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잘 설계된 틀 안에서, 금방 성장하는 느낌이 특히 좋았다.
그건 내가 현실에선 무척 약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가상의 세계에서 강한 적을 물리치면
일종의 짜릿한 성취감이 쌓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 청춘의 시절에는,
세계를 게임 무대이자, 실험실로 생각하며, 건방을 부렸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삶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일은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복잡한 질문을 던졌다.
솔직한 답변까지 부탁했다.
오늘날 (현재는 2026년이다.)
제일 똑똑한 인공지능 모델 중 하나인 구글 제미나이는
게임의 미래가치를 나에게 0 이라고 보여주었다.
진실이란, 가끔 보기가 좀 불편하다.
그러면?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좀 더 배워볼까 라고 물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추켜세운다.
50대 50 나의 판단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결정타는 이상한 곳에서 왔다.
80살 정도가 되었을 때,
가지고 있는 그 소중한 게임들을 할 꺼 같은지?
질문은 너무 정확하게 본질을 찔렀다.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맞아. 혹여 만약 그 때 한다고 해도,
지금은 굳이 없어도 되잖아!"
아니면 차라리 그것들을 하나씩 팔고,
지금 내 마음이 불 붙는 곳에서 평온을 찾을지?
옷을 주섬주섬 입고, 서둘러 게임매장으로 가서,
소중했던 플라스틱 콜렉션을 황금으로 바꾼다.
이것은 말하자면, 신기한 연금술이다.
한 달의 레슨비를 넉넉히 벌었다.
단편적 오해를 방지하고 싶다.
게임이 시간낭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나는 흥청망청 노느라,
족히 20년을 넘게 세월을 꾸준히 낭비한 사람이다.
다만 들려온 질문을 마주하고 싶다.
그저 살아가다,
우연히라도,
더 즐거운 (당연히 어렵겠지) 세계가 눈에 보인다면,
좀 겁나더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삶의 무서운 질문이다.
80살이 가까워서,
힘조차 거의 남지 않은 나 라는 노인이 더욱 잘 보인다.
맞아. 게임이라는 다른 현실도 있었지.
그럼에도,
갈림길을 만났을 때, 나 이 정도는 현실을 마주 보며 노력해봤어.
너무 속상하고 재능 없어서, 실은 두 번이나 때려쳤지만,
또 다시 끈질기게 붙들어봤어.
그랬더니 마침내 내 삶의 일부가 되었어.
그것이 음악이기를 바란다.
흔적으로 남은 작은 글 이기를,
또한 작고 깊게 바란다.
다가 올 시간을 다르게 만드는 연금술.
게임 속 환상 마법 같은 일들은,
현실에서 하나씩 펼쳐지리라.
이젠 굿바이 게임을 좋아하던 소년.
눈을 떠서 진짜로 가지고 있는 그것.
"시간"을 마주보기를.
이 게임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아세요?
이 아이템이 얼마나 비싼 건지 아세요?
라고 건방 부리는 나를 혼내고 꾸짖기를.
영원하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운,
한 번 뿐 시간 앞에 서서,
찾아온 작은 꿈에 마침내 답한다.
"너 이거 어울려" 또한 좋지만,
"나 여기가 좋아"
그래. 신나게 단 한 번이라도 산다면,
오늘의 피곤 조차, 잃음 조차,
삶의 천국인데,
가진 것 없다한들 뭐 어떨까.
행복은 결국 정직에 기대어 있나보다.
자본주의 마케팅으로 아무리 쏟아부어도,
꿈에 눈 떠 버린, 영혼은 세뇌되지 않는가보다.
삶은 여전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