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우선 좋았습니다. 제 필력은 못 따라갈터이고,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남겨봅니다. 우선, 유럽에서도 아름답다는 리스본의 이국적 풍경을 보는 것도 덤으로 즐거웠네요. 그런데 영화의 메인은 그보다 한걸음 더 들어갑니다. 포르투갈의 혁명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거기서 개인이 어떤 행동을 취했느냐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가령, 청년의사 아마데우가 리스본의 도살자로 악명 높은 비밀경찰에,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살려내는 장면은 무엇이 중요했느냐의 기준이 됩니다. 이 행동으로 아마데우는 혁명집단에서 반역자로 취급받거나, 심지어 얼굴에 침까지 맞게 됩니다. 참 가혹합니다. 의사로서 아픈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자신의 첫 번째 사명대로 살았을 뿐인데도, 배신자로 찍히고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마데우가 얼마나 매력 있는 남자인지도 알게 됩니다. 엄격한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부자에, 글까지 잘쓰는 천재. 게다가 얼굴까지 훈남이니까요. 극중의 어여쁜 스테파니아가 첫 눈에 완전히 반해버리는 것도 이해할만 합니다. 두 사람은 결국 도피행각을 세우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스테파니아의 정중한 거절, 나는 당신의 바람을 이룰 만한 여자가 아니에요, 라는 고백이 몹시 뭉클합니다. 혁명의 날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아마데우. 그 매력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처음 장면으로 들어갑니다. 그레고리우스 선생님은 우연히 비오는 날, 자살시도 하려는 숙녀를 구해줍니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티켓 한 장, 그 이끌림을 따라 리스본으로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계속되지요. 매력적인 책은, 매우 철학적이며, 신비로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아마데우가 남긴 메모들의 집대성이니까요. 아무리 배신자라고 욕먹었어도, 실은 아마데우 주위에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이 실로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 신의의 사람이었으니까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질문들이 따라다닙니다. 나는 아마데우 처럼 살고 있는가? 입니다. 아마데우는 명언을 휘갈겨 써내려갑니다. 독재가 있는 곳에서, 혁명을 하는 것은 의무이다. 혁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을 하는 입장에, 반란군에 가담하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습니다. 부패와 독재에 대해서 싸우는 것. 이것이 아마데우의 세계관이라 하겠지요. 그의 학교 연설문도 기막힙니다. 신의 부재, 게다가 사랑을 강요하는 종교에 대해서, 나는 차라리 그들을 숨막히는 암살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데우 식으로 말하자면, "내 자유로운 영혼을 내버려둬!" 입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그레고리우스 선생님이 우연히 만난, 안과의 여의사 마리아나도 무척 예쁘고, 호화로운 캐스팅 입니다. 안경을 맞추는 사이에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져서 마침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되지요. 마리아나는 적극적으로 춤을 출래요? 라고 묻지만,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은 지루한 남자라면서 점잖게 또 거절합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나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말하고 있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은 지루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처럼 곳곳에 화해의 코드들이 숨어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스본 도살자의 손녀. 자살하려고 했던 사람은 할아버지의 정체가 악명 높은 비밀경찰임을 알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마지막에서는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그리고서는 리스본 여행을 통해, 그레고리우스에게 감사의 말을 표시하지요.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겠노라고 말하는 각오, 생을 다시 한 번 맞선다는 그 각오에는 충분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레고리우스도 이 손녀에게, 할아버지의 생과, 지금 당신의 생을 분리하라고 조언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개인은 각자가 소우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훌훌 털어버리고 인생을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것, 아! 저도 이러다가, 아마데우의 팬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주옥 같은 글귀들이 많았습니다.
정작 그레고리우스는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혁명의 시기, 다들 뜨겁게,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새하얗게 불태우면서 청춘을 낭만적으로 보냈는데, 그에 비하면 자신의 삶은 너무나 별 일 없이 사는 것처럼 평화롭게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마리아나 의사는 그런 그레고리우스를 붙잡습니다. "꼭 스위스로 다시 떠날 필요는 없잖아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그 한 마디가, 우리를 몇 번이나 생각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말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므로, 신중하게, 적절한 말을 하는 현명함도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길게 풀어놓고 나니, 저는 이 질문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아는 것 그것이 행복함의 출발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이제 장년이 되어버린, 마리아나와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혹은 어디에서나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권의 책이 찾아준, 새로운 안경과 인복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스테파니아 역시, 스페인에서 일생을 지내며 나름대로 행복했던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비록 나 때문에 아마데우가 죽음을 맞이한게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슬프게 표현했다지만, 사실은 아마데우 역시 병을 가진 아픈 사람이었고,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오래 살기 보다는, 어떻게 의미 있게 삶을 살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뭐, 소박합니다. 리뷰 더 열심히 쓰면서, 책도 또 열심히 읽고, 하나 하나의 간접 경험들을 소중히 대하면서 잘 곱씹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욕심인 것 같지만요, 느리지만,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삶이 영원히 바뀌는 그 지점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은근하게 바뀌는 삶에 고결함이 있다고 합니다. 불꽃처럼 팡팡 터지며 살지는 못해도, 은은하게 열심히 매일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은 매일 찾아오므로, 그것을 잊지 않기를... 오늘도 소중히! / 2016. 08. 1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