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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마음이 고장 난 기분

시북(허지수) 2025. 10. 12. 19:08

 

 교회에서 좋은 소리들이 들린다.

 기도가 좋았다고 했다.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나는 마음이 계속 가라앉는다.

 그것은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보다는,

 나에 대한 흔들림과 회의감 때문일테지...

 

 약간의 경험이 쌓인 지금으로선,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좋은 날이 또 올 것이라고 믿고, 그저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도서관에 또 갔고,

 그렇게 또 과학서적들을 빌려왔고,

 

 하나도 모르는 것보다야. 0.1 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패러데이나 오일러 같은 천재는 아닐테니까. 전혀 아닐테니깐.

 

 살아가는 것이 슬퍼지려 하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자.

 지나간 일은, 그저 잊어버리는 지혜로움에 기대어 보자.

 그게 쉽지는 않을테지만.

 

 찬송가는 주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필요 없이, 평안이 올 것이라 했지만.

 나는 온갖 세상의 것을 좋아하니까, 결국 믿음이 없었음이 탄로날 뿐이었다.

 

 며칠 후, 교수님을 만나서 진로상담을 한다. 나름 곧 졸업이니깐.

 4년이나 달려왔는데, 책 속에 파묻혀 있지도 않았고, 또 제법 일하느라 시간도 보냈었고...

 

 예전에 라디오에서 이금희 누님이 그랬던 것 같다.

 꽤 많이 힘들었는데, 사회에서 인정받는 승진 같은 순간이 오니까, 싹 좋아지더라고.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참... 사회적인 면이 제법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혹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위선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양한 분야를 제대로 알고 있는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좌절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니가? 하나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니가?" 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참 괴롭다.

 

 이런 괴물과 맞서려면, 결국 공부하거나, 운동하거나, 노력하거나, 생각을 비워내거나... 등등.

 

 어쩌면 최 교수님의 표현대로, 불안 수치가 (적당히) 높기 때문에, 책상 앞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원하는 대학의, 레벨업 된 갈 길이 아직 열려 있지 않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다홍색 치마라고,

 이왕 조금 늦게 출발한 공부라면, 예쁜 색깔로 계속 달려가보고 싶은, 나만의 욕심인 것이다.

 

 가는데까지 3배는 더 힘든 구간이고, 진학하고 나서도, 심지어 5배, 10배는 더 힘든 구간.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남에게 "다정한 소리"를 따뜻하게 담아서 주고 싶은, 오랜 마음 때문이었으면 한다.

 

 다정함을 너무 억지로 밀어버리다가, 큰 탈이 나고, 마음이 고장 난 기분으로 큰 고생 중이지만,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흘러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은 자랐으면 좋겠다.

 

 부디 아파하지만 말고,

 답답해 하지만 말고,

 

 최선을 다해봤으면 된거야. 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본다.

 쓸 말이 사라져버린, 이 순간에, 슬쩍 페이지를 닫아본다.

 그래도 고생 많았어. 2025년 10월 까지.

 

 - 2025. 10. 12. 허지수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