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9.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시북(허지수) 2026. 3. 26. 04:02

제목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본문

일주일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긴장감이 나를 압도한다.

잠시 관찰자 모드가 되어본다.
도착한 병원 안 작은 편의점,
휴게코너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당연히 환자복을 입은 분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표정은 무척 밝고,
목소리톤은 정답고 높다.

아프더라도 누군가가 곁에 있기에
병의 지루함도,
수다의 재료로 변신한다.

나 역시 긴 고통과 변신의 과정을 지나.
오랜만에 편의점 임시직원으로,
맞이하는 첫 날.
커피는 더없이 달콤씁쓸하다.
맛이 매력적이라고 써보고도 싶다.

누가봐도 간호사 선생님들,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야간 출근길도 보인다.

편의점 내부에서 일을 시작한다.
다리는 아파오고,
일은 상당히 버겁다.

돈을 쉽게 버는 일들이
아니라서 오히려 반갑긴 하다.

새벽 2시가 넘으니 극단적으로
조용하다.
휴대폰 볼륨을 아주 키워서
브람스와 드보르작을 듣는다.

그럼에도 연주소리는
밖으로 거의 새지 않았다.
여기는 잠시 예술무대가 된다.
아픈 발바닥도 삶의 재료가 된다.

밤새는 일은 어쨌든 피하고 싶었다.
힘겹게 마주하고 보니,
밤의 조용한 매력이 느껴진다.

손님 한 분이 라면을 먹고 가며
인사를 건넨다.
이 때 만큼은,
허기를 위로해주는
작은 심야 식당이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웬걸.
병원 입구를 살짝 지나니,
홀에 예쁜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일주일의 고행은
그 외로운 피아노를 보면서도 견뎌내야지
속으로 애써 자기 위로를 건다.

어느덧 새벽 4시다.

다시 병원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들린다.

슬쩍 흘려보내는 음악들이,
혹여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바라본다.

아픈 사람들의,
힘들고, 속상한 시간들이 작은 미소로
마법처럼 바뀌기를 바라본다.

체험! 밤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어서, 끝내 감사하다.

드보르작의 긴 호흡이 느껴지는,
정겨운 선율은 더할나위 없이
그저 깨끗하게, 마음 깊이 울려퍼진다.

음악처럼,
멀리 보면,
역시 할 일을 감당하는 삶이.
그 무게가 하루를 달콤하게 한다.

나는 오늘 이 작은 편의점에서,
하루 만에 웃음의 변주코드를
발견한 것 같다.

이제 잠을 이겨가며
두 시간만 더 버티자.

아침이라는 멋진 신세계가
오늘도 쾅하며 열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