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26. 04:04

 

 해양 영화로는 정말 수작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뒤늦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케이블TV가 있는 좋은 세상인 것 같습니다. 대신 동네 DVD대여점은 모두 문을 닫고 말았지만요. 잡담은 이쯤해두고, 이 영화는 상당히 세밀한 느낌을 받습니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시대, 프랑스 거대 함선 아케론 호와, 영국의 서프라이즈 호가 바다를 무대로 맞서는 모습을 정중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서프라이즈의 함장 잭인데, 이 밖에 조연들에게도 초점을 충분히 맞추고 있어서 한 편의 바다 위 인간 극장의 느낌 역시 받았습니다. 잭은 인간미 넘치는 함장으로 선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나, 때로는 괴로운 결정도 해야 하는 등 힘든 리더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서프라이즈 호는 아케론 호를 쫓아서 브라질 인근까지 온 상황입니다. 그리고 안개 깊은 어느 날, 대포에서 불뿜는 아케론 호를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요. 부하들 몇 명이 사망하고, 한 생도는 한 쪽 팔을 골절로 인해서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서프라이즈 호는 살아남기 위해서, 재빨리 안개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고, 간신히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부터 우리는 여전히 추격! 이라는 특이한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나중에 부하가 가져다 준 정보에 의하면, 프랑스의 아케론 호는 훨씬 더 강력한 신축함으로 속력도 매우 빠르고, 화력도 엄청나며, 게다가 튼튼하기까지 하다고 설명됩니다. 잭 함장은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더니, 벌써 이런 놀라운 시대가 되었음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때, 오래도록 자신과 함께 했던 서프라이즈 호가 구식이라는 이야기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우리 배가 구식 이면, 나는 구식 함장이냐!? 자부심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 겠습니다.

 

 한 쪽 팔을 잃게 된 블레이크니 생도에게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팔을 잃었었던) 넬슨 제독의 책을 선물해 줍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자네의 몫을 다하라는 따뜻한 격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케론 호와의 만남도 잭 함장에게는 멘탈 타격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이자 의사인 스티븐과는 함께 음악 연주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영화는 마냥 즐거운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센 폭풍우를 받으면서 아케론 호를 뒤쫓아가다 아까운 부하 한 명을 희생시키고 맙니다. 침울하게 앉아 있는 잭 함장에게, 의사 스티븐은 자기 합리화 방법을 알려줍니다. 자기 역시 의술을 펼치다가 어쩔 수 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전쟁 때문에 그가 사망한 것이라고, 우리는 전쟁의 희생양이라는 시선입니다. 또한, 스티븐은 의사 이면서 박물학자이기도 했는데, 갈라파고스 제도를 지나가게 되자 매우 기뻐하기도 합니다. 어느 생도는 배의 선원들로부터 괜한 무시를 받다가, 갈등 끝에 바다 속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슴 서늘한 대목이 있습니다. 리더십에 대해서 잭 함장에게 특훈까지 받았지만, 차마 사관생도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은 참 안쓰럽습니다.

 

 아케론 호를 쉽게 따라갈 수는 당연히 없는 법. 태평양까지 오니, 이번에는 무더운 날씨가 괴롭힙니다. 긴 가뭄 끝에 비가 오며, 겨우 안정을 취하는 서프라이즈 호. 갈라파고스 근처에서는, 의사 스티븐이 실수로 총에 맞는 사건사고까지 일어납니다. 드디어 결단을 내리는 함장,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였겠지요. 갈라파고스에 배를 정박시키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이 장면부터는 영화가 마치 실화 다큐를 보는 듯 합니다. 독특한 생태계를 볼 수 있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라든가, 나뭇가지로 위장하는 녀석이라든가, 그리고 더 놀랍게도 이 근처에 아케론 호가 있었다는 것.

 

 영리한 서프라이즈 호는, 고의로 자신들의 배를 위장하는 수법을 써서 아케론 호를 유인합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정체를 드러내며 전면전을 일으키지요. 훌륭한 작전의 승리를 통해서, 거함 아케론 호를 제압하는데 성공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지혜, 적을 침착히 유인해 내는 끈기 등 이 대승리는 다양한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겁니다. 무엇보다 승리를 위해서 용기 있게 돌격하는 모습은 참 기억에 남습니다. 한 쪽 팔을 잃었던 블레이크니 마저도 자신이 해야할 일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돌격을 못하면 포격대장을 맡겠다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을 아껴가고, 규율을 중요하게 여기고, 역할을 분명하게 주고, 때로는 응원도 잊지 않는 리더십. 저는 문득 이런 리더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일이 든든해질까를 생각합니다. (해외 평에 따르면,) 혁명과 프랑스를 일절 좋게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주기도문과 성경이 계속 언급되며, 영국식의 기독교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도 영화의 독특한 관점입니다. 물론, 이 시대 약간 이후에는 갈라파고스를 다녀간 다윈과 진화론의 과학(?)전성시대가 열리긴 합니다만. 하하.

 

 오늘은 책에서 발견한 이 구절이 영화와 어울리는 것 같아서 덧붙이며 마치겠습니다.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 말을 듣고 변했다면,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신께 감사드려라!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변화로 이어지는 일은 기적 같은 것이니까. -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해주는 것. 그게 바로 삶의 가장 큰 기적 - 어린왕자 중에서 이니까 말이다.(마음의 사생활 p.315)"

 

 두 사람의 악기 하모니가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것 아니겠어요. 잭은 다시 갈라파고스를 방문할 것을 암시하고 있고, 스티븐은 자신을 배려해주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의견에서 통찰을 얻어내는 굉장한 함장이 함께 하고 있어서 삶이 더 즐거워 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승리로 만들어 내는 그 과정에는 상호 신뢰 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배웠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2017. 04. 2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