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저는 동경가족이라는 일본 영화를 한 편 시청했습니다. 여운이 참 오래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는 아름다운 포스터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다정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흔한 고전개그로, 남편이 웬수라는 험한(?) 말이 있지만, 사람에게 가장 즐겁고, 복된 일은 좋은 짝을 만나는 것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 작품입니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히라야마 부부는 노년의 여행을 결심하여, 동경으로 상경했습니다. 동경에는 세 자녀가 살고 있기 때문이죠. 첫째 아들은 의학박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고, 둘째 딸은 미용실을 개업해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막내 아들만큼은 무대설치 일을 하는데 - 프리터 비슷하게 일하면서 - 자유롭게 청년기의 삶을 방랑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의사, 딸이 미용사, 막내는 뭐 그렇다고 치고, 히라야마 노부부의 삶이란 대성공인가?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그 대답이 저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라야마는 친구와 함께 술집에 가서 잔을 계속 들이키며 진심을 털어놓습니다. 자식에 대해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고 언급합니다. 그 대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녀가 (가령 의학박사가 된다거나) 꼭 사회적으로 잘 되어야만 부모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부모는 자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는 거에요. 자애로운 할머니로 등장하는 토미코 여사는, 막내아들 쇼지가 결혼할 좋은 아가씨와 교제를 하고 있음에 놀랍니다. 너무 흐뭇해하고 즐거워 합니다. 아- 긴 하루지만, 이 여행을 하길 정말 잘했어!
부모는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언제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테지요. 동경가족 영화는 막내아들 쇼지가 사실은 부지런하게 또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으며, 크게 성공하는 삶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이 있을 수 있음을 반갑게 응원하고 있습니다. 히라야마 할아버지는 영화 후반에 쇼지의 그녀, 노리코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며, 막내를 잘 부탁한다고 당부합니다. 그 정중한 고개 숙임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 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 선생님의 숨은 뒷모습, 잊지 않고 마음 속에 꼭 담아놓았습니다.
쇼지의 철없음과 사랑받음에 질투가 샘솟기도 했답니다. 그는 이탈리아 소형차 피아트를 자랑스럽게 몰고 다니는데요. 큰형네 조카녀석한테 - 그런 구식 똥차는 안 탄다고 놀림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제법 소중하게 피아트가 정갈하게 주차되어 있는 장면, 그리고 노리코양의 경쾌한 자전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쇼지군!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발견해서 그걸 지켜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해도 될까요. 일부의 어른들은 그런 삶 - 돈도 안 되며, 시시하고 성공하지도 못했다며 -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나, 저는 꿋꿋하게 그리고 즐겁게 사는 쇼지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천사 같이 착한 노리코가, 자유의 영혼 쇼지를 이해해주는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애정이라는 것을 영화에 담는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테죠.
영화는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지만, 저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토미코 할머니께서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이 충격의 반전 사건으로 인해, 히라야마 가족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응급차를 부르고, 장남이 의사였음에도, 갑작스럽게 쓰러진 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끝내 토미코 여사는 생을 다하고 맙니다. "살아 계실 때 잘 하라!"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지키기는 쉽지 않은 금언입니다. 고통 없이 눈을 감으셨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 가족들. 히라야마는 큰 충격으로 입조차 거의 열지 않습니다. 침묵한 채, 아내의 생전 모습들과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했었음이 밝혀집니다. 아내 토미코가 동경에 와서 만난 놀라움이 사실은 "인연 - 노리코" 였음을 자신도 이해하며,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마지막 명대사 두 개가 있습니다. 첫째! 동경에는 이제 다시 안 간다! 라고 잘라 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혼자 된 히라야마 할아버지가 이제 살아갈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할텐데요. 장남이 자신의 병원이 있는 동경으로 오라고 권하지만, 그 삭막한 공간과 시간들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대신 이웃들이 있는 작은 섬에서 도움과 교류를 해가며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논란이 있는 결말이지만, 자식들의 짐이 되기 싫어하는 모습이 끝까지 선명했습니다. 둘째! 이 나라는 안 돼! 라고 외치는 일본 비판의 외마디 입니다. 동경 등의 대도시만 커지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방의 지역 공동체는 무너져 내리고, 상점가는 점자 쇠퇴해 문을 닫고, 생활의 모습이 축소되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쓴소리 입니다.
재밌는 대사가 있고, 가족간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 자녀간의 인연의 끈은, 그리고 연인과의 인연의 끈은 참 놀라운 것이라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훌륭하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미울 때가 어찌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건강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쩌면, 모두에게, 짧은 인생, 언제 떠나갈 지 모르기에, 매일을 힘내어 열심히 살아가야함을 다짐하게 됩니다. / 2017. 09. 1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