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4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다른 세계를 보기를.

시북(허지수) 2020. 1. 21. 04:45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정기적 병원에 가는 날이다. 혈액검사를 해야 하고, 긴 대기 시간을 만날 것이다. 희망적인 근거는 찾기 힘들고, 정신 장애가 급속히 나빠지지 않았다는 점에 억지 위안을 찾아야 할테지. 어머님은 새벽 3시에 또 일어나셔서 배고프다며 간식을 찾으시지만, 이럴 때는 습관이 되면 매우 난처하므로, 아무 것도 드리지 않기로 한다.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나는 긴 시간 슬픔이라는 괴물에 사로 잡혀 있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책에는 의사 주인공이, 아내를 이해해보려고 집요한 노력을 하는 과정이 담겨있다고 한다. 나 역시 바이폴라 라는 증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서도 하고 영화도 보며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밥벌이를 하며, 고객을 맞이하는, 일터에 있는 게 차라리 더 기쁘다고 느낄 정도였다.

 

 보호사 선생님들은 어머님의 젊은 나이에 당황하셨고, 그와 동시에 이어질 긴 간병생활을 걱정하셨다. 앞으로 10년, 길면 20년도 더 이어질 수 있는 이 괴로운 생활. 포기하고 싶은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절망의 고비는 넘기고, 아직은 어머님을 향한 사랑이 남아있다. 슬픔은 인생에서 무엇을 깨닫게 해주길래 존재하는 것일까?

 

 한 영화가 기억난다. 슬픔이 묻어 있는 영화였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리운 아내의 흔적을 따라, 고전 100권 읽기를 일상을 견디는 힘으로 선택한 남자가 있었다. 나 역시 인생의 반환점을 이제는 지났다고 생각해, 신간 서적에 탐닉하는 행동을 멈추기로 했다. 그 대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몇몇 분들의 지혜가 담긴 낡은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사색에 잠겨보기로 마음 먹었다. 슬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인생은 계속 되기에... 혹시 이렇게 한 걸음 뒤로 가는 결단을 통해서, 용기를 발견해, 다시 두 걸음이나 성큼 앞으로 가는 "행동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의 슬픔 중에 품은 큰 소망이다.

 

 용과의 싸움은 별 거 아니었다. (그래! 얼마나 훈련했는데!) 뿜어대는 화염만 견뎌내면 그 뒤로는 용맹함으로 거뜬히 이길 수 있다. 공주는 무사히 구출 되었고, 왕은 매우 기뻐하였다. 절망이 있었기에, 기쁨이 있는 것일까. 계속 1등만 해내는 성취가 연속으로 있어도 사람은 놀랍게도 우울하거나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다. 가챠게임 식으로 말한다면, 수십 만원의 과금으로 원하는 SSR을 얻었어도 허무감 혹은 현자타임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럴 때는, 내 어리석음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는데... 인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될 뿐이다. 어떤 신비로운 사람들은 거리 청소를 하면서도 웃음을 품고, 천국의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청소에도 재미를 붙이신 그 지극한 나이 든 어르신께서는 어찌 슬픈 일이 여태 없었을까. 다만 삶에서 기쁨을 보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혜윤 작가는 조르조 아감벤 철학자의 시선을 빌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중략)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7장)" 라고 표현했다. 나는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는 이 개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개념은 고단한 삶에 영양분이 되어준다. 물론, 현실을 잊고 가상 세계로 도망치겠다는 비겁함은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그 날, 용감하게 용과 싸워서, 공주를 구해낼 수 있었던 기쁨의 그대여. 그러므로, 힘든 오늘의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끝없이 헌신해 보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 장인의 열정 속으로, 나의 삶이 초대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하게 된다.

 

 이제 상상해보자.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윤대현 의사 선생님이라면 어린 아이들의 삶을 소개했을 것 같다. 꼬마 아이들은 지나간 일들을 두고 괴로워하지 않으며, 내일 무슨 일이 닥칠 지를 미리 끌고 와서 걱정하는 일 따위 없이 오늘 에너지를 온전히 다 쓰느라 집중한다. 그리고, 아마 김병수 의사 선생님이라면, 젊은 나이에 기회가 닿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해두지 않으면... 나이가 들고서 후회가 찾아올 거라고 주의를 주실 것 같다. 우리는 어느 때인가 슬픔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은 기쁨은, 혹은 살아있다는 건강함은, 오늘부터라도 얼마든지 찾아지는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일본사람들의 상상력이 좀 기발할 때가 있는데, 드래곤퀘스트로 이곳저곳 걷는 게임이 오늘자 매출 2위를 찍고 있다. 기세가 엄청나다. 포켓몬 고 역시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것은 물론이다. 나 역시 드래곤퀘스트의 오랜 게이머로써, 열심히 좀 돌아다녀야 함을 잊지 않겠다. 용자도 부지런히 마을도 가고, 동굴도 가고, 용도 무찌르는데, 가상 캐릭터보다 게을러서야 몹시 잘못된 거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는 열려 있다. 헬렌 켈러 식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닫혀 있는 곳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에, 열려진 세계를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괴테의 말이 맞다면, 고난을 통해 참된 인간이 만들어져 간다면, 닥터 지바고 식으로 써서, 불운 속에서 희망을 품고, 행동하기 시작할 때, 다른 세계를 보는 그 멋지고 눈부신 날을 만나게 되리라 나는 상상해본다. 우리의 삶이 용을 무찌른 용사처럼, 담대하기를. 그리고, 두려워도, 깨져도, 한 번 끝까지 도전해보기를. (동호회를 함께 해주시는 열정의국세님께 감사함을 함께 전하며!) / 2020. 01. 21.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