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20. 40대의 꿈은 피아니스트와 번역가

시북(허지수) 2026. 4. 22. 02:43

 제목 - 40대의 꿈은 피아니스트와 번역가

 

 대체로 꿈을 이루어왔던 아주 복 많은 인생이었다.

 10대 시절의 꿈은 의사가 되자! 였으나...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 탈락!

 

 20대 시절은 대학 대신에 독서가 였다.

 책을 꽤나 읽을 수 있었고, 영화도 듬뿍 보았다.

 그리고 치열했던 동호회 라이프도 성공이었으니... 후회없이 놀았다. 좋았다.

 

 30대 시절은 간병인 생활이었다.

 비록 긴 돌봄 끝에, 어머니는 하늘 나라로 떠나셨지만,

 마음이 개운했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에 취미로 불태웠던 축구나 공부(한국사), 영화, 종교.

 이 모든 것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블로그도 5백만 방문자를 넘겼다.

 게다가 40대에는 대학교를 끝내 들어가, 늦게나마 다닐 수 있었다.

 

 대체로 이 나이 정도 살아왔으면, 예전 같으면 시들고, 삶이 마무리 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 또한 건강을 그동안 크게 잃어서, 지금은 여러 곳이 꽤나 말썽이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되었고, 약물 치료도 효과가 있어서... 40대를 맞이하고 있다.

 

 실은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실제로 없었다.

 보여주기 위한, 둘러대기 위한, 일종의 방패 같은 것일 뿐. 허영심 이었다.

 

 번역을 해보고 싶었다.

 동호회를 운영하던 시절 번역하던 분들의 열정, 한글화 하던 분들의 열정이 멋있었다.

 나는 정작 실질적 보탬이 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일본어 책도 샀고, 또한 영어 책도 샀다.

 하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말하자면 두 번이나 포기해 버렸다.

 하기야, 외국어 공부는 중도포기 하는 사람이 나말고도 많을지도 모른다.

 

 피아노는 더욱 아팠다. 용기 내어 마흔 무렵 시작했지만...

 이 쪽도, 무려 두 번씩이나 중도에 포기했다. 양손치기는 적응이 좀처럼 되지 않는 신세계였다.

 더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피아노는 노력이 훨씬 진지하게 필요한 엄격한 세계였다.

 

 며칠 전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났다. "잘 지내니 아들아?" 라고 묻는 듯 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2026년 4월. 마침내 교회 반주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7개월을 천천히 노력한 결과는 꽤나 신기했다.

 어머니는 기뻐서 잠시 지상 세계에 얼굴을 비추러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원장님은 웃으면서 또 놀리신다. 드뷔시의 달빛도, 찬송가 원곡 반주도, 몇 년 뒤면 얼마든지!!!

 

 40대가 끝나갈 무렵에는, 나도 짝퉁(!)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을 보았다.

 살아오며 꿈을 단 한 가지라도 이룬다면, 그리 씁쓸하고 괴로운 인생만은 아닐테지.

 

 피아노 1곡, 2곡 정도 (물론 쉬운 버전이다) 를 칠 수 있게 되자, 번역 도전도 다시 보인다.

 번역이나 피아노는, 나를 위하는 것이면서, 적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참 좋다.

 번역도 그렇고, 어쩌면 이 쪽 세계는, 약간 - 뜨개질 같은 느낌도 든다. 계속 가는 것이 전부다.

 

 어린 시절이나, 청춘 시절에는,

 아니, 거의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영향력을 남기려고 거의 발버둥 쳤다.

 

 이제는 내가 써놓은 꿈... 겨우 몇 가지를 위해서 살면 그만이다.

 

 나는 지금 거의 모든 것을 잃은채 바다에 떠 있다.

 하지만 나침반은 움직이고 있고, 목적지도 나타났다.

 지나칠 만큼, 인생의 마지막에도 복이 많다.

 

 할머니에게 썼던 대로, 나는 교사, 목사, 그런 높은 직업을 갖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제는 그리 빛나지 않는 묵묵한 삶을 살다가 떠날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

 

 이 작은 일에, 내 마지막 달란트를 다 바쳐서,

 나 또한 삶이 머지 않아 끝날 때, 주님께서 웃으며 맞이해주셨으면 좋겠다.

 "수없이 방황했구나. 수없이 울었구나. 빙글빙글 얼마나 길을 돌고 돌았니.

 그렇게 천국으로 왔으면 된거니까. 너의 그 많은 잘못들을 덮고, 이제 함께 가자."

 

 캄캄한 밤이 밝아온다. 고마워.

 이만 다 포기하라는 절망과 끝까지 싸워줘서.

 

 - 2026. 04. 22. 시북.

(당분간 블로그 업데이트를 쉬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