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에세이)

인생이 우연이 아니라면

시북(허지수) 2025. 7. 25. 07:43

 

 사실을 말하자면 얼마나 많이 실패했을까.

 

 큰 꿈은 이루지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은 (감사하게도) 다 해봤던 삶.

 

 인생에 우연이 없는 것이라면,

 

 오늘 펼쳐지고 있는 것들이 하나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라면...

 

 .

 

 7월 23일 오마이걸 효정님 라디오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온다.

 

 좋지 못한 기억은 얼른 잊고, 지금을 살라고 한다. 참 현명하시다.

 

 7월 24일 배철수 형님 라디오에서 또 내 이름이 흘러나온다.

 

 제법 긴 휴가 잘 다녀오고,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읽어주신다.

 

 .

 

 7월 25일 휴가 첫 번째 날. 나는 꼭 살아서 돌아가야 했다.

 

 용기가 없었다. 삶을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사회적) 성공에서 멀어진 내가 매일매일 오래도록 미웠다.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 불안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건강을 벌써 많이 잃었고, 남은 시간도 이제 넉넉하지 않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조차, 어쩌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었이게 가능한 일이다. 덤(보너스)이다.

 

 하나님께 조금은 보답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 첫 걸음을 오늘 걷고자 한다. 오늘부터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다. 미친 짓이다.

 

 .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다. (물론 마음이야 매우 고통스럽겠지)

 

 예를 들어, 건강, 재산, 학력, 명예, 사람... 그러면, 다 잃고, 그 뒤에는 뭐가 남는 것일까.

 

 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남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볼품도 없고 형편없는 사람이, 뭐, 그다지 인류에 도움이 안 되는 글을 남기고 있지만...

 

 .

 

 슬픈 인생, 그래도 살아야지.

 

 짧은 인생, 그래도 살아야지.

 

 멋진 수학자도, 훌륭한 선생님도, 그런 남의 아름다운 인생은 다 버리며,

 

 펼쳐진 "나의" 인생 풍경들을, 더없이 소중한 "나의" 하루를, 귀중히 여겨볼래.

 

 .

 

 늘 현실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는 말을 수십년간 달고 살았다.

 

 언젠가 1인 분의 인생이 될 꺼라는 희망으로, 힘을 짜내며 살아 왔다.

 

 소년 만화의 성장하는 주인공이 나라고 믿어 왔다.

 

 실컷 울고 나니까, 누군가의 기댈 언덕이 되어준 적이 거의 없음을 안다.

 

 .

 

 많은 사람의 배려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한 편의 긴 기적이다.

 

 사람들에게 조금은 보답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또 넘어져 가지만, 이제는 도망부터 치곤 하지만,

 

 그렇게 돌고 돌아서, 좀 더 나은 삶의 모습이기를... 여전히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