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우상을 제하라 (사무엘상7:3-12)
이번 주는 설입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고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을 만나고 음식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오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참 좋은 날입니다. 저는 이 명절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민족의 기쁜날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설을 맞는 사람들마다 각자 사정은 다르겠지만 설은 확실히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번 설 기간 동안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종을 그가 지키시고 시험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출입을 그가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동안 왕이 없이 큰 일이 생길 때마다 일어난 사사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민족의 지도자는 있었지만 그들도 왕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라는 이념이 있었기에 인간왕에 대해서는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사사가 나와서 이스라엘의 현안을 처리했습니다. 물론 그 사사는 모든 지파를 다스린다기보다는 인근의 몇 개 지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재판권을 행사하며 전쟁을 이끄는 정도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민족이라기보다는 부족들 지파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보는게 더 맞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시직이나 임기제도 아닙니다. 한번 사사가 되면 그가 죽을 때 까지 나라를 다스립니다. 물론 화려한 궁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관료조직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잘 정비된 상비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외적이 쳐들어오면 나팔을 불러 사람들을 모으고 그 전쟁을 지휘했으며 평시에는 큰 나무아래 자리를 마련해서 사람들을 재판하는 정도의 일을 했지만 그 사사들은 비교적 나라를 잘 다스린 것 같습니다. 물론 사사들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사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사사시대가 흘러갔습니다.
우리는 에훗과 기드온과 삼손같은 사사들의 활약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흘렀고 마침내 사사시대가 종언을 고하려고 합니다. 본문의 사무엘은 사사시대를 마감하는 최후의 사사이자 이스라엘의 건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삼고 새로운 왕국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사사가 될 초기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고 엘리 제사장의 가족이 죽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져서 그 압제 하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에 반환되었지만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실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중간에 어떤 사람, 일 개인의 집에 안치가 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까 체제 정비도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무엘이 사사가 되면서 뭐라고 합니까?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사실상 이 말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년의 운세를 보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작명소에 찾아 가서 이름을 짖고 고사를 지내고 일월성신을 섬기며 제사를 지내고 절에서 안식을 얻고 각종 금기를 설정해 두고는 그걸 지키려하고 뭐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에는 이사비를 더 받으려하는... 안웃깁니까?
소위 ‘손 없는 날’에 이사하면 더 좋다고 하는 풍속은 사실 아무도 안 지킬 것 같은데 단지 장삿속으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일인지 아니면 정말 손 없는 날에 이사하려는 이들이 많은 건지...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지요. 아직도 정월 대보름에 달보고 비는 이들이 있다고...
우리 속에 너무 많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우상숭배의 의식을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릅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우상을 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은 사무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서 다시금 우리가 강성해 지려면 우리가 복된 자가 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숭배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 좋은 명절이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민족에서 계속되려면 이 좋은 명절날 제사를 일소해야 합니다. 차례를 없애야 합니다. 그건 누가 뭐래도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이걸 제의적 성격이 없는 조상을 기리는 좋은 행사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주축이 되어서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 내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따져보면 저들이라고 해서 항상 하나님을 잘 섬겼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보다 더 목이 곧고 강포했기에 툭하면 하나님 신앙에서 벗어나 이방의 우상들을 섬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나안이나 애굽이나 아람나라의 신상들을 도입해서 음란하게 그들을 섬겼습니다. 이웃나라들이 우상을 섬기는 짓거리를 보니 너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번번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얻어맞았으며 고난을 당했고 그리고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빌면서 돌아오는 그러나다 뭔가 몸이 편해지면 교만해지고 다시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그리고 또 얻어맞고 아파한 다음에야 ‘잘못했습니다’하면서 돌아오는 그런 가장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너무 못나서 완악하기에 때리고 구원하고를 반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해서 보여 줄 본보기가 필요해서입니다. 만일 저들이 신실해서 한번만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는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섬겨서 더 이상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징계할 필요가 없다면 성경에 쓸 말이 없쟎아요.
사사기의 역사는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무엘 역시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오려거든 너희 중에서 이방의 우상들을 제하라 그리고 하나님만 섬겨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사탄에게도 속하게 되고 사탄의 명령도 지켜 행하고 사탄의 풍속도 지키게 되면 그는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징계를 내리십니다. 오천년 한반도에 사실 너무 우상의 풍속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말도 못할 만큼 많이 있습니다.
저희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집 문 양옆에 소금을 뿌려놨습디다. 참 오랜만에 보는 미신인데 아직 이런 집들이 많이 있나 봅니다.
이방 신들 중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으로는 바알이 있습니다. 여기 본문의 아스다롯은 우리가 매우 잘 알고 있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비너스, 미의 여신 비너스가 바로 아스다롯입니다. 앗수르에서는 ‘이쉬타르’라고 불렀고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라고 불렀습니다. 미와 전쟁의 여신이라고 불립니다.
비너스에 대한 제사의식은 아주 음탕합니다. 예쁜 여사제가 헐벗은 차림으로 나와서 음탕한 춤을 춥니다. 그리고는 그 신도들과 여사제들이 함께 즐기는 그런 의식을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여호와에 대한 제사에 비하면 너무 너무 흥미있고 재미있고 쾌락적이므로 상대가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요즘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고 오직 예배를 재미있게 하려고 시도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아무리 재미있는 예배라도 나이트에 가서 노는 것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재미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과 진리로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회개를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방신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이것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신의 잔재 미신같은 것들이 성도들의 생활 속에 남아 있다면 그는 결단코 자기의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거나 또는 여러 신들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유일하신 참 신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이라고 한다면 그건 사탄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것도 타락천사로서의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는 사탄이지 신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거짓된 것들로 포장된 우상들에게 절하고 섬기는 사람을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먼저 우리가운데 우상의 잔재를 일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당시 이스라엘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해서 그들의 속령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블레셋 인들이 돌려줘서 이스라엘 경내에 있기는 했지만 실로의 성소에는 안치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인들은 철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청동무기만 사용했답니다. 그러니까 청동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지요. 이웃 블레셋뿐만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들도 사사시대 초기부터 철기를 사용하는 철기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노예의 후손 이스라엘인들이 철기를 다루는 법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주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겠다는 그 말씀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모든 사회악과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복주겠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제조건은 우상을 제하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것들도 함께 섬기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면서도 나의 이성을 더 사랑해서 과학적이란 말을 성경적이란 말보다 더 숭상하는 것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돈을 더 사랑하는 맘모니즘도 역시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서도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이용해서 치부하고 권세를 누리고 성공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담임목사자리를 무슨 대기업 사장처럼 생각하고 행세하려는 웃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심지어 내가 키운 교회라고 생각해서 남주기가 아까워 자식에게 사위에게 세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가증한 일입니다.
이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맘몬을 섬기는 것이며 사탄의 하수인인 것이며 그런 이가 설교하는 곳에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설교하는 이에게 무슨 영적인 것을 갈구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전심으로 그에게 가까이 나가고 그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겼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바알들이란 말은 좀 웃긴 말입니다. 바알이면 바알이고 다곤이면 다곤이지 바알들은 뭡니까?
당시 바알은 풍요와 폭풍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섬겨야 할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은 다곤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다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빼앗긴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당에다가 두었다가 다곤 신상이 부러져서 언약궤를 도로 돌려 주었지요.
하나님의 승리를 목도한 블레셋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두려워 언약궤를 아무런 조건 없이 황금예물까지 바쳐서 돌려보냈는데 오히려 이스라엘 이 무지한 야만인들은 그 형편없는 다곤의 아들이라는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알들’이라고 한 말은 여러 지역에서 바알의 이름을 ‘바알브릿’이니 ‘바알세붑’이니 ‘바알브올’이니 하고 약간씩 달리 부르고 있었는데 이걸 그냥 합쳐서 부른 겁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바알은 농사짓는데 아스다롯은 음탕한 짓을 하는데 필요한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와 쾌락의 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간들은 부와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을 저버립니다. 아니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들 중에서도 부와 쾌락은 여전히 가장 으뜸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거족적으로 가지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 앞에 총회로 모인 겁니다. 6절에 보면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미스바는 예루살렘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백성들은 나중에 미스바에 모여서 사무엘에게 인간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는 곳입니다. 아마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모이기 편한 중부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미스바에 모인 이유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간의 언약관계를 회복하여 이스라엘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할 때 우리는 분명한 자각과 결단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하나님 앞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우리말로 ‘시부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정확하게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 속에 잡된 것이나 우상의 잔재나 미신을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한 영혼에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미스바에 백성을 모아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이 기도는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는 장성해서 이제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건 주제에 약간 벗어난 것이지만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그렇다면 그가 장성하여 부모의 노고를 배반하지 않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런 아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의 내용을 잘보면 한가지 흐름이 관찰됩니다.
5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중보기도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4절에 보면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보기도를 하기 전에 거족적인 성회로 모이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해서 자기들 중에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전심으로 섬겼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어떤 결론이 나옵니까?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기 전에 이미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구나! 그래요, 우리가 아직도 죄악 중에 있다면, 잘못된 길에 있다면 인간 누구라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난 이후에야 하나님에게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지 않고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용서를 구하기전에 미리 잘못을 바로잡아서 자기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죄를 회개하기 전에 먼저 나의 죄 때문에 피해를 본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회개한 깨끗한 마음에 성령이 임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시험이 닥칩니다. 너희가 정말로 회개했는지를 내가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게 본문에서는 블레셋의 침공으로 나타납니다.
블레셋이 섬기는 우상을 제거했다는 것은 곧 블레셋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이스라엘이 자주독립을 하겠다는 표시입니다.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반란이 일어난 겁니다. 독립전쟁입니다. 이때 눈에 보이는 블레셋의 군대가 무서워서 항복하고 종교개혁이 무산되고 여전히 블레셋의 우상들을 섬기며 블레셋의 말을 듣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용서와 회개의 기도, 중보기도가 거짓이 되는 거지요.
이어서 본문 6절에 이스라엘 총회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거족적인 회개기도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는 행위는 제의적 의미를 가진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추측만 될 뿐이지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 사막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을 쓸데없이 땅에 붓는 행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많은 신학자들은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쏟아 내듯이 물을 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를 의미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성회로 모인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회개입니다. 나의 지난 허물을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고백이 있고 그리고 회개하고난 연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성회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날 종일 금식하고”
금식 역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금식이 전적으로 그날 하룻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인지 부분적으로 한끼 정도 하는 그런 금식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해가 뜨고 나서 질 때까지 하는 그런 금식, 이슬람교에서 하는 그런 금식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확한 형태인지는 정확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모습의 형태로 나타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 물을 붓는 것이나 금식하는 것이나 우리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그런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렇게 분위기를 고조하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입으로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자인하는 겁니다.
범죄하다는 말은 표적에서 벗어나다, 또는 길을 잃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을 가지 않고 길을 잃은 것처럼 다른 길로 가거나 정확한 하나님의 지시대로 목표를 향하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은 다 죄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번 말씀하셨지만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의 잔재도 있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것이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고 세속화되고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주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적은 것이나 믿음이 없는 것이나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의 잔재를 행한다면 우리의 삶속에 인식 속에 우상숭배의 잔재가 있다면 교회 안에 세속의 풍습이 침투해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교회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복락 속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일체의 우상의 잔재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성경은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라고 말합니다. 실컷 회개를 시켜놓고 하는 일은 결국 자기가 집권하는 일입니까? 이렇게 보면 마치 사무엘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핑계하고 미스바에 모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회개를 촉구하는 성회가 사무엘의 사사 취임식처럼 보입니다.
여기 ‘다스리니라’는 말은 본래의 뜻은 ‘재판하다’는 뜻입니다. 아마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백성들의 성회가 있기 이전에 이미 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의 회개와 민족성 회복 그리고 새로운 언약의 체결 그리고 블레셋으로부터의 독립을 계획한 듯합니다.
원래 사사는 재판하는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미스바 성회의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블레셋과 싸웠고 기적적으로 이겼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군사강국이자 문화적 기술적으로 선진국입니다. 다섯 개의 폴리스로 이루어진 나라로 철기문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모여서 민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에게로 돌아오자 그 첫 열매로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기고 독립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에 관한 자세한 말씀은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을 잘 보면 우리가 생존하고 독립을 유지하고 우리를 위한 복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잔재를 일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먼저 개인들이 그렇게 하고 나아가 민족적으로 집단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아버지 제가 지은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나와 영원히 함께 해 주십시오’하는 고백과 선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가 회개했다는 것을 말로 믿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 하지 않아도 속 중심을 아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를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회개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짐했는가를 평가하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앞에 회개했는지 그만 섬기기로 했는지는 이번 설에 드러날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만 전심을 기울인다는 표시를 보여야 합니다. 멋지고 행복한 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승리한 성도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8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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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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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마커스 라는 목요예배모임이 있습니다. 찬양곡들도 참 좋고요. 그런데 이런 현수막이 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살아가다보면 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면 마음이 더욱 괴로워지곤 합니다. 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블레셋 사람들을 이겨내고 싶어요.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좋다, 우상을 제하라. 기도하라. 기독교인 답게 행동하라. 남을 도울 수 있다면, 남을 도와야 합니다. 물에 누군가가 빠졌다면 일단 구하고 봐야 합니다. 숨을 쉬기 조차 힘들게 느끼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 눈물이 마음 속에 가득차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문제들 보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른다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삶을 마치 기적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물들이는 그 날을 저는 소망합니다. 그 날이 오늘부터 이기를 더욱 꿈꿉니다. 힘내세요. / 2018. 02.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