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축구스타열전

#65 유고의 슈퍼스타 - 미야토비치

친절한 시북(허지수) 2020. 5. 28. 12:38
728x90
반응형

 

 뉴축구스타열전 65회 업데이트! 프레드락 미야토비치, 구 유고의 전설적인 선수 중 한 명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영웅 중 한 명. 가슴 찡한 에피소드까지 있는 미야토비치의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강렬한 인상으로 정말 잊을 수 없는 스타였지요.

 

 프로필

 

 이름 : Predrag Mijatović
 생년월일 : 1969년 1월 19일
 신장/체중 : 177cm / 73kg
 포지션 : FW
 국적 : 구 유고슬라비아 (현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 73시합 28득점

 

 1998년, 32년만의 레알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 결승골의 주인공 미야토비치.

 

 미야토비치는 90년대 중반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지요. 전성기에는 훌륭한 테크닉으로 많은 관중들을 매료하던 선수였습니다. 기교적인 볼터치에, 강렬한 드리블 돌파, 빠른 발과 강력한 슈팅력까지 두루 겸비한 미야토비치는 "발칸의 속사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미드필더 출신이라 패스 실력도 일품이었는데, 화려하고 정확한 패스로 많은 어시스트도 만들어 냈습니다. 찬스를 만드는 선수였습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올백 머리스타일! 여러가지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레전드지요.

 

 한 때, 세계에서 한 손가락에 손꼽히던 공격수로 찬사를 받았던 미야토비치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국제 대회에서 활약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고는 내전으로 인해서 92년부터 수 년 동안 국제무대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90년대 중반, 한참 전성기였던 미야토비치는 클럽팀에서의 활약에 비해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습니다. 이 시대의 유고출신 스타들이 다 비슷했지요.

 

 당시 유고연방이었던 티토그라드(현재 포드고리차)에서 태어났던 미야토비치는, 1987년 현지의 클럽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어릴적 부터 축구에 대단한 재능이 있던 미야토비치였습니다. 1987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보반, 수케르, 미야토비치 등이 뛰고 있었고,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면서 우승을 손에 넣게 됩니다. 10대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미야토비치는 소속팀에서도 아주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1989년에는 유고의 명문팀인 파르티잔 베오그라드로 이적하게 됩니다.

 

 스무살 미야토비치는 나날이 그 재능이 발전해 나갔고, 국가대표로도 발탁됩니다. 1992-93시즌에는 미야토비치가 17골을 넣는 매서움을 보여주었고, 소속팀 파르티잔은 6년만에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활약들에 힘입어 1993년 드디어 서유럽의 빅리그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데려온 것은 스페인의 명문팀 발렌시아 였습니다. 이 시절 미야토비치는 골 넣는 능력과 찬스를 만드는 능력을 겸비한 공격수로 평판이 대단했습니다.

 

 스페인 라리가에 와서도 미야토비치는 잘 찼습니다. 발렌시아는 훌륭한 선택을 했습니다. 미야토비치는 라리가 데뷔전부터 두 골을 넣는 등 활약했고, 라리가 첫 시즌부터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합니다. 이듬 해에도 역시 두 자리수 득점, 1995-96시즌이 되어서는 정말 환상적인 골퍼레이드를 펼쳐나갑니다. 발칸의 속사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지요. 미야토비치는 이 시즌에 무려 28골을 폭발시킵니다. 발렌시아는 리그 최다득점을 기록하면서, 2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둡니다.

 

 일약 라리가의 특급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미야토비치는, 이듬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레알은 미야토비치가 오기 직전에는 시즌 6위까지 떨어졌던 상황이었지만, 수케르-미야토비치-라울의 삼각편대가 이끌던 96-97시즌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 트리오는 59골을 합작해냈고, 레알은 이 해, 바르샤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승은 미야토비치에게는 남달랐습니다.

 

 1996-97시즌, 미야토비치의 아들이 병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치료가 쉽지않은 뇌수종이라는 병이 아들에게 걸린 것이었습니다. 미야토비치는 90년대 초반에 결혼해서 이혼한 상황이었습니다. 아픈 아들을 곁에서 돌봐줄 엄마가 없었습니다. 미야토비치의 아들은 힘든 수술과 치료를 해야했고, 미야토비치는 병원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다음날 훈련장에 나타나고 그랬습니다. 카펠로 감독이 잠깐 쉬면서 아들을 돌봐주라고 했지만, 미야토비치는 팀의 우승을 위해서 훈련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996년 12월 7일 FC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더비매치가 열렸습니다. 수케르의 선제골, 미야토비치의 쐐기골, 레알마드리드는 승리를 따냈습니다.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하고 후반에 교체되던 미야토비치가 끝내 눈물을 보입니다. 관중들은 아들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축구장에서 유명했던 감동실화이지요... 축구장에 들어설 때면, 병실을 떠올린다는 미야토비치였습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 자신도 축구장에서 승부와 자기자신과 싸워나갔습니다. 이 날 더비 경기를 시청한 사람은 무려 1천1백만명이 넘었고, 당시 최다 시청자 기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여하튼 이러한 감동적 승리가 있었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불과 승점 2점 차이로, 바르샤를 제치면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을 힘입어, 이듬해 1997-98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레알마드리드는 결승까지 오릅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세리에의 명문 유벤투스입니다. 당시 유벤투스는 지단, 델피에로, 인자기, 다비즈, 페루치 등 호화멤버를 자랑했습니다. 경기는 너무나 팽팽하게 흘렀습니다. 후반전, 한 번의 결정적 찬스에 미야토비치가 공을 잡았고, 너무나 침착하고 간결하고 부드럽게 결승골을 터뜨립니다.

 

 1-0 승리. 레알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습니다. 32년만이었지요. 그 결승골 주인공이 바로 미야토비치였습니다. 이 시절 미야토비치는 유럽에서 정말 손꼽히는 빅스타였습니다. 1997년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는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2-3위가 각각 호나우두, 미야토비치, 지단 이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도 미야토비치는 2시합에 7득점을 기록하는 등 발군의 활약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본선으로 이끌었으며, 호나우두와 함께 득점왕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남미에 호나우두가 있다면, 유럽에는 미야토비치가 있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1998년 월드컵 본선무대, 유고는 스토이코비치, 미야토비치 등 90년대 유고의 에이스들을 앞세우며 16강에 진출합니다. 거기서 만난 상대가 한국을 5-0 으로 대파하면서 16강에 오른 강호 네덜란드. 쉽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의 대스타 베르캄프가 선제골을 터뜨렸지요. 하지만 유고는 동점골을 터뜨렸으며, 후반에는 페널티킥까지 얻어냈습니다. 미야토비치가 키커로 나섰습니다. 역전승을 거둘 것인가? 하지만 가혹하게도 미야토비치의 강슛은 골대를 강타했고, 실축을 하고 맙니다. 끝내 경기는 종료직전에 터진 네덜란드 다비즈의 결승골이라니! 네덜란드가 2-1 로 승리를 거두었고, 유고는 탈락의 아픔을 맛보고 맙니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미야토비치였지만, 정작 본선무대에서는 빛 대신 어둠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스타의 비애라고 생각합니다. 이태리의 그 로베르토 바조처럼...

 

 이후, 미야토비치는 나이가 30대로 넘어가고, 부상에 시달리면서 쇠락기를 보내게 됩니다. 1999년에는 세리에의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겼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펼치지 못했습니다. 2002년 스페인의 레반테로 소속팀을 옮기게 됩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커리어입니다. 한편 왜 2부리그에 있던 레반테에 이적한 것이냐 하면, 이것도 순전히 가족 때문이었습니다. 1부리그에서 여러 팀이 미야토비치에게 오퍼를 보냈지만, 그는 레반테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이 사는 곳이 바로 발렌시아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픈 아들 곁에 있고 싶어서 그는 이 레반테 팀을 선택했습니다. (레반테는 가족이 살고 있는 그 발렌시아 지역을 연고로 합니다) 정말 지극히도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003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현재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포츠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국내 기사들에 의하면, 현재 레알 마드리드 단장이라고도 표기되는군요. 국내에도 알게 모르게 미야토비치의 팬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찌 잊겠습니까, 이렇게 인상적이었던 유럽의 슈퍼스타를... 그는 수백골의 대단한 통산 커리어를 써내려갔던 선수는 아니었을지라도, 사람들의 기억에 진하게 남는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던 빛나는 레전드였습니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덧붙여, 동영상을 새로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2008. 07. 18. 초안작성.

 2020. 05. 28.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

 

728x90
반응형
댓글
  • 프로필사진 나무늘보 솨!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마냥 애정을 갖던 선수/ ㅜㅜ
    2008.07.18 13:43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언제나 애정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늘보님 고맙습니다 ^ㅡ^* 2008.07.19 10:56 신고
  • 프로필사진 악플러 바셋 레알이라면 학을 띄었는데 수케르, 미야토비치가 다 넘어가다니... 나 이거원!! 망연자실했었지요. 아들내미는 잘 살고있나 모르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2008.07.18 14:39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아들내미 자료를 좀 뒤져보았는데, 자세히 나와 있는 곳을 찾기가 조금 어렵더군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미야토비치는 저러한 생활태도로 더욱이 많은 존경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레알 지도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올해는 바르샤가 잘 해주기를 ^^ 2008.07.19 10:58 신고
  • 프로필사진 까삐단 음.. 그 아들 이름을외치던 엘 클락시코 더비를
    인터넷으로 예전에 본기억이 나는데
    상당히 감동적이더군요.

    수케르 - 미야토비치 - 라울 . 이라인은. 정말
    레알역사상 가졌던 공격라인중 Best 5안에 들기
    아깝지가 않았던 라인같습니다,ㅎ
    미야토비치 참 좋아했던 선수입니다.
    아! 그리고 얼마전 은퇴했던 동안의 암살자
    숄사르,ㅎ 블로거부탁해드려도 되겠습니까,ㅎㅎ
    아니면 바람의 속도라고 했었던(맞나)
    클루디오 로페즈(아르헨티나) 가능하실까요,ㅎ
    두선수 다 제가 좋게보던 선수들이라 ㅎ
    2008.07.18 15:23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솔샤르, 로페즈~ 한 번 찾아볼게요. 아마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말씀하신 삼각라인은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멋진 구상이군요. 게다가 호흡이 척척 맞아서 더욱이 예술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그 반짝임이 짧았지만요. 매번 감사합니다 ^^ 2008.07.19 11:00 신고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로페즈는 아직도 현역이군요 :) 최고의 슈퍼서브로 손꼽히던 솔샤르편을 조만간 준비할께요. 정말 동안이지요. 저도 동안인데... (웃음) 2008.07.19 11:06 신고
  • 프로필사진 까삐단 .....저도어디서 죽지않는외모를 자랑합니다...(피식..)
    죄송합니다..크크
    2008.07.19 11:56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