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는 게 없다.
백지 였다.
어쨌든 오늘부터는 제목이,
돌아온 피아노가 아니다.
그냥 피아노다.
겨우 3~4달 레슨 받는다고...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2배, 3배만 노력해보자.
즉 - 일단 매일 피아노 30분에서 시작하는 것.
두 달 쯤 지나니... 양손을 드디어 누르고
넉 달 쯤 되어가니... 반음을 드디어 익힌다
말할 것도 없이 지혜로운 원장님 혜안 덕분이다.
할 수 있는데까지 엄격하게 밀고 가시는데,
마치, 아주 아주 잘 쓰인 소설책 같은 기분이다.
따라가기만 했는데, 어느 구간을 넘는 기쁨.
희열 이라는 단어도 좋지만,
더 솔직히는 힐링이 된다.
그토록 맑은 그랜드피아노를 아침부터
명랑하게 치고 있노라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뿐더러,
잡념 조차도 깨끗하게 사라져서,
신기할 만큼 마음이 하얗게 물든다.
이제 두 번째 곡을 배우는데,
특유의 플랫(반음) 변주구간이,
레이싱(자동차) 게임의 예쁜 곡선 변주처럼,
경쾌하고 아름답다.
잘 아는 의사선생님도 실은 취미가 피아노.
힘든 날에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며 고백하신다.
이유는 너무 닮아있다.
피아노의 즐거움은 결코 단기적 자극이 아니다.
말하자면, 긴 연습과 반복 끝에 드디어 얻게 되는,
다른 차원의 깊은 만족감이 있다.
재능?
감각?
어쩌면, 기프티드 (영재?) 차일드.
이 모든 것 조차,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비전공자에, 비전문가에, 바이엘 02 이니까.
피아노는 노력의 세계고, 자기 믿음의 세계이다.
게다가 틀려도 좋은 세계라는게 제일 근사하다.
완벽이라는 단어를 언젠가부터 싫어한다.
또한, 실력에 대한 이야기도 싫어한다.
그래서 박 원장님께 너무 감사하다.
원장님은 노력에 대해서 언급하시므로.
피아노를 배우며,
처음으로 작은 욕심마저 생긴다.
피아노 살짝 치는 아저씨
그런거 말고.
내가 좋은 책을 보면 정신을 잃듯이.
아름다운 악보 앞에서,
어쨌든 내 나름의 길 위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뿌듯한 것이었다.
친구가 되어버린 피아노가,
나의 최신형 게임기 만큼이나 좋고...
원장님이 진심으로 레슨해주셔서,
매주 그 시간들에 심장소리가 들린다.
두근두근이 아니라.
멋진 피아노 앞에서,
인생을 살고 있음을.
내가 숨쉬고 있음이 들린다.
음악은 그래서,
혹은 그러므로.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 2025. 09. 16. 허지수 (긴 이동 중 버스 안에서)
- 베를린 음악학원 원장님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