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하는 것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취미생활이야, 다재다능하기로 악명(?)이 높지만,
사실 생활능력으로 생각해본다면, 생활무능력자에 가깝다.
0점 신랑감이다. 심지어 그 흔하다는 자동차도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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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변함없이 가방에 책 한 권을 넣고, 악보를 넣고,
산책을 나선다. 거리를 걷는다. 이렇게 비오는 가을날은 조금은 우울해진다.
클라라 주미 강 선생님의 브람스를 틀어놓는다. 외출 준비를 한다.
갈 곳은 늘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귀하고 큰 축복인가.
반겨주는 곳은 늘 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사실은 잘 살아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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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아껴주시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엇, 대학원 준비하신다면서요? 먼저 말을 건네서, 너무 당황했던 추억이 난다.
추석 끝나고, 잠시 수업 후에, 학생 면담이 있다는 지적에, 너무 고마웠던 생각도 난다.
불가능한 꿈에 도전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중학교 2학년에서 정규과정을 이탈한 불량(?)학생 주제에,
이제는 국립대학교에서 훨씬 (높은 등급의) 고급 공부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니,
이런 이야기를 만화나 소설로 써도 욕 먹을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개연성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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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훨씬 맑아진다. 그냥 눈물샘을 어딘가에 담아버린 것 같이 개운하다.
매일 책 한 권씩 읽어나가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은사님은 오늘도 농담과 미소를 건네신다.
운동하는게 훨씬 좋으니까, 열심히 또 걸어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도 목표체중을 60 으로 맞춰보라고 권한다. 겨우 7kg은 뺐는데, 아! 이 혹독한 다이어트라니!
스테이 헝그리. 아직도 배가 고프다. 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님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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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앞으로의 10년의 힘들고 외로운 길이 보인다.
많은 공부량과, 아버지를 돌보는 시간들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은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할 테고.
그 빠른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져 있을까. 나는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꿈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한 영향력을 잔잔하게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제 2의 인생. 흔히 말하는 2악장이 연주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악장의 20년은 - 버려짐과 차가움, 즉 슬픔을 배운 시간들이었다면,
2악장의 20년은 - 물론, 당연히 삶의 고난을 견디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쁨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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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칠 때마다, 목마를 때 마다, "삶을 인도" 해주시고, 웃음을 주는,
나의 사랑하는 주님과, 또 이 이상한 세상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알게 해주시는, 주님의 한없는 축복에.
오늘도 감사한다.
- 2025. 10. 03. 모닝페이지 허지수 / 오랜만에 컴퓨터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