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자신 없어요.
어차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6개월만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도전한다니.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비오듯 그이는 사선을 보며,
나는 절망했다.
그래. 이 문제는 알고 있음.
동그라미는 더 적었다.
야학의 혜윤 (가명)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하셨다.
"지수야. 점수는 삶에서 중요한 게 아냐.
용기내봤니? 한 번 해봤니? 그게 전부인지도 몰라."
배움이란,
알려진 지식이나 문제풀이기술을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불이 타오르게 마법을 거는 연금술 같은 것.
그 시절, 혜윤 선생님은 다정하게 나를 살짝 안아주셨다.
모르는 것을 물어봐 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냥 당신이 다니던 그 부산대학교에 몇 번이고,
나를 끌고 올라가서 같이 웃기만 했다.
꽃이 핀 나무와 교정은 참 예뻤고,
대학교 도서관과 식당은 갈 때마다 신났다.
당부하시는 선생님.
"몇 시간 학교 수업 받고 올테니, 넌 자율 학습이다."
햇살 들어오는 따뜻함을 이기지 못해서, 또 글자를 보다 슬쩍 잠이 든다.
아차.
겨우 정신이 들어 몇 페이지를 넘긴다.
"일단 5분이라도 앉기만 해. 공부가 뭐 별거니?"
선생님의 교육은 이상했다.
나는 선생님의 태도를 배웠다.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배웠다.
열망을 배웠다.
저녁에는 야학에서 여러 선생님의 수업을 골고루 듣고,
아무도 없는 주말에는,
집앞 독서실 (오늘날 스터디카페) 에서 새벽까지 문제를 들춰 보았다.
4월과 8월. 두 번의 검정고시는 반짝이는 연속 합격으로 돌아왔다.
혜윤 선생님은, 편지지 한 장 빼곡한,
긴 글을 선물해 주신다.
두 개의 비올라, 이름부터 고급스러운 스테이크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비싼 음식까지 "얻어" 먹는다.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은 굳이 짧게 말씀하신다.
"축하해. 내가 더 기뻐!"
편지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으나,
그 꿈이 쉽지 않았음이 담겨 있는
20대 초반 혜윤 선생님 청춘의 열정과 좌절,
무력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나도 어려운 책들을 도전해야 겠다는,
두 번째 열망이 또 번뜩인다.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불평등은 고쳐질 수 있는 문제인가?
선생님은 나에게,
긴 숙고가 필요한,
치열한 고민을 선물해주셨다.
지금은 무척 짧게 답할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된거지 뭐.
"내 이익이 중요하지, 너 따위가 뭐가 중요한데."
그것이 혜윤 선생님이 바꾸고자 했던 세계였다.
아, 그리운 역사교육과의 혜윤 선생님.
좋은 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자랑할 수 있는 큰 행운이다.
삶은 비범함을 위해 끝도 없이 시시포스가 되어 노력하더라도,
시선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함과,
연약한 사람들의 눈물을 아는 사람이 되어보기.
이른바 선생님의 사람 사랑은 그렇게 나에게 깊이 전염되었다.
나의 10대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두 개의 비올라 가게도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병은, 무척 긴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하다.
나는 극도로 내향적.
말하는 것은 한없이 서투르지만,
지나친 예민함으로 금방 지쳐버리곤 하지만,
좋은 사람 한 명, 좋은 책 한 권, 좋은 음악 한 곡에, 다시 용기를 낸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잃었다.
좋은 책을 써보겠다는 꿈도 희미해지고,
피아노를 더 배워보겠다는 당찬 마음도 매번 흔들린다.
다만 좋은 기억은, 추억이라는 단어가 되어 선명히 남는다.
눈에 보이는 지옥을 바꿀 순 없었다.
인간이 천국을 창조할 순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 사람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지금 선생님이 옆에 계시다면 또 다시 열망을 부어주실테지.
뭘 망설여? 결국 대학도 왔으면서.
뭘 망설여? 가진 것도 팔았으면서.
용기내.
한 번인 인생.
꿈이 멀어보일 때는.
자, 옆에 5분만 앉아봐.
왜 울고 있니. 맞아.
끝없는 연약함과 세심함.
지수야. 넌 그게 정말 예쁘더라.
끊어진 꿈, 끊어진 약함을,
조심조심
다시, 이어본다.
때로는, 과거가
구원이 되어 말을 걸어온다.
좋은 추억을 가졌다는 것은,
빛나다 못해 숭고하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깊은 어둠 속을 걸으며, 빛으로 살아주셔서.
- 제자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