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사랑에 미치다 (Touched with Fire, 2015) 리뷰

시북(허지수) 2017. 10. 15. 02:05

 

 평소라면 당연히 지나칠 영화 였습니다만, 어머님이 조울증으로 오래도록 고생중이므로, 이 병에 대하여 조금 더 이해해보고자 시청에 나섰습니다. 극적으로 재밌다거나, 감동적인 부분은 특별히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대사들과 장면들이 오롯이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었습니다. 조울증으로 고생 중인 남녀 - 연인. 이 두 사람의 관계는 행복할 수 있을까? 거기에 정면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한편으로는 조울증에 걸리면 가족들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을 선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울증 이해 영화로써 그럭저럭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증이 나타나는, 1형 양극성 장애 - 즉, 조울병을 겪으면 치료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맘대로 놔두면 재발률은 90%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며,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뭐, 이제 좀 괜찮겠지~ 라면서 약을 중단하면 또 다시 조증이 일어날 수 있고, 이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에 가까운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게 됩니다. 한마디로 줄여서, 제발 약 좀 잘 먹어! 거기서부터 치료의 출발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영화는 조울증의 다양한 모습들을 잘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잠을 제대로 안 잡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배려심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언어는 논리적이지 않으며, 흔한 요즘 말로 "아무말 대잔치"를 의미 없이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생각이 너무 빠르게 정신 없이 흘러 버립니다. 물론, 조금 양보해 긍정적으로 접근해서, 이 상황을 "영감(inspiration)"이 된다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정작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리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울병으로의 여행 등, 몇 가지 관련 책을 살펴본다면, 작가, 화가, 음악가 등의 예술가 중에 조울병을 앓은 사람이 상당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울병은 창조적인 일과 관련성이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약을 먹으면 창조성이 죽어버리나요?

 

 거기까지는 자세히 연구된 바 없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약간씩 다르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약을 먹으면 생활을 충분히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 안정감을 토대로 창조성을 계속 유지시킨 사람이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 긍정적인 대목입니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하니, 조울병은 그냥 방치했다가는 사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위험이 있습니다. 영화에도 이같은 자살시도의 아찔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병은 반드시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태도를 올바르게 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여자 주인공 카를라는 책을 써냈고, 글에 분명히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울병으로 고생하다가 자발적 입원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것이 뭐 말처럼 쉽지는 않을테지요. 카를라는 자꾸만 "왜 나는, 왜 나는" 을 따져묻습니다. 자신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며 저는 꽤 마음 아팠습니다. 극한의 경쟁사회 속에서 (충격을 받거나 등으로), 정신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자꾸 왜를 따져보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삶을 소중히 여기며,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을 실행해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카를라는 폐쇄병동 안에서, 마르코 라는 역시 조울증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르코 역시 정신세계가 특이합니다. 건물옥상에 올라가서 집까지 순간이동하기를 바라다가 경찰에게 운좋게 발견되었습니다. 카를라-마르코 두 사람은 병동 안에서, 우리가 외계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끈질기게 집착하게 되었고, 포크를 레이더라고 생각하며 자기들만의 의식(ritual)을 만듭니다. 이 곳에서, 영혼이 빠져나가서 우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막 나가는 모습이 당연히 좋게 보일리 없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은 두 사람을 서로에게 악영향이라고 판단하여, 강제로 갈라놓기를 실행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꽤 현실적이죠? 조울증 커플이 현실감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행복하게 가정을 꾸려나가기란, 사실은 매우 힘든 일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저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약을 정상적으로 철저하게 복용하고, 의사 선생님의 원칙들을 잘 지켜나간다면, 조울증이 있어도 직업을 갖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속 마르코 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약을 자꾸 자꾸 버려버리고, 겨우 알아봐 준 직장도 뛰쳐나가버리고, 맥도날드 케찹으로 먹고 산다는 등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자꾸 사로 잡히면 안 됩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다다르면, 마르코의 연인, 카를라가 임신했던 아이를 지우는 마음 아픈 결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코가 카를라의 말조차 듣지 않았거든요. 임신한 카를라를 홧김에 밀치거든요.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이런 정신이상자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결별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대신에 남은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써내려갔던 글들이었네요.

 

 조울증 약보다는 마리화나를 좋아했던 철부지 마르코! 그러다가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세상에서 못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일종의 경고를 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조울증에 걸렸다 해도, 이렇게 막 살면 안 된다. 약 꼭 먹어라! 라고 말이지요. 그래도 삶은 얼마든지 계속된다는 거에요!

 

 리뷰를 마치며,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모든 변화는 아무리 갈망하던 것이라 해도 우리를 조금은 우울하게 만든다. 남겨두고 떠나는 것도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이전의 삶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조증(mania)의 환각 같은 그 아찔함으로 마구잡이로 달려가기에는 삶은 훨씬 더 고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삶은 더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약을 먹더라도 건강한 삶이 올바릅니다. 현실의 내가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렇게, 조금은 우울해지면 뭐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그 새로운 삶을 당당히 또 겸허히 맞이할 수 있기를 저는 응원합니다. 이 글 역시, 조울병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덧붙여, 저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므로, 혹여 의학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부담없이 의견 남겨 주세요.) / 2017. 10. 1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