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몸의 엄마는 나를 업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무릎과 발목에 뜸을 놓았다.
눈물이 날만큼 아파서 늘 가기 싫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업히는 것은 늘 좋았다.
아이들이 안아줘, 업어줘 하는 마음을 약간 더 이해한다.
감촉에서 기억이 조금씩 다가온다.
지워지지 않는 이상한 기억
그 시골 한의원 가던 풍경이 생각난다.
나는 잘 걷지를 못했다.
학교를 하도 길게 빼먹었더니,
친구들이 한마디씩 적은 큰 종이를 건네주었다.
"빨리 학교에서 보자."
반 친구들이 그토록 좋았다.
어린 시절, 희망과 사랑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동심 이라는 다정한 단어가 좋았다.
아파도 좋은 게 간혹 있구나 라는 생각의 근원은 여기쯤이다.
체육 시간에는 배려를 받았고, 저 멀리 떨어져 앉아,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 나름의 큰 즐거움이 있다.
학교 운동복, 틈이 생기면 몰래 장난, 그저 신나게 잘 뛰어 노는 모습은
학교란 잘 먹고, 잘 노는 곳이 아닐까? 가끔 반대로 생각할 때가 있다.
체육 성적이 겨우 바닥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공부라는 것을 제법 잘했다. 반장 같은 것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땐 왜 그랬을까?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들고 와서 나눠줬다.
병약한 반장을 잘 좀 봐달라는 뇌물이지 뭐.
집에 조금 드문 게임기가 있어서 친구들이 놀러올 때도 종종 있었다.
같이 가상 세계에서, 축구하고, 농구하고...
어른이 되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봐도,
다시 그런 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만화 같은 하루들은, 이렇듯 내 아픈 시절의 작은 자랑이 되었다.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이웃에게 혼나기도 할 만큼, 즐거움은 참 오래 갔다.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나 모르게 이웃에게 또 사과했을 것이다.
엄마는 말없이 친구들의 식사를 만들었고, 설거지까지 단 한마디 불평없으셨다.
쓸고, 닦고, 빨래를 돌리고, 작은 일들을 반복하며, 그럼에도 할 일을 즐거워 하셨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만, 소중함인지 알게 된다.
어느 날,
엄마가 아팠다.
영원한 것은 없고, 저물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란
철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고단했다.
짜증도 냈다. 피곤 속에 지친 날도 여럿 있다.
나는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며 노력했지만...
모든 일이 아름다운 동화는 아니다.
엄마는 떠나셨다.
울지 않았다.
눈물 대신에, 담담한 마음이 길게 남았다.
당신의 정신이 선명하실 때, 병원을 함께 다니며,
삶의 마지막을 오히려 즐거워 하셨다.
내게는 엄마 같은 사람을 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멋진 풍경의 해외여행을 보내드리진 못했어도,
하얀 생일케이크에 함께 즐겁게 노래 부르며,
초를 꼽아 보았기에 참 좋았다.
엄마의 사랑이 추억들로 변한지, 3년이 흘렀다.
3월 21일. 오늘은 엄마의 생일날.
엄마 생각을 하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거의 없음"
나는 진실 이라 감각한다.
사랑, 우정, 기쁨.
신기할 만큼 중요한 단어가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내 삶을, 아무도 없는 비극에서 구원해주셨던 엄마.
그 곳 하늘나라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부디 편안하게 아프지 않기를.
예쁜 한복 차림으로, 단정하고 따스한 손으로, 그곳에서도 말없이 예쁜 사랑 나눠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