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아버지와 함께다.
뇌졸증으로 상당히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실은 가난한 내가, 길게 휴가를 해외로 다녀오는 것은 현실 속으로 불가능했다.
평소 TV는 전혀 안 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프로그램 한 두개 쯤은 있다.
세계테마기행과 한국기행이라는 EBS 프로그램들이다. 요즘은 화질도 깨끗하다.
그래서 오전 시간을 온전히 운동하고, 은사님을 만나 맛집에서 부산밀면을 얻어먹고...
오후 시간은 아버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몽블랑 트레킹 - 이른 바 뚜르 드 몽블랑은 알프스 산을 두고, 그 둘레를 걷는 코스다.
재밌게도 오늘은 신부님께서 등장해 도전해 보는 구성이 되어 있었다. 오~ 주여~
(물론 나는 정확히는 개신교지만... 뭐, 뿌리를 올라가면 기독교와 가톨릭은 합쳐서 예수님이니깐.)
아버지는 아주 뒤늦은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비로소 신앙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삶을 좀 더 바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어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
그 분의 사랑은 몇 마디 글로 옮길 수 있다.
아버지가 뇌졸중이 왔을 때, 초고속으로 응급차를 불렀던 판단도,
그래서 골든 아워를 지켜서, (큰 후유증 없이) 무사히 회복될 수 있엇던 까닭도,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신께서도 지금의 삶이 연장된 것 덕분인지... 하늘 가는 길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듯 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천국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기왕이면, 지금의 삶도 안 아프고 오래 누려야 좋다.
그리고 나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이미 늦은 나이에 죽음을 실감적으로 느끼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왕 죽는다면,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신부님의 몽블랑 트레킹 이야기를 유독 좋아하시고, 너무 기뻐하셨다. 감탄사를 보내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셨다. 특히 태극기를 등에 꽂고 여행을 다니는 분을 만나는 대목에서는,
흐느끼며, 감동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국가를 생각 하는 사람이었으니깐.
국가대표팀의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에서도, 열렬히 응원했다. 요즘 말로 스포츠 덕후였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는가... 나 역시 야구에 축구에... 그런 쪽은 거의 열광한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함께 본다. TV 볼륨을 민폐가 안 끼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높게 잡고, 마치 야구장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살려놓고, 대형 TV로 생생히 집중해서 본다.
운이 너무 좋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1-0 명승부가 끝까지 펼쳐졌기 때문이어서, 볼꺼리가 많았다.
아버지도 신이나셔서 당신의 온갖 야구 이론을 말씀하시며, 해설자 모드로 빙의하셨다.
마지막에 역전승을 크게 기대했지만, 롯데는 0-1로 석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까운 경기였고, 볼꺼리는 많았다.
특히 대주자가 2루를 향해서 전력으로 뛰었다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상대 포수의 정확한 송구로 격침되자,
그 하이라이트 명장면에, 아버지와 나는, 열혈을 걸고 말았다. 인생은 뜻대로 안 되는구만! 신나게 웃었다.
그래 그런 하루였다면, 충분히 미라클한 하루였다.
2025년 8월 9일. 오늘은 여사친과 데이트가 있는 하루다. 오랜 소꿉 친구다.
웃긴 이야기지만, 여사친도 스포츠를 꽤나 좋아해서, 야구장도 다녀오고, 우리는 같이 플스5 피파 게임을 하기도 했다.
재능이 있기 때문에, 패스하는 감각이 꽤 좋다. 우리는 같은 팀으로 플레이 하는데,
내가 찬스를 놓치면, 맹렬한 비난이 쏟아진다. "으이구~ 인간아! 이 멋진 패스가 아깝지도 않냐! 메시로 그것도 못 넣냐!"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인연이라는 것도 웃긴 것이라,
그렇게 친구가 되어서 함께 지낸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저 커피 마시고, 소소한 일상을 묻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피파도 재미 없다면서 흥미를 잃고, 피크민의 산책놀이에 빠져있다. 30분~1시간씩 걷는 게 최고라고 우긴다. 이런.
건강히 불편한 나는, 정형외과를 찾아서, 선생님께 의견을 구한다.
신중히 검토하고 살피시더니 전문의 선생님께서 주사를 놓을 필요성을 제안하셨고, 맞기로 한다.
지금은 훨씬 움직임이 편해졌다. 나 역시 조금씩 운동하고, 다이어트 하고,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럴 때 장기하의 얼굴들 노래가 생각난다.
난 사는 게 재밌다~
난 매일 매일 신난다~
나의 평범한 일상과 여행기를 두고, 질투를 받을까봐 걱정이 조금은 있다.
모든 가정이, 좋은 아버지를 둔 것은 아니기 때문임을 나는 헤아린다.
내 성경책 맨 앞 페이지에는, 나는 손글씨를 써놓았다. 좋은 가족을 주셔서, 신께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펼쳐나가고 싶다.
날씨는 흐리고, 나는 비록 나이들어 가지만,
또 내가 욕망으로 바라던 자랑스러운 석사, 박사 학위쪽으로 갈 거 같지는 않고,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내가 꿈꾸던 잘 놀고, 잘 웃는 인생으로 갔으면 차라리 그 길도 좋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 스스로는 1인분의 밥벌이 정도는 부족함 없이 하면서 말이다.
공부라는 것은 참 묘하다.
많은 사람이, 좀 더 해볼껄 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 거의 항상, 그리고 모든 연령층에서 1~2위를 다툰다.
그리고 그러면 그와 다투는 또 하나의 1위는 무엇일까 하니.
좀 더 사랑하고 살 껄. 좀 더 고백하고 살 껄. 좀 더 표현하고 살 껄. 이다.
다른 말로 쓴다면,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살 껄... 하고 후회한다.
한 번 뿐인 인생이니까, 하고 싶은 걸 선택해서 살 수 있다면, 정말 복 있는 인생이라는 결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터무니 없을 만큼, 인복 많은 사람이다.
가족, 선생님, 소꿉친구들, 직장, 소수정예 동호회까지, 만렙의 인복을 갖고 있다.
늘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었을까.
정답을 마흔이 넘게 되니, 느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음"
"내가 잘난게 없었기 때문"
굳이 2가지로 정리한다.
정말 치열하게 불꽃튀게 공부해서, 10대 시절에, 꿈꾸던 의예과 합격을 이루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이, 훨씬 어른의 무게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오히려 취미 활동에 몰두하며, 동호회에서 행복을 쌓아갔었기 때문에,
나는 그 교류행위를 통해서, 사실은 "삶의 지혜"를 배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사람이 나를 만들어 준 것이지.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데이트 있는 날은, 아무래도, 게임기 켜기보다는, 내 마음을 단장한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고 해도, 나름의 이성친구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인간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영역도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적어도 코나미의 도키메키 메모리얼 보다는 100배 난이도 높은 하루가 될 것이므로!
뭐 어때, 커피 한 잔 있는 하루가 되니까.
게임기는 하루 정도 또 휴식을 취하겠지.
나의 멋진 휴가는 오늘도 행복 속에서 하늘을 달리는 느낌으로 산다.
이 글이 자랑이 아닌,
어느 한 사람의 살아가는 풍경으로 읽혀서,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고, 자동차 하나 없는 나 이지만,
그래도 살아가고 있음이 읽혀진다면 좋겠다.
- 2025. 08. 09. 모닝페이지 8일차 기록,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