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묵상

[2026] 시편 23편 묵상

시북(허지수) 2026. 6. 1. 04:52

 2026. 06. 01. 시편 23편 묵상. 작성자 시북 (허지수)

 

 나의 찬송시.

 

 저는 목회자가 아니라, 현재는 작은 개척 교회 반주자 입니다.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고는 있는데, 지난 5월의 주일에는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5월 30일은 생일이었고, 5월 31일 어제는 찬송가 570장을 첫 곡으로 기타 연주를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내게 부족함이 없음을 찬양하는 - 시편 23편이 주제 입니다.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 달력을 넘깁니다. 오늘은 2026년 6월의 첫 날이기 때문입니다.

 달력에는 시편 23편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셨던 박 집사님의 프로필 문구를 기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25년, 저는 주어진 삶에 대해서 꽤 많이 원망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건강에 이곳저곳 문제가 심각하게 생겼고,

 즐거운 일터와 많은 다정한 사람을 잃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슬펐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겁니다. "내가 너를 인도한단다."

 

 나는 묻습니다.

 주님? 기왕이면, 좋은 곳으로 인도하면 안 되나요.

 잘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아주 이상하게도,

 시편 23편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생에서는 그런 괴롭고 힘든 구간을 만날 수 있음을 대놓고 암시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그 순간 조차 함께 하신다 라고, 성경은 소중하게 알려줍니다.

 차가운 수술실과 많은 약들을 매일 삼킨 끝에, 저는 기력을 마침내 회복했습니다.

 평안히 쉬기 전에, 할 일이 조금 남았던가 봅니다.

 

 할머니는 저를 위해, 고급 직업을 가지라며 늘 기도했지만,

 고모님은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목회 하시는 분을 도우는 사람이 되렴.

 

 높은 곳의 머리가 얼마나 신나고, 매일매일 재밌는 일인지 저는 익히 체험으로 압니다.

 청춘 시절에는, 몇 만명 동호회의 대장이었으니까요. 블로그에는 하루 천 명씩 왔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는 겁니다.

 더 낮게 가봐라.

 웃음 넘치게 인생 절반을 살았으면,

 이제는 해야할 일을 해보거라.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언제나 자기자랑하고

 항상 말이 많고

 남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구나.

 남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남을 괴롭히고 있구나.

 

 빨간 약을 먹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합니다.

 나는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사랑이 가득한 부자 였습니다.

 죄악 중에서도 최악인, 똑똑함으로 잘난 체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중심, 속사람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버리고 와라.

 

 하나님의 사랑은 때때로 몹시 아픕니다.

 어리석은 양은 제 마음대로 가기 때문에,

 날카로운 것을 이용해서 목자는 양을 돌봅니다.

 그러면 비로소 양은 방향을 바르게 돌이킬 수 있습니다.

 

 저는 반주자 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어설픈 피아노로 찬송가 338장을 예배 전 반주로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 찬양은 가사가 아주 놀랍게 쓰여 있습니다.

 오? 그래? 주님을 가까이 한다고? 그러면, 어떤 삶이지?

 좋은 일이다. 기쁜 일이다. 복된 일이다?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영화 타이타닉 에도 이 노래가 나옵니다.

 고생을 스스로 자처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고생하며 남을 돕고, 남을 살리고,

 그렇게 주님과 가까이 가는 일, 이것이 인생의 소원.

 

 좋은 책은 도끼와 같아서 낡은 생각을 쪼개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도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라서, 나를 있어야 할 곳으로 부릅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는 대체로 곧 죽어버리듯이,

 내가 죽어 있는 곳에서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다시 소생한 영혼은, 비로소 눈을 뜹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기,

 이웃을 사랑하기.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합니다.

 묵상할수록 내가 작아지고, 내 지혜는 초라해집니다.

 나의 길은 가리워지고, 심지어 목적지 마저 점점 흐려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외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선명히 보여주시면 참 좋겠지만, 어리석어진 저는 침묵만이 들립니다.

 내가 말없이 지켜보더라도, 너는 나를 믿고 가겠느냐.

 분명히 내가 먼저 질문한 것 같았는데, 하나님 역시 나에게 묻고 있습니다.

 

 답할 차례가 내게 오고 말았습니다.

 

 피아노를 배울 때, 원장님은 이 찬송가를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는 메말라 있습니다. 영혼이 시들어 있습니다. 죽어 있습니다.

 교만으로 병들었고, 위선과 가식으로 껍데기만 요란합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

 나를 구해주신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

 

 죄인을 오라하실 때에,

 죄 많은 나를 불러주시고.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고,

 이제는 물가로 인도하시기 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는 좀처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100 이라면, 저는 1 이나 2 밖에 모릅니다.

 단지, 내가 해야할 작은 일을 압니다.

 단지, 내가 버려야 할 잘난 척을 압니다.

 

 주님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작은 일을 하면 된단다.

 

 저는 항복합니다.

 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살다보면, 주님께 가까이 가다보면,

 그 뜻을 3 이나 4 까지 알게 될 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마음의 소원이, 내가 아닌 세대에서 복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한 번 더, 기도합니다.

 

 말없이 주님을 따라가기를.

 말없이 이웃을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