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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구소련의 슈퍼스타 올레그 블로힌

친절한 시북(허지수) 2008.06.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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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g Blokhin

 지금 러시아가 2008년 유로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하며 진격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페이스라면 우승도 노려볼만 합니다. 오늘은 구소련의 슈퍼스타 블로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발롱도르까지 획득한 레전드지요.

 프로필

 이름 : Oleh Volodymyrovych Blokhin (올레그 블로힌, 올레흐 블로힌 등으로 표기됩니다)
 생년월일 : 1952년 11월 5일
 신장/체중 : 180cm / 72kg
 포지션 : FW
 국적 : 구 소련 (현재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 112시합 42득점
 주요수상 : 1975년 유럽최우수선수상 (발롱도르)

 화살로 불리던 명공격수 블로힌, 베켄바워와 크루이프를 제치고 유럽 정상에 서다.

 블로힌은 레프 야신과 함께 구소련을 대표하는 레전드 선수입니다. 구소련 국가대표 최다출장기록과 최다득점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련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기록들은 불멸의 기록이 되어버렸지요. 자,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찬란했던 블로힌의 활약상을 살펴봅시다.

 블로힌은 당시 소련에 속해있던 키예프에서 1952년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소련의 뛰어난 100미터달리기 선수였다고 합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블로힌 역시 어린 시절에 육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재능도 대단한 것이었는데, 100미터를 10초8 에 주파하는 실력을 자랑합니다. 소련의 육상계에서도 재능있는 블로힌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블로힌이 선택한 것은 육상이 아니라 바로 축구였습니다.

 현지에 있는 디나모 키예프에서 축구선수로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워낙 빠른데다가, 실력까지 있는 축구 선수라면, 어떤 팀이라도 두팔들고 환영이겠지요. 블로힌은 어린 시절부터 발빠른 선수였고, 점차 커가면서 훌륭한 실력까지 겸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18살 때, 당당히 디나모 키예프 주전공격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압도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정확한 슈팅력까지 겸비하고 있는 블로힌을 이제 리그에서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득점왕을 수상하면서 찬사를 받던 블로힌은, 디나모 키예프의 에이스로 군림하면서 4년 연속 득점왕을 내리 차지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활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화살"이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화살 같이 빠르게 날아가서 그대로 골문을 향해 골을 꽂아버립니다.

 한참 잘 나가던 블로힌이었습니다. 그리고 1974년 이 디나모 키예프팀에, 명장으로 불리는 로바노프스키 감독이 부임하게 됩니다. 디나모 키예프는 이제 국내무대의 왕자로 자리 잡으며, 1974-75시즌에는 국제 무대인 UEFA컵 위너스컵에 출장하게 되는데...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옵니다. 소련의 자랑이었습니다. 소련 최고의 선수로 꼽히던 골잡이 블로힌도 있었고, 감독도 훌륭했고, 이들은 거침없었습니다.

 그리고 1975년, UEFA 수퍼컵이 열렸습니다. 상대는 당대 최강으로 꼽히던 챔스리그 우승팀인 명문 바이에른 뮌헨. 사람들은 당연히 뮌헨이 이길 줄로 알았습니다. 뮌헨은 베켄바워, 제프마이어, 루메니게, 게르트뮐러까지... 무시무시한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로힌의 빛나는 활약이 시작됩니다. 원정에서도 블로힌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었고, 홈에서도 디나모 키예프는 블로힌의 두 골에 힘입어서 승리. 뮌헨은 0-3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블로힌, 동유럽 최고의 스타 다운 멋진 활약이었습니다. 몇 차례나 연속으로 리그득점왕 및 최우수선수, 게다가 리그제패에 이어서, 유럽무대에서 까지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1975년 유럽최우수선수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70년대 초중반, 세계적 스타로 이름 날리던 베켄바워와 요한크루이프가 이 상을 나눠가지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1975년은 달랐습니다. 개표결과 큰 차이를 보여주면서, 75년 유럽최우수선수로 뽑힌 선수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올레그 블로힌이었습니다! 전설의 골키퍼 야신에 이어서 소련출신으로는 두 번째 발롱도르 수상이었습니다. 전성기의 블로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화살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블로힌은 디나모 키예프에서 총 19년 동안 몸담으면서, 리그우승 8회를 이끌었습니다. 1977-78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또 다시 명문 바이에른 뮌헨까지 침몰시키면서 4강까지 진출한 적도 있었습니다. 4강에서 당대 잘나가던 보루시아MG와 맞서서 홈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아쉽게 원정에서 패배했지요. 오랜 기간 소련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433시합출장과 211득점 기록. 이 기록도 역시 소련리그최다기록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국가대표로서도 꾸준히 출장하면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까지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72년과 76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또한 82년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에게 아쉽게 밀리면서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벨라노프가 이끌던 시대의 소련은 86년 월드컵에서 연장 접전끝에 16강에서 탈락합니다. 한편 이 1986년에 블로힌은 소련국가대표 최초로 A매치 100경기를 돌파했고, 은퇴까지 국가대표로 112시합에 출장하는 불멸의 기록을 남깁니다.

 1990년, 레전드 블로힌은 은퇴하게 됩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서, 주로 그리스에서 여러 팀들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까지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도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2003년이었습니다. 유로2004에 우크라이나가 예선탈락하자, 블로힌이 감독으로 우크라이나를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슈퍼스타로 우뚝 선 셉첸코와 여러 유명스타들과 함께 승승장구하면서, 이번에는 월드컵 유럽예선을 조 1위로 멋지게 통과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월드컵 첫 출장임에도 8강까지 올랐습니다. 이 시절 재밌는 에피소드로는 블로힌 감독은 16강전 피마르는 우크라이나와 스위스의 승부차기를 차마 못 봐서, 선수에게 지휘를 맡기고, 라커룸에서 결과를 봤다고 합니다. 결과는 셉첸코가 실축했지만, 스위스는 한 골도 넣지 못했고, 우크라이나 승리였지요~

 2007년에는 유로예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밀리면서 우크라이나는 유로08 예선탈락. 블로힌 감독은 사의를 표하며, 우크라이나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FC모스크바 팀을 맡아서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블로힌은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로 꼽히기도 하는 빛나는 레전드였습니다. 당대의 거성 요한 크루이프와 베켄바워를 제치고, 유럽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던 슈퍼스타였습니다. 야신에 이어 구소련 최고의 스타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종종 말합니다. UEFA컵에서 올해 우승한 팀은 러시아의 제니트였습니다. 뮌헨은 이번에도(?) 러시아팀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유로 첫 우승팀은 소련이기도 합니다. 유로2008, 이제 준결승과 결승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러시아. 개인적으로 그 열심히 뛰는 투혼의 시원한 축구스타일에 반해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올해 우승을 러시아로 점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구소련시절에도 강호로 손꼽혀왔고, 발롱도르 수상자도 있어왔고, 앞으로는 더욱 강한 포스를 발휘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러시아리그도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왼쪽, 오른쪽 공간을 멋지게 지배하면서 물오른 팀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 이래놓고 4강에서 스페인에게 진다면 할 말 없겠지만, 고전할 쪽은 스페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요. 오늘 히딩크의 훌륭한 러시아팀에 반해서 나름 특집으로 쓴 블로힌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레전드 다운 멋진 골 영상 하나 덧붙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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