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리뷰

시북(허지수) 2017. 9. 28. 04:24

 

 세상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편리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은 좋은 편, 일본사람은 나쁜 편. 이렇게요. 그래서 이웃나라 일본에 혹여 지진이라도 나면, 그래 일본은 차라리 망해버려라! 하고 좋아하는 댓글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분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열한 한국인이 있을 수 있고, 사회를 개혁하려는 정의로운 일본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국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 청년 박열과 그의 당찬 일본인 연인 가네코 후미코를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동지가 되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던 이상주의자의 꿈. 어쩌면 그를 실천에는 실패한 몽상가라 부를 수 있겠죠.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몽상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열은 그래서 참 재밌었고, 오래도록 제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었습니다. 내 꿈을 위해서는 사형을 당해도 좋다. 고작, 스물 둘! 이 굳센 각오를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천황은 가짜이며 허수아비다! 뭐가 신이냐! 오줌누고, 똥싸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겁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박열은 "개새끼" 라는 아주 직설적인 시를 써내려갔고, 그 시에 홀딱 반한 일본인 후미코가 등장! 함께 만남을 이어갑니다. 지금 일본제국은 문명국이라는 위선을 뒤집어 쓴채, 차별을 노골적으로 일삼고 있습니다. 자국국민은 1등, 식민지 조선사람은 2등 인간이에요.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하며, 저항의 저력을 보여주었고, 이대로 당하고만 살 수는 없다 이겁니다. 박열 같은 멋진 청년들은 일본으로 건너와 각종 모임들을 계속해서 만들며,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는 태도는 너무 훌륭합니다.

 

 그러다 1923년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였지요. 엄청난 재난 앞에 일본 내각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어디, 사람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킬 아이디어가 없을까? 그래서 일본 내각은 끔찍한 한 수를 던집니다. 조선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게다가 조선사람이 폭동을 뒤에서 일으키려 하고 크게 잘못했다!는 겁니다.

 

 "후미코" 같이 세상의 밑바닥을 체험한 사람은 이것이 가짜 소식임을 금세 파악했겠지만, 다수의 일본사람들은 이 잔인한 공작에 순순히 속아 넘어갑니다.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거죠. 머리를 유리하게 한 번 굴려버리는 겁니다. 괜히 지진났다고 우리가 민란을 일으켜 천황을 곤란하게 해버리면, 결국 조선인만 좋은 일 되는거네? 라고!

 

 그렇게 1등 제국 신민 자리를 유지하려는 마음은 마치 물안개처럼 마음에 깊숙히 스며들어 갑니다. 일본 자경단과 군인세력이 등장하면서, 이제 죄를 덮어쓴 조선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6천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일본 내각이 지금 너무 막나가는 행동을 하고 있잖아요. 국제사회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언론은 통제되고 있고, 박열은 이참에 나를 잡아가라고 당당히 나섭니다.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은 대거 감옥으로 잡혀갑니다.

 

 너! 박열! 불령사를 조직하여,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고 했지! 이번에는 박열을 황태자 암살범으로 내모는 2차 작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 정치한다는 높다랗기만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구축한 세계를, 제 뜻대로 움켜쥐기 위해서 모략을 멈출 줄 모릅니다. 화가 단단히 난 박열은 마침내 결단합니다. 그래 내가 폭탄 던져 황태자 없애버리려고 했다며 스스로 자백해 버립니다. 형법 73조 위반 -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엄청난 화제의 사건이었고, 일제는 이를 통해 조선인 학살을 감추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럼에도 박열의 편에 서는 후세 같은 일본인 변호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박열과 후미코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다테마스 판사가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두 사람의 다정하고 정겨운 사진을 찍게 해주었습니다. 일본인 후세 변호사는 매우 의미 깊은 이야기를 던집니다. "너무 깊은 곳까지 알고 있으면 생명을 잃게 된다네." 천황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그 진실을 알았던 사람은 정말 소수였을까요? 왜 다수는 제국주의 시민이 되어서, 목숨까지 걸어가며 끝내 전쟁도구로 이용되고 말았을까요.

 

 저는 오늘날에도 일본 아베 정권에 반대하며,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시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백여년 전 그 때에도 있었고, (영화에서는 무려 의원의 아들이 황태자를 없애려고 시도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있다는 겁니다. 끝으로 기억에 남는 대목이, 함께 사형을 각오한 후미코가 자서전을 넘기며 형용사를 넣지 말라는 점에, 참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삶이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않았을테지요. 그러나 동지! 함께 길을 가는 동지를 만났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기에, 눈물을 흘렸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열은 비공개 재판을 받으며, 예상대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데, 끝까지 일제에 의해 이용되다 버려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긴 감옥생활, 연인 후미코를 잃은 비극까지, 박열의 삶 또한 처절했고, 힘겨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선조들 덕분에 비로소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한글로 공부를 하고, 한글로 글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양심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좋은 영화였습니다. 짝짝짝. / 2017. 09. 2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