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에세이)

[돌아온 피아노 3편] 너는 정직한 악기

시북(허지수) 2025. 9. 3. 18:58


피아노가 좋다
솔레솔을 배운다

잘은 모르지만
화음이 아름답다

다정하게도 들려서
선생님은 또 다시 알려주신다

지수씨 피아노는 강하게 쎄게가 전부가 아니예요!
아! 드디어 나도 힘을 빼고 멀리가는 음색을 배운다!

세상을 사는 일은 어쩐지 불협화음 같다
나는 솔레 를 누르면 상대방은 화음을 맞추지 않는다
그 대신 아무렇게나 아무음이나 크게 눌러버린다

그렇게 이번에 크게 한 번 속상한 일을 겪었다
사람들은 사람에 속은 나를 비난하고 웃어댔다
그리하여 소중한 일터에서, 나는 나와버렸다
책임질 줄 모르는 인생이라고 또 혼났다

울음을 참고, 또 참는다.

금정구청까지 찾아가서 억울한 사연을
맘껏 호소하고 나니, 그제야...
세상을 원망할 마음이 가라앉는다

심리상담사 분은 무료 등록을 권했다
그렇게
오늘부터 긴 시간, 나는 케어대상자가 되었다
이것도 그렇다면 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솔레솔을 차례차례 누른다
도미솔도 한 번에 눌러보고,
레파라도 한 번에 눌러보고,

아름다운 소리에 영혼을 맡기고
마음 속 눈물샘을 터뜨려 실컷 운다.

피아노는 정직해서 너무 귀한 악기다.
비로소 피아노가 겁먹는 대상에서
친구처럼 느껴져 간다

마음을 위로하는 악기 피아노
그렇게 쓴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음악이 뭐길래 나를 이토록 위로할까
노래 멜로디가 뭐길래 거기에 기대서 울까

억울해도
지나간다는 것을 피아노가 알려준다

시. 레. 솔.

오늘 마지막에 배운 그 화음처럼

아름다움은

엔딩은

마지막은

그 때가 좋으면 좋겠다

그 가는 길은, 비록 조금 상처 입고, 세게 긁혀도.

우리네 교육자는 차라리 굳센 돌덩이가 되어보자

그리고

제로에서 원으로

마법처럼 살면

무엇보다 보람이 넘쳐서 기쁘고 설렌다.

늦은 시간 교회를 간다.

꾸벅꾸벅 존다.

그 피곤한 나날들 조차

젊은 시절의 행복임을

내가 부디 알았으면 좋겠다.

- 2025. 09. 03. 저녁 7시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