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주자의 기도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당장, 반주자가 이제 없다.
정말로 없다.
주일날 교회를 가면 기타줄 조율부터 하고 있다.
아직 피아노 반주 실력은 먼 훗날의 일이다.
클래식을 최근 많이 들어서인지,
교회음악들은 화려하지 않다는 안정감이 있다.
찬송가에 실린 곡들에는 미세한 비밀들이 있다.
분명 누군가를 잃어서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영감으로 찬송시가 쓰여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3절, 4절.
마지막 절에 가면,
천국이나 고향 (물론 천국이다) 에 대한 묘사도 많다.
남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현생을 경건하게 해준다.
경건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배운 경건은, 삶에 타인의 공간을 두는 것이 전부다.
참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 두 분이 계시는데,
모두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었다.
나는 가슴 벅찬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펜을 들고 가서, 책에 싸인을 요청했다.
진료시간의 다소 무례한 요구에도,
의사 선생님은 거의 1분에 가까운 생각에 잠기더니,
정성스러운 짧은 멘트를 책에 써주신다.
준비.
반짝임.
이렇게 짧은 단어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배려있게 쓴다면,
준비가 뒷받침 될 때, 놀라운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고.
반짝이는 일들은 어느 곳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분들은 도대체 의사인지, 성직자인지 잠시 의심스럽다.
기타 (또는 악기를) 다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조율 시간이 더없이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10분, 20분을 조율에 쏟는다.
어설픈 반주코드를 짚어도, 조율로 다듬어진 소리는 경쾌하다.
너무 심성이 착한 동생은 교회 반주를 한다고 하니,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기타를 빌려주었다.
작은 교회라서, 정확한 반주를 신경쓰기가 어렵다.
나도 어느 정도는 크게 힘껏 목소리를 내며,
기타를 쳐야 한다.
예배 시간에 몇 번은 살짝 틀려가며 겨우 3곡을 완수한다.
정확도 보다는 소리의 흐름에 집중한다.
나는 좋은 반주자 자격, 이번에도 탈락이다.
하지만 성도님들은 무반주 보다는,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
예배 전에, 다소 느리게 누르는 피아노 소리도 또한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연주능력이 조금만 더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과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음악의 길은 참 고단하다. 배우면 좀 편해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배울수록 더 난해하다는 솔직한 심정도 좀 있다.
하지만 그 끝을 본 적이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운이 역시 좋다.
예전에 조금 중형교회를 다닐 때의 일이다.
피아노 연주를 아주 잘 해내는 어느 자매는,
피아노를 반주하는 일이 "스트레스의 해소"라고 독특한 관점을 말했다.
다르게 말해, 연주가 신난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대단한 감탄을 하고 말았다.
걸음마 피아노인 내가 그 경지에 오를 날이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기타 반주는 간혹 즐거울 때가 있다.
일부러 약간 템포를 올리기도 한다.
반주가 늘어진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느낌?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나도 천국문 앞에 서게 되겠지.
너 뭐하다 왔니? 라고 스크린을 띄우면,
수 없는 잘못을 보게 되겠지.
인생을 종종 하얀 스케치북 이라고 비유하는데,
이번 생은 뭔가 그린 게 없는데요? 캄캄할 수 있다.
나처럼.
그러면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어두운 스케치북에,
반짝이는 소망의 별을 그려줄 것이다.
함께 가자. 산다고 고생만 잔뜩 했구나.
에잇! 또 틀렸다.
그렇게나 매번 틀리는,
(타이타닉에도 멜로디가 나온다)
찬송가 338장은 이렇게 끝난다.
주께 더 가까이 원합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황금이 가짜 신이 된 세계에서,
편리가 모든 것을 압도해 나가는 오늘날.
신앙은 불편함이 본질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삶을 신나게 해준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다.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말에,
기쁨 까지 숨어 있다.
끝내 10억, 100억을 가지고, 홀로 천국에 입장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과 웃으며 밥을 나눠먹었다면, 그 곳이 천국이 될테니까.
그렇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한바탕 떠드는 곳은 늘 천국이다.
어쩌면 그 때의 미소 짓던 청년 자매의 말처럼,
악기가 있다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과
동의어 인지도 모른다.
곧 만나뵙게 될 극고수 피아노 원장님의 결정적 가르침이 맞다.
"자! 긴장 풀고, 지금 눈 앞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그저 장난감이에요. 아시겠죠? ㅋ"
반주자의 기도는 이렇게 마치고 싶다.
저기요. 주님.
부족한 반주에 좌절하지 말게 등 뒤에서 도와주세요.
그저 이 길이, 기쁨까지 닿는 그 날까지.
자꾸 틀렸음을 부끄러워 말고,
연습할 날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매일 눈치채도록 도와주세요.
순례길은,
저 먼 곳에도 있지만.
부름에 응답하는 평범한 하루에도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