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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Beckenbauer

 축구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불멸의 슈퍼스타 베켄바우어. 오늘은 황제 베켄바우어의 이야기입니다. 여담으로, 축구게임에서도 베켄바우어는 사기능력치로 이름을 날리곤 합니다. 꿈을 이룬 황제의 이야기. 그럼 출발해 볼까요?

 프로필

 이름 : Franz Anton Beckenbauer (베켄바우어, 베켄바워 등으로 표기됩니다. 저는 Daum표기를 따랐습니다.)
 생년월일 : 1945년 9월 11일
 신장/체중 : 181cm / 75kg
 포지션 : DF / MF
 국적 : 독일 (서독)
 국가대표 : 103시합 14득점
 주요수상 : 유럽최우수선수 (1972,1976) / 유로우승(1972), 월드컵우승(1974), 챔피언스리그 3연패 등

 긍정의 슈퍼파워... 베켄바우어, 최고가 되기까지!

 저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꾸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멋진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베켄바우어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것을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긍정하라, 할 수 있다고 믿고, 꿈꾸고, 상상하고... 그리고 행동하라."

 누군가는 반문할 것입니다.
 "것참 젊은 친구가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만.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딨나. 허허."
 그래요 사는 게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베켄바우어의 한 마디를 잠시 소개하고 시작할까 합니다.
 "축구는 인생과 같습니다. 항상 잘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입기도 하고... 축구와 인생은 참 닮아있습니다. 골(목표)을 향해서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나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혹여 잘 안 되는 날이 있더라도 자신을 믿고 긍정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가 되는 비결입니다. 베켄바우어는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어린 시절 꿈꾸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베켄바우어는 1945년 독일의 뮌헨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은 당시 전쟁에서 패배했고, 1950년 월드컵에도 전범국이라서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베켄바우어가 8살 때의 일입니다. 1954년, 드디어 독일은 스위스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베켄바우어 어린이도 독일의 축구를 열심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첫 경기가 열렸고 서독은 터키에게 4-1 로 승리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난 팀이, 50년대 공포의 무적팀 헝가리. 서독은 세 골이나 넣으며 분투했지만, 헝가리는 당대 최강이자 공포의 팀이었습니다. 스코어는 3-8 서독은 처참하게 깨졌지요. 그래도 다행히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해서 8강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독은 다시 기세를 올려 토너먼트에서 유고, 오스트리아를 제압하고 결승전에서 헝가리와 다시 만났습니다. 54년 월드컵 결승전, 서독은 놀랍게도 헝가리에게 3-2로 역전승을 거둡니다. 이것이 이른바 "베른의 기적"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이 첫 우승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베켄바우어도, 이 당시 우승 서독팀의 에이스이자 캡틴인 프리츠 발터를 강렬히 동경하게 됩니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와 멋있다 라고 감탄으로 그쳤겠지만 베켄바우어는 다르긴 달랐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꼬마 베켄바우어는 급히 광장으로 뛰어나가서 친구와 함께 그 기적같은 결승전을 재현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틈만 나면 길거리에서 서독의 캡틴 프리츠 발터 역할을 맡아서, 우승을 상상하던 명랑한 아이. 어린 시절 베켄바우어는 거리의 주인공이었고, 거리의 캡틴이자 꼬마 프리츠 발터였습니다 (웃음) 결국 이렇게 노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베켄바우어는 1954년 그 해, 클럽팀에 가입할 것을 결심합니다. 뮌헨에는 당시만해도 서독의 명문이었던 1860뮌헨과 그저 그랬던 바이에른 뮌헨이 있었습니다. 베켄바우어 역시 명문 1860뮌헨 팀에서 뛰는 것을 꿈꾸었던 소년이었지요. 그래서 주저없이 1860뮌헨의 하부팀이었던 SC뮌헨`06 축구팀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10대가 된 베켄바우어는 열심히 공을 찼습니다. 그리고 유소년 하부팀인 SC뮌헨`06 팀은 상부조직인 1860뮌헨 선수들과 연습시합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훈련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베켄바우어는 이 유소년 시함을 거치면서 심경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꿈꾸던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깨달았지요. 다름이 아니라, 1860뮌헨의 프로선수들이 매우 거칠게 플레이를 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팬이었던 1860뮌헨이었는데, 하나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베켄바우어는 현실을 또 다르게 긍정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뮌헨에는 또 한 개 팀이 있었으니까요. 바로 "바이에른 뮌헨"이었습니다. 그는 1959년, 바이에른 뮌헨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축구선수로서의 재능과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켄바우어는 10대 시절에 보험판매원 훈련생으로써, 보험업계 일을 배우기도 했었는데 이것도 때려치고, 오직 축구에만 전념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축구란 이제 하나의 인생이 되어갔습니다.

 자, 이제 1963년 서독의 프로축구리그인 분데스리가가 드디어 막이 열렸습니다. 당시 서독 축구 협회는 '1개 도시에, 1개 클럽'이라는 구호를 밀었습니다. 뮌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택된 것은 명문 1860뮌헨이었고, 바이에른 뮌헨은 밀려나서 2부리그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964-65시즌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프로축구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바이에른 뮌헨이 떠오르게 되지요. 베켄바우어가 이루었던 위대한 일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이에른 뮌헨의 영건들 - 골키퍼 제프 마이어, 폭격기 게르트 뮐러, 황제로 불리게 되는 베켄바우어까지...
 이들은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의 빛나는 명문팀으로 만들어갑니다. 2부리그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바이에른 뮌헨은 보란 듯이 분데스리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1965-66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첫 경험이 시작됩니다. 리그 3위에 컵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합니다. 이듬해에는 유럽무대인 UEFA컵 위너스컵에 출장해서 연장접전 끝에 드라마틱한 우승을 따냅니다. 이것이 바이에른 뮌헨의 국제무대 첫 트로피입니다.

 한편 베켄바우어는 데뷔하자마자 정말 대단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강인한 체격에 탁월한 기술까지 겸비했던 보기 드문 선수였고, 1965년 20살 때 서독국가대표에 발탁되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지요. 당시 베켄바우어는 국가대표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였습니다. 20대 초반의 베켄바우어는 공수에 큰 공헌을 합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무려 4골이나 넣었습니다. 분명 수비적인 위치에서 플레이를 하던 선수였지만, 높은 기술을 자랑하던 선수였습니다. 요즘으로 친다면, 다재다능한 만능선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독은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개최국 잉글랜드에게 혈전 끝에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자, 여기서 베켄바우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비수라고 한다면, 역시 수비만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베켄바우어는 이 개념을 뒤집어 버립니다. "공격에 참가하는 수비수"라는 혁신적인 신개념을 창조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리베로"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베켄바우어가 너무나도 기술적으로 뛰어났던 수비수 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비수 임에도 경기를 지휘하고, 이끌어 나갔습니다. 시합을 읽는 통찰력은 천재적인 경지라고 평가받았습니다. 베켄바우어는 한 마디로 한 차원 높은 수비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베켄바우어가 이끌던 당시 바이에른 뮌헨과 서독대표팀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수비를 보고 그물같다, 예술이다, 라는 극찬도 오갔습니다.

 1968-69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따내는 바이에른 뮌헨이었습니다. 이제 바이에른 뮌헨은 서독의 명문팀이 되어나갑니다. 베켄바우어도 캡틴완장을 차면서 더욱 더 존재감을 빛냅니다. 그리고 1970년, 다시 한 번 월드컵에 도전하게 되는 베켄바우어와 서독대표팀. 이들의 운명은? 서독은 게르트 뮐러의 맹활약을 앞세워 조별리그를 3전 전승하면서 8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났습니다. 4년전의 복수를 할 날이 온 것이지요. 아뿔싸 그런데 전반전에만 0-2 로 끌려가면서 다시 한 번 잉글랜드에게 잡히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 베켄바우어의 추격골이 터졌고, 연장 접전 끝에 경기를 3-2 로 뒤집으면서, 극적으로 4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기의 명승부로 꼽히는 이탈리아 VS 서독의 경기가 펼쳐집니다.

 이탈리아는 선제골을 넣고, 특유의 수비축구로 끝까지 잘 지켜내나갑니다. 이탈리아는 유로68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고,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었지요. 경기는 그대로 1-0 이탈리아 승리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종료 직전, 서독은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베켄바우어는 이탈리아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베켄바우어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그대로 경기에 나섭니다. 그 기백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시합은 서독의 극적인 동점골로 1-1 상황이 되어서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서독이 드디어 연장 전반에 역전골을 작렬시킵니다. 당시 골든골이 있었다면 서독이 이걸로 게임 끝이었겠지만, 골든 골은 없었고, 연장전은 계속됩니다. 이탈리아는 끝까지 다시 따라붙으면서 2-2 동점을 만들었고, 이윽코 이태리의 전설 루이지 리바의 재역전골이 터집니다. 이제 3-2 로 다시금 서독이 밀리는 상황이 됩니다. 서독의 게르트 뮐러가 다시 3-3 동점골을 만들었으나... 이 혈전은 끝내 이탈리아가 결승골을 추가하면서 4-3 으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독일의 패배. 사람들은 이 경기를 "아즈텍의 사투"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봤다면 정말 환희와 절망을 모두 맛 볼 수 있었겠지요. 서독은 70년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시간은 또 흐릅니다. 1971-72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72년 유럽선수권, 그러니까 유로72가 열립니다. 베켄바우어는 이 무렵부터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수비수로 위치를 옮깁니다. 이른바 "리베로" 베켄바우어의 본격적 시대가 열립니다. 완성된 베켄바우어의 실력과 완벽하게 조직화된 서독 국가대표팀, 바이에른 뮌헨 클럽팀, 이들은 요즘말로 "킹왕짱! 무적!"이었습니다. 70년대 초반 서독축구는 세계에 그 위력을 자랑합니다.

 수비수이면서도, 경기를 지휘하는 베켄바우어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서독은 유로72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바이에른 뮌헨은 72,73,74년 3년 연속 리그우승을 제패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 조차 74~76년, 3연패를 하는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이제 뮌헨하면 떠오르는 구단은 1860뮌헨이었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세계적인 명문구단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 중심에 캡틴이자 전설적 리베로였던 베켄바우어가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2부리그에서 출발했던 바이에른 뮌헨이었지만, 베켄바우어가 이끌던 바이에른 뮌헨은 유럽에서 모든 타이틀을 휩쓸어버렸습니다. 또한, 이 무렵 베켄바우어도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유로72 우승의 공로로 유럽최우수선수상에도 당당히 선정되었습니다.

 황제 베켄바우어의 절정 중의 하나는 단연 1974년 월드컵입니다. 그가 54년 서독의 첫 우승인 베른의 기적을 보았던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베켄바우어는 동경했던 프리츠 발터처럼 캡틴 완장을 차고, 조국 서독에서 월드컵 우승을 도전하게 됩니다. 유로와 리그우승, 챔피언스리그우승까지, 최절정을 달리고 있던 베켄바우어는 대망의 월드컵 우승만 품에 안으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독은, 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누르고 정말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찬사를 받던 토탈사커의 네덜란드 였으나, 승자는 리베로 베켄바우어가 이끌던 서독이었습니다. 서독은 2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것을 20년이 흘러서 자신의 손으로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프리츠 발터를 넘어서는 엄청난 세계적 명성을 누리면서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20년전, 8살 때의 베켄바우어의 이야기 생각나십니까? 월드컵 우승에 너무 신나서 거리로 곧장 뛰쳐나가서 우승을 재현하던 꼬마 캡틴 베켄바우어 말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꿈이란 그런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믿으면, 결국 이루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낙관했던 베켄바우어를 통해서 우리는 선명하게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1976년에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황제 베켄바우어는 다시 한 번 유럽최우수선수상에 빛납니다. 1977년 모든 것을 다 제패한 황제는, 이제 미국으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뉴욕 코스모스팀에 입단하면서, 축구를 전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재밌게도 1977년 당시, 뉴욕 코스모스에는 펠레도 뛰고 있었는데, 펠레와 베켄바우어는 그렇게 함께 1시즌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여하튼 4년간 미국에서 축구를 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함부르크에서 2시즌을 보내고, 1983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너무나 눈부셨던 베켄바우어의 활약이었습니다. 30살 까지 정말 놀라운, 정말 정말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던 베켄바우어 였고, 이후 그의 30대 시절 축구 이야기들은 일종의 축구를 전파하는 메신저 활동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편안한 고향 놔두고, 축구 불모의 땅이던 미국으로 건너가서 선수생활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베켄바우어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서 서독국가대표팀을 맡게 됩니다. 1986년 준우승, 그리고 1990년에는 보란 듯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냅니다. 이 사람 뭐 이렇게 못하는 게 없는건지 -_-)a... 서독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 감독이 바로 베켄바우어 였습니다. 선수와 감독 모두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해 보았던, 극소수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이후 1994년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축구협회 부회장도 맡았고, 2006년에는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아서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뤄냈습니다. 베켄바우어는 성공의 상징 같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눈부실 정도로 인생과 축구에서 성공가두를 달려왔습니다.

 베켄바우어 처럼 되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꿈꾸고, 상상하고, 행동하는 것, 자신을 믿고 긍정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빛나게 만들어 줍니다. 당대 라이벌이자 전설인 요한 크루이프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좌절은 인간을 강인하게 만든다고. 그래요 베켄바우어의 말을 다시 빌리지요 "축구는 인생과 같습니다. 항상 잘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언제나 힘차게 즐겁게 행복하게, 긍정적으로 살아가세요.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상상하고, 행동하세요. 유치한 말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꼭 한 번 베켄바우어의 이야기를 빌어서 애독하시는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었던 말입니다. 다들 힘내세요. 꿈은 그 꿈만큼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그릇도 그 그릇만큼 담아지는 것이지요. 하하.

 자, 이제 길었던 이야기 마칠 시간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너무 길면 좀 요약하든가 해야겠군요 (웃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베켄바우어 영상을 오늘도 역시 덧붙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by 시북 2008.07.01 2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