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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손흥민과 차범근의 모습 (사진출처 : 한국일보)

 

 초안공개일 2008. 07. 08 / 사진과 동영상 업데이트 및 내용 추가 작성일 2019. 11. 03.

 

 축구이야기를 언젠가 다시 써야겠다고 항상 가슴 속에 오래도록 품어왔습니다. 바셋님, 푸에르타님, 즐라쭈리님 등 이 블로그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환경이 좋아지길 더이상 바라지말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주 1회씩 써야겠다고 다짐한 게 최근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의 세월을 살아보니,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간단히 쓰면 힐링 된다는 것이고... 글 쓰는게 물론 제법 고생이긴 하나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빌려 그 즐기는 고생이 있으면 (삶의) 고통까지 치유한다는 거에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 쓰는 글쓰기가 되겠지요. 오래 전일이긴 하나, 300명 정도를 쓰는 동안, 정말 큰 사랑, 깊은 애정, 많이 받았습니다. 축구에 쏟아부어 본다면 52주 x 10년이면 500명이 더해진다라... 그리하여 아마 20년이면 제가 중년 신사가 될 무렵, 젊은 날의 꿈인 1,000명의 축구스타열전이 완성되겠지요.

 

 오늘 11월 3일 은사님 생신이라 제게는 특별한 날이기도 했는데요. (공식적으로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구요.) 운동하느라 집을 나서며 유치원 앞 길가의 벽을 예쁘게 다시 꾸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 업데이트가 사실은 굉장한 거구나를 영감을 크게 받았습니다. 게다가 축구는 통 안 보시는 교회 목사님 조차도, "너 정말 축구 좋아하잖니? 부담없이 막 써보는거야, 써라 써. 사람들 미소 짓게 하는 얼마나 좋은 일인데." 라고 폭풍 위로와 칭찬을 마구 선물해주십니다. 그제서야 아, 이제 다시 도전할 때가 되었구나를 받아들이고, 레전드와 현역을 오가며 축구로 제대로 힐링하자!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 첫 번째 업데이트는 제가 사랑하는 분, 차범근 선수 이야기 입니다.

 

 음... 2008년으로 잠시 추억을 회상하면, 저 블로그 1년차의 초심자였고요;;; 자료정리차 시작해서, 당시 100번째 축구선수 포스팅을 기념해, 대한민국의 자랑 차범근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다, 제 나름대로 큰 용기를 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름 : 차범근 (Cha Bum-Kun)
 생년월일 : 1953년 5월 22일
 신장/체중 : 179cm / 79kg
 포지션 : FW / MF
 국적 : 대한민국
 국가대표 : 121시합 55득점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14년 135경기 58득점으로 수정됨)

 차붐에 대하여...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팬이 쓰는 부족한 글.

 차범근은 8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였습니다. 또한 분데스리가 굴지의 스트라이커 이기도 했습니다. 차범근은 체격도 좋았고, 특히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뛰어난 드리블 실력과 호쾌하면서도 정확한 슛은 도무지 아시아 선수의 레벨이 아니었습니다. 차범근은 당당하게 분데스리가에서 활약을 펼쳐나갔던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지금이야 분데스리가가 EPL, 라리가, 세리에 보다 간혹 저평가 받기도 하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분데스리가는 세계최고봉이라고까지 평가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서독은 70년대 유로, 월드컵을 연거푸 우승했으며, 당시 유러피언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이 3연패를 차지하고 그랬습니다.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 이후, 10년 동안 이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7번이나 올라갔던 것이 분데스리가 팀들이었지요. 이 리그가 당시에 무조건 최고였다 라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야말로 분데스리가의 수준은 당시 대단했습니다.

 거기에 아시아의 한 젊은이가 도전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차범근. 1978년, 스물다섯살의 차범근은 서독의 클럽팀 다름슈타트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차범근은 당시 한국국가대표 선수였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의 대표였지, 분데스리가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지요. 당연히 그의 실력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차범근도 분데스리가 첫 시즌에는 단 1경기에 출장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크푸르트 팀으로 이적하게 되는 차범근. 여기서부터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전설이 펼쳐집니다. 10년동안 차범근은 늘 25경기 이상 출장했습니다. 후후, 첫 시즌부터 활약을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차범근은 언제나 주전이었고, 팀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시즌에 12골을 넣었으며, 또한 팀은 UEFA컵에서 우승까지 차지했습니다. 차범근의 공헌이 대단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4시즌 동안 46골을 넣었습니다. 꾸준하게 출장하면서, 꾸준하게 골을 넣었던 차범근이었지요.

 

 이제 더 이상 차범근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82-83시즌 차범근은 리그에서 15골이나 넣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꽤나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범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차붐이 떠나고 나서 프랑크푸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프랑크푸르트는 이 당시 20년 동안 10위권 밑으로 떨어진 적이 단 2회 밖에 없던 나름 중상위권에서 늘 자리잡고 있던 강팀이었습니다만, 팀의 주축 중 한 명인 차범근이 떠나고 리빌딩도 실패하면서, 곧장 16위로 추락했고 5년 연속 중하위권에서 고생해야만 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단순하게 접근한다면, 잘하는 선수들 몇몇 빠지면 티가 안 날 수 없어요.


 레버쿠젠에서도 차범근의 활약은 변함없이 빛났습니다. 분데스리가 5년 연속 두자리 수 득점을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85-86시즌에는 17골이나 넣습니다. 차범근은 "올해의 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정말 눈부셨습니다. 그는 존경받던 선수였으며, 분데스리가의 빅스타였습니다.
 
 당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비독일인 중에서 차붐과 비견될 수 있는 선수로는 케빈 키건과 알란 시몬센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선수 모두 유럽최우수선수상까지 수상한 바 있습니다. 한편 우리 차붐은 겸손한 자세로 이 올해의 스타 수상에 대해서 혹여 자신이 뽑힌 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워낙 이 상을 받았던 걸출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지요. 잉글랜드의 빅스타 케빈 키건도 1979년 분데스리가에서 이 상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당신을 존경하는 선수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 많았으니까 말입니다.

 차붐은 분데스리가에서 리그 통산 98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비독일인, 즉 외국인선수로는 최다골이었습니다. 덴마크의 레전드 알란 시몬센이 분데스리가에서 넣었던 통산 76골의 기록을 바로 한국의 레전드 차범근이 갈아치웠습니다. 여기서 이 점을 함께 고려한다면 더 좋겠죠? 알란 시몬센은 명문 보루시아MG에서 뛰면서 발롱도르(유럽최우수선수상)까지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차범근, 당신은 명문팀에서 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해냈습니다. 항상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한 골을 더 넣고자 노력했고, 결국 그 수라장에서 알란 시몬센의 외국인최다골 기록까지 넘어섭니다. 유럽선수도 아닌, 아시아에서 온 젊은이가 명문팀이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멋진 활약을 펼쳐나갔으며, 분데스리가 올해의 스타로 선정되었으며, 비독일인 최다골 기록까지 달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날렸던 그의 이름이 바로 차범근 입니다. 그 시대를 살던 독일 축구팬들이 차붐을 잊을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금의 21세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에이, 98골이 뭐에요~ 차붐은 유럽최우수선수상도 받지 않았잖아요? 그가 챔스리그 우승을 했나요? 그가 분데스리가 리그우승을 했나요? 맞아요. 98골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단지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축구선수이지요. 차범근은 단 한 골도 PK골을 넣지 않았습니다. 모두 필드골이었지요. 물론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대학시절부터 승부차기와 PK에 약했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맞아요. 그는 유럽최우수선수상(발롱도르)도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상은 1995년, 조지 웨아가 되어서야 비유럽권 선수에게 상을 주었지요. 차붐은 그냥 독일로 귀화를 하고, 독일대표팀에서 뛰고, 그렇게 활약을 펼쳐서 유럽에 더 크게 이름을 날릴 기회도 있었습니다. 요즘의 다민족을 포용하는 독일대표팀 처럼, 만약 차범근이 귀화를 하고 독일 대표로 뛰게 되었다면, 발롱도르 순위권에 차붐의 이름이 올라갔을 가능성도 없지만은 않았겠지요. (분데스리가와 리그는 다르지만 세리에 A 에서 이름을 날리던 덴마크의 엘케어 라는 선수도 약팀에서 멋지게 활약하며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차범근, 그는 참 어리석어서(?), 참 고맙기도 한 그런 사람이에요. 또한 경기장에서의 예의는 그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분데스리가 통산 옐로카드 1장. 상대가 반칙을 해도, 단호하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보복 대신에 용서를 선택한 선수였지요. (*귀화 부분에 대해서 제가 오해한 바가 있어서 2010년에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차붐은 트위터를 통해 귀화는 와전이며, 당시 독일대표팀 감독이 차범근 같은 공격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 2010.07.수정.)

 실제로 거친 태클로 인해서, 부상을 당해서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차붐은 그 선수에 대해서 미워하지 않으며 용서한다고 발언합니다. 독일이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선수로서 많은 이들이 차붐을 존경해 마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공격수 클린스만 (=독일국가대표 통산득점 2위) 마저도 자신은 차붐만큼 성공한 공격수가 아니었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스타성만 놓고 본다고 해도 차범근은 그만큼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차범근은 리그우승도, 유러피언컵 우승도 하지 못했습니다. 명문팀에서 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우승컵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87-88시즌 UEFA컵이었지요. 소속팀 레버쿠젠은 당시만해도 이제까지 주요트로피가 없던 팀이었지요. 제대로 된 우승 한 번 못해본 팀이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그 해 레버쿠젠은 UEFA컵에서 돌풍을 일으킵니다. 8강전에서 통합스코어 1-0 신승을 거두며, FC바르셀로나를 침몰시킵니다. 그렇게 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결승 상대는 스페인의 에스파뇰이었지요. 에스파뇰도 16강에서 인테르밀란을 침몰시키는 등 좋은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 1경기 원정을 떠난 차붐과 레버쿠젠팀은 0-3 으로 참패를 당하고 돌아옵니다. 이를 우짭니까. (과연 레버쿠젠은 이 시절에도 만년 준우승팀입니까?)

 2경기를 홈에서 가지게 되는 레버쿠젠. 전반전 까지도 레버쿠젠은 한 골도 넣을 수 없었고, 준우승이 너무나도 유력해 보였습니다. 이건 정말로 다 실화입니다. 후반전 레버쿠젠은 열심히 에스파뇰의 골문을 두드렸고, 드디어 첫 골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추격골이 터집니다. 이제 레버쿠젠은 정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경기 종료 약 10여분을 남겨놓고, 마침내 동점골이 터집니다. 그렇습니다. 차범근의 골이었습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차붐 뿐만 아니라 레버쿠젠 선수들이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천금같은, 드라마같은 동점골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분데스리가의 스타 다운 결승전 활약이었습니다. 결국 원정가서 0-3 대패를 당했던 레버쿠젠은, 홈에서 후반에만 3골을 몰아넣으면서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차기 끝에 UEFA컵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은 레버쿠젠의 첫 트로피였습니다. 차범근, 당신이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레버쿠젠은 첫 트로피부터 유럽클럽대항전 트로피를 따냈으니, 그것도 참 재밌는 팀이군요. 하하.

 이후 차범근은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308시합을 출장했습니다. 98골 기록은 14년동안 외국인최다골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308시합 출장기록은 세월이 더 흘러 2007년이 되어서야 깨어졌습니다. 당시 차범근의 활약상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비독일인으로서는 알란 시몬센과 케빈 키건과 비견될 스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나타난 빛나는 선수였지요. 물론, 국가대표로도 잘 찼습니다. 58골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깨어지기 힘든 대한민국 최다골 기록이 아닐까 싶고요.

 차범근은 유럽에서도 아시아 출신의 선수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선구자였습니다. 그가 개척해 놓았던 유럽무대의 길을 이제는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밟고 있습니다. (예컨대, 맨유 박지성과 토트넘 손흥민은 너무 유명하죠.) 차범근, 그는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대한민국 불멸의 레전드입니다. 옆나라 일본에도 레전드 선수로 올림픽 득점왕에 국대 75득점을 기록했던 가마모토(釜本)라는 명공격수가 있었지만, 차범근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라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위키에 가보면 가마모토는 일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차범근은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선정 20세기 아시아최우수선수라고 그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차범근의 세계적인 선수로서의 위상은 20세기 아시아에서 비교할 선수가 정말로 없었습니다. 서독의 국가대표를 맡기도 했던 귄터 네처가 차붐을 두고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참 인상적이고 훌륭한 극찬이 아닐까 합니다. 귄터 네처는 차범근을 두고 어떠한 리그, 어떠한 팀에 가더라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라고 평가합니다. 차범근은 참 열심히 하고, 참 훌륭한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명공격수였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에 활약했더라면, 매번 밤마다 Live로 중계 보면서 환호활 수 있었을텐데, 그게 저는 조금 아쉽군요 (웃음)

 이제 부족한 글을 마쳐야 겠습니다. 그래요, 차범근은 축구의 신 이런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차범근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전설적인 축구선수임에는 당연히 틀림없습니다. UEFA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으며 팀을 감격의 첫 우승으로 견인하기도 했으니, 많은 독일인들이 지금까지도 기억하며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는 그가 바로 차범근입니다. 독일에는 정말로 차범근을 위한 시까지 존재합니다. 아, 대한민국 축구에 그가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맞다, 이건 전설이긴 한데요. 국가대표로 뛰었던 경기에서 7분 사이에 해트트릭을 했다는 놀라운 기록도 존재합니다. 음, 어쩌면, 차범근은 대한민국의 레전드라는 말로 부족할지도 모르겠네요. 감히 저는 애정을 담아 쓰겠습니다. 그는 아시아의 전설이자, 분데스리가의 전설이었습니다.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 차붐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어서, 끝으로 동영상으로 함께 첨부합니다. 다음스포츠 감사해요! 함께 보시면 더욱 즐거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그 외에도 축구경기는 있으니까 통산 372경기 121골이라고 한준희 해설위원께서 집계해주셨네요.

 

 그리고, 물론 제가 노린 건 아니고요. 기막히게도, 이 글을 쓰는 2019년 11월 3일 시점, 현재 손흥민 선수의 유럽 개인 통산골이 무려 121골. 차붐의 전설을 넘어서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그 차붐은 또 손흥민에게 따뜻한 칭찬을 잊지 않으십니다. "축구팬뿐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정말 대단하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라고 말이죠. 10년 만에 다시, 가독성을 올리고 약간씩 편집하며 읽어보니 참 긴 글이었네요. 아마 제가 그만큼 애정이 가득한가 봅니다. 차범근 감독님 감사하고요. 손흥민 선수도 부상 없이, 더욱 롱런하기를 힘껏 응원하며 마칩니다. / 2019. 11. 뉴 축구스타열전 제1화 끝.

 

댓글
  • 프로필사진 peter153 모신문 스포츠 기자가 그러더군요.."차붐같은 선수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또 나올까" 2008.07.08 21:26
  • 프로필사진 시북 peter153님 안녕하세요. 예 동의합니다. 앞으로 나오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 그래도 제 2 의 차범근이 배출되기를 소망합니다. 차붐은 위대한 선수였지요. 2008.07.09 01:07
  • 프로필사진 까삐단 뭐가
    이런글을 올리는데 망설이십니까.
    망설일고자시고 100회특집에 차붐께서 올라오는걸
    반대하는분은 없을꺼라생각하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게 있는데,
    언제엿는지 모르는데 월드컵인가. 아시안컵인가
    사우디인가 어디에게 졌다면 월드컵진출실패였을텐데
    차붐께서 후반에 급 신내림(?)으로 많은 골을넣어서
    진출했었던이야기인데 제대로 기억도 안나네요ㅎㅎ;
    음.. 개인적으로 이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발락이 2002월드컵에 한국에 왔었을땐지 언젠지 모르는데
    " 이곳이 차붐에 나라입니까 ? "
    이게맞는지모르겠지만 이런말을 했는데 참..... 멋지단 생각했습니다.
    차붐노래도 있더라구요 독일에는 ㅎㅎ
    차두리가 아버지 뒤를 이어줄까~~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축구명스타들의 아들중엔 아주잘된 케이스를
    몇명 못봤기에 ... ㅎㅎ 아쉽단 생각 많이합니다.
    차두리는 ㅎ 한국인이 나오기 힘든 신체조건을 갖췄는데 ㅎ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100회 축하드립니다.
    2008.07.08 22:56
  • 프로필사진 시북 앗, 까삐단님 빠르시군요 ^^ 하하. 괜히 또 논란이 생길 우려도 있었고, 얕은 앎으로 또 괜히 차범근 감독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고심도 있었고, 꽤 망설였어요. 발락 말도 맞습니다. 독일에게는 너무나도 참 인상적이었던 차범근이었습니다. 역시 호랑이 아들이 호랑이가 되기는 어렵겠지요. 그래도 열심히 축구선수로 뛰고 있으니까 힘내라고 응원은 합니다. 벌써 100회군요. 고맙습니다. 2008.07.09 01:10
  • 프로필사진 sssseun 아...차붐...
    차범근이 감독직하면서 그닥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까는 개념 빠진 넘들이 있지요~
    차범근이 감독에 부적합하다기보다는
    우리 나라의 썩어빠진 축협의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아무튼 요새 맨유에 복귀가 점쳐지고 있는
    레전드 칸토나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디 차붐을 칸토나와 비교합니까......?
    차붐 >>>>>>>>칸토나 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아마 차후 100년간 나오기 힘든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스피드가 좋으면 몸싸움을 못하든지
    몸싸움을 잘하면 골결정력이 안좋든지 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모든걸 다 갖춘 선수가 어디 나오기 쉽나요?
    스피드도, 몸싸움도..심지어는 스트라이커가 골결정력도 없는
    지금은 국대 현실을 보자면 차붐의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듯 합니다.
    재밌게 잘 봤어요 >< 여자인데다가 축구 상식이 얕은 저도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글을 잘 쓰시네요^^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2008.07.09 00:45
  • 프로필사진 시북 안녕하세요 여성축구팬이시군요 ^^ 일단 저는 약간 견해가 다릅니다. 에릭 칸토나도 대단한 맨유의 선수랍니다. 두 선수 다 인상적인 레전드가 아닐까 합니다. 일부 누리꾼들이 누가 더 낫냐고 비교하면서 티격태격하는건 참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알고보면 다들 멋진 선수인데... (웃음) 일본이나 한국이나 걸출한 공격수 부재로 고생이 많지요. 두 나라 모두 당분간은 국가대표 최다골 기록을 깨는일은 없을 것 같군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차붐과 칸토나라... 둘 다 한국과 맨유의 킹왕짱인데... 하하.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 2008.07.09 01:13
  • 프로필사진 바셋 제가 특이하게 생각하는 점은 아직 차범근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은 잊었을 망정 그가 한국인 이었다는 것을 뚜렸이 기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경우 대개는 그 반대로 경우가 많지요. 거기다 한국이라는 국가 인지도가 0에 가까던 시절이었는데... 희소성 때문도 있지만 그가 현역 시절 보여준 전혀 스타답지 않은 모범적인 모습에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고 추측해봅니다. 기독교의 가치관 위에 건설된 나라이지만 이미 기독교적 순수성을 잃은 그들에게 차붐의 건실한 종교생활도 꽤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레버쿠젠 경우 신인선수 정신교육을 차붐에게 전담시킨 일화는 유명하지요.
    이 때문이었을까요 차붐은 전성기를 훌쩍 넘기고 은퇴직전에도 분데스 최상위 연봉을 받았습니다. 실력 그 외에 무엇.... 당대 우리나라 선수중 차붐이 최고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반박할 근거는 없지만 세계무대에 나가 차붐만한 활약을 했을 선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07.09 22:28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외국인으로서 오히려 무시나, 차별을 받기 쉬울텐데, 역으로 존경을 받던 차범근의 모범성을 저는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제이리그에서 주장을 맡기도 했던 홍명보 선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높은 연봉을 받았던 것은 역시 정신적지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팀의 구심점 역할도 되어주었던 선수였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분데스리가에 도전해서, 30대가 넘어서도 혼신의 힘으로 필드를 누볐던 그 열정을 존경합니다. 인생은 30대부터! 두둥. 훌륭한 댓글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좀 쉬면서 생각하고 있어요. 불가리아 VS 프랑스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다룰까 싶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하하. 2008.07.10 00:54 신고
  • 프로필사진 차범근 바로알기 글 잘읽었습니다.허접하지만 제가 몇가지 반박을 해드리지요..

    1.1984년 프랑크푸르트가 리그 하위권으로 추락한건 차범근 뿐만 아니라
    브루노 페짜이를 비롯 돈이될만한 선수는 모두 팔아치웠고,팀의 간판스타들인
    휄첸바인,니켈,그라보브스키가 이미 80~83년에 걸쳐 모두 은퇴를 하였기에
    팀 리빌딩에 실패했다고 볼수있습니다..단지 차범근 이적여파로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했다는건 어불성설이라 할수 있습니다..

    2.당시 월드사커지,옹즈지같은 스포츠지는 외국인 선수 제한을 두지않고 올해의선수
    를 뽑았습니다..마라도나,지코,팔카오 같은 비유럽인 선수들이 꾸준히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허나 차범근은 10년동안 단 한차례도 후보에서조차 오르지 못했습니다.차범근이 진정 월드스타였다면 후보에라도 올라야 정상입니다..

    3.차범근이 받은 분데스리가 올해의스타상은 어떠한 권위도 없는 상입니다..
    케빈키건,알런시몬센 또한 자신의 프로필에 올해의스타상을 받았다는 문구가 없습니다..상당한 권위가 있는 상이였다면 키건과 시몬센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부분인데도 기재해놓지 않았다는건 의문을 품게 됩니다..또한 그 상은 현재 어디에도 자료를 찾을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 역대 베스트11에 모두 탈락하였습니다..
    2008.07.11 00:12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댓글 감사드립니다 ^^ 근거없는 내용은 없애고자 노력했고 가급적이면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고자 했습니다. 1번은 본디 말씀하신대로 프랑크푸르트가 하향세였고, 차범근의 이적여파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2번은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의 전설이지만, 세계적인 전설은 아니라고 제 개인적으로도 인정합니다. 마라도나, 지코 같은 세계적 전설의 슈퍼스타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키커지 표지를 차지한 것은 높이 삽니다. 3번에도 역시 동의합니다. 저 역시 키건과 시몬센을 포스팅 해놓았고, 거기에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해 차범근의 활약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아시아 선수 중에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의 17골을 넘은 선수가 아직도 없습니다. 그 점은 평가받아야 마땅하겠지요. 끝으로 역대 베스트 11에 탈락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 제가 늘 강조하는 바이지만, 선수는 단지 수치와 상만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접한 몇 마디를 이렇게 덧붙입니다. 감사합니다. ^^ 2008.07.11 01:28 신고
  • 프로필사진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선은 우리나라의 누군가를 영웅화 하자고 올린글은 아닌듯 한데..반박글이 무시하군여..그 느낌이 모라할까..누군가가 영웅화 되는것이 눈꼴 시러운거같이 보인다고나 할까여? 차범근에 대해 많이 아는바가 없었지만 이글로 인해 조금은 알게 되었고..그 분의 이력또한 궁금했었는데 좋은글이다 싶었는데..꼭 이런 시기심처럼 보이는 글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네여..하난 확실하지 않나여? 한국인이라는거..애국심이 있었다는 사람이라는것.. 2010.06.29 12:04
  • 프로필사진 시북 지금 시대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분데스리가나 이른바 빅리그에서 아시아출신 스타가 수년간 주전공격수로 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터네처의 저 한 마디(어딜가나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실력)가 지금도 의미가 있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이승철의 노래를 패러디한다면 "그런 선수 또 없습니다" 라고 평할 만큼, 훌륭한 선수였지요. 차범근은... ^^ 2010.06.29 19:30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1님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조금 표현이 험한 것 같아서 제가 정정해서 다시 달아놓겠습니다. 아래부분은 1님의 댓글입니다. [차범근은 오른쪽 날개 WF 이고, 30세가 넘은 나이에서도 뛰어났다, 분데스리가 축구경기 도중에 클로즈업 된 것을 아나운서가 소개할 정도로 인지도 있는 선수가 차붐이었다. 옛날 신문들을 찾아보면 당시 차붐의 인기와 활약들이 과장은 아니었으며 스타선수였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등 입니다.] 이상이, 바로 알기님의 댓글에 대한 1님의 반박 댓글이었습니다 ^^ 2010.07.13 12:21 신고
  • 프로필사진 ㄴ이ㅓㅣㄴㅇㄹ허 저의 의견을 얘기하자면... 월드사커지,옹즈지가 나름 권위가 잇다해도... 정답일수는 없지요... 선수를 평가하는데는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10년동안 후보에 한차례도 않오른건... 안타깝군요... 하지만 월드나 옹즈가 전부는 아니니.. 다른 차트를 보면... 괜 찮게 평가한것도 잇으니... 무조건 저평가하긴 그렇구요... 차범근이 좀 나이들어서 갓기 때문에...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다 감안해서 순위를 작성햇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걸 감안하지 않고 햇을지도 모르지요... 결론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님은 차범근을 역대로 따졋을때 어느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012.09.14 15:32
  • 프로필사진 데빌 메이 단테 아마도 한국인이란 이유로 과대평가되고 또 한국인이란 이유로 과소평가 되는 인물.

    에우제비오랑 능력치 비슷하게 해줄려고 했는데... 위에 댓글보니 생각해봐야겠군...ㄷㄷ.
    2008.09.17 21:09
  • 프로필사진 시북 에우제비오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선수에게 클래스를 매긴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무조건 S급은 넘는 선수가 에우제비오 ^^ 2008.09.18 12:17
  • 프로필사진 ㅇ로호 저는 차붐이 대단하다 생각하는데.... 제가 축구에 관한 지식을 쌓을때마다 생각되는건... 약간의 거품이 잇다는거지요.... 그것을 지적하려하는데..... 그게 한국인으로서 하지말아야 할것 같긴한데.... 저는 차붐을 루니급으로 보고 잇습니다.. 근데 루니는 역대100위안에 못든다고 저는 갠적으로 평가하고 잇습니다.... 2012.08.20 09:02
  • 프로필사진 레젼투 국대성적이 좋았다면 당연 발랑이든 올해상이든 받을수 있었겠지요. 2009.10.28 11:49
  • 프로필사진 시북 당시만 해도 비유럽권 선수에게는 발롱도르나 피파상이 상당히 어려웠지요 ^^ 저 마라도나도 그런 상과 인연이 없는 것처럼요. 굳이 상을 따져야 한다면, 우고 산체스와 마찬가지로 IFFHS에서 선정한 그 대륙의 20세기 최고의 선수라고 평한다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09.10.28 13:10
  • 프로필사진 ㅇ로호 발롱 생각하면.. 좀.. 왜 유럽인만 탓어야햇나요?.... 잘모르는데 발롱생각하면 짜증나네요.... 2012.08.20 09:04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조금씩 외연이 확장되어 간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 월드컵만 해도 참가국이 지금처럼 많지 않다보니, 이른바 좀 찬다는 나라들끼리의 잔치가 되거나 했지요. 발롱도르 역시 자신들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쉽게 생각하면 이방인에게 우리네 트로피를 주기는 어려운 시대였다고 이해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2012.08.22 14:12 신고
  • 프로필사진 차두리 퍼갈께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2010.03.08 15:02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확히 ^^ 2010.03.09 19:48 신고
  • 프로필사진 ㅇㄴㄹㅀ 그러쿤요 2012.08.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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