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의사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어왔습니다. 이번 2019년 신간도 정말 신나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라는 책도 읽었기 때문에, 개정판을 또 읽는 셈인데... 그래도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페이지를 따지지 않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의사 선생님의 메시지는 반드시 제가 새겨놓고, 두고 두고 긴 세월 간직하고 싶은 문장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면 불행해집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타인과 세상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벗어난 무언가에 헌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깨닫는 존재입니다." 이 아름다운 구절은 다른 일본인 의사 선생님의 글에서 비슷한 관점으로 본 적이 있으며(자기 자신에게 고민하는 시간은 1시간만으로 충분하다!), 좋아하는 작가 정혜윤 라디오PD의 글에서도 체험한 바 있습니다. 다르게 써본다면, 달리는 열차의 헤드라이트를 앞을 향해서 비춰야 하는데,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로 비춰버리면 큰일난다는 거에요. 실제로 김병수 선생님께서는 운영하시는 블로그(https://blog.naver.com/j993601)에서도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쳐다보는 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예컨대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런일이?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지금은 쉽게 쓰지만, 처음 제 어머님의 양극성 장애를 간병할 때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마침내 이해해는 행위를 그만두는 법을 배웠으며, 아픈 어머니지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셨으므로, 그 자체로 존재를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태도를 길러 나갔습니다. 지혜로웠던 어느 어르신은 저의 가정사를 돌아보시며, 길게 고민 한 끝에... 그것도 너의 복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운명처럼 일까요? 저는 정신건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들의 책을 한 권, 두 권, 세 권... 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의 흐름이 완전히 바뀔지는 청춘의 시절에는 절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매우 감사하게도 김병수 선생님이라든가, 윤대현 선생님이라든가, 좋은 선생님의 책들을 만나서 그 때마다 기뻤습니다. 메시지를 던져주시거든요. 구체적으로는, 환자가 아픈 것은 물론 어쩔 수 없지만, 간병하는 사람도 자신의 생활을 튼튼히 챙겨야 한다는 거에요. 그 말이 커다란 구원이었고, 그래서 일이 없는 날에는 영화를 즐겨보는 영화광이 되었습니다. 휴대폰으로 간단한 리듬게임을 하는 행위에도 이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영혼이 단단해져가니까, 어머님의 조울병 간호에 대한 원망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짧게 말한다면, 병간호의 시간도 인생 낭비가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고 임세원 선생님의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상하고 지독한 현실 세계를 좀처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당시 어머님을 돌봐주시던 부산 봉생병원 장세헌 과장님께 거의 따지듯 물었습니다.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습니까!? 그 때 장 과장님은 묵묵하고 과묵하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임세원 교수님 가족들께서... 가해자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거라... 세월이 흘러 CCTV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도, 임세원 교수님은 간호사 선생님을 어서 피하라고 배려하기를 앞장서다가, 그만 자신이 생을 달리하셨습니다. 세상은 냉혹하게도 그런 임 교수님께 의사자 지정을 쉽게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삶이 외면받고, 나를 위한 삶이 우선이라는 괴물 같은 세계이기에... 오늘날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더욱 늘어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비만 보다 우울증이 더 올라갔다는 보고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은 김병수 선생님께 전하는 저의 감사편지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책들에서 위로를 얻고, 살아가는 큰 용기를 얻고, 이렇게 해도 괜찮아 라는 뻔뻔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튼튼한 중년이 되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고 있습니다. 비록 가정사에 어려움을 겪었더라도, 생산적으로 살아보고 싶은 욕심, 질투가 이제야 꿈틀거립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먼 사랑 말고요. 가까운 사랑 말이에요. 그래서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5대 1의 비율로 긍정의 언어를 담겠습니다.
한 번만 더 책의 깊은 울림을 주는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을 필사하며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이다."
제가 만난 세계는 장애물들이 뜻하지 않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김병수 선생님, 저의 어릴 적 꿈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은 어느덧 흘러, 곧 40대가 됩니다. 이제 꿈이 전환되어서 자신의 관점을 바꾸고, 생산성 있는 삶을 사는게 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식을 전환시켜주신 것이, 선생님이 여럿 써주신 책들 덕분이라는 거...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바이폴라 병시중 생활을 견디는 동안,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에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 2019. 11. 23. 시북(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