맞게 정해지면 우리의 삶은 확실히 편해지는 측면이 있겠지요.

 

 중요한 점은, 테오도르가 이 사만다 양과 (진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서로가 매우 깊게 말이지요. 이들은 단순히 인사치레로 I Love You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거리를 특별하게 걷고, 당신이 있어서 삶이 즐겁다고 고백합니다. 이 와중에 사만다가 가상의 내가 아닌, 실제의 내가 되어보고 싶다면서 한 소녀를 불러들이는 완전 무리수를 두기도 하는데요. 그 애처로움이 좀 안 되어 보였고, 결국 터무니 없이 실패로 끝나자, 역시 인공지능은 아무리해도 인간의 사랑을 따라갈 수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대 인간의 사랑. 그것이 결국 해답이라고, 보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사만다 양은, 결국 자기 위로, 자기 만족, 인생의 도피처 정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다소 비정하게 밝힙니다. 사만다양은 실제로는 OS 프로그램이므로, 8천명과도 동시에 대화하고 있었으며, 600명과 동시에 사랑에 빠져있었다고요. 최신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므로, 그 정도로도 전혀 과부하 걸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사람답게 외치지요. 나만의 그녀가 되어야 하잖아!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파일처럼, 책처럼 읽고 있다고 고백하는데, 이 대목이 참 슬펐습니다. 한마디로 둘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거죠. 사랑이라는 것을 컴퓨터가 이해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것을 체현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말하자면, 좋은 음악을 틀어 기분 좋게 해줄 수 있겠지요. 분위기 있는 음악으로 위안도 되어줄 수 있겠지요. 때로는 운치 있는 피아노곡으로 우리를 놀래킬 수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의 부드러움에는 당할 수 없다는 것, 인공지능은 질투하겠지만, 그래서 저는 사람이 좋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일종의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수천명이 동시에 OS와 대화하면서 나의 벗이라고 소개하겠지만, 끝내는 떠나가게 된다는 것, 그것은 가짜 우정임이 밝혀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듣기 싫은 소리라도, 쓴소리라도 해주는, 현실 세계의 친구들, 은사님들이 참 좋고, 늘 그립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산다는 것, 그래서 만날 때 크게 반가워 한다는 것, 아직은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영화는 무척 재밌었고, 크게 웃으면서 봤습니다. 특히 사만다가 글을 수정해주는 솜씨는 일품이었네요. OS의 도움으로 책도 낼 수 있었고요. 이처럼 더 멋진 OS와 함께 우리의 삶도 함께 업그레이드 되어나갔으면 다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연애는 사람과! 업무는 더 놀라운 OS와! 컴퓨터가 초고성능화 되어도, 인간이 사랑스럽다는 점을 보니, 아직도 저는 순애보가 좋은 사람인가 봅니다. 사람이 최고! / 2016. 08. 0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