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6월의 첫 주일입니다.
오후에 목사님의 안부전화가 걸려옵니다.
건강을 많이 잃은 관계로, 제가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자주 찾아오셨던 목사님.
늘 일찍 잠이 들라고 잔소리 하시지만, 오늘 밤도 불면에 시달리며 끝내 타자를 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말씀이 맴돕니다.
미래는 빠르게 오염된다고 합니다.
AI 시대를 기회의 땅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끝없이 생산되는 자극적 정보, 기계 작성 정보가 인간 세계에 홍수가 되어 덮는거죠.
노아의 방주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배를 만들어서 미래 세대에 다정함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사전을 동원해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뜻은.
여러 가지 일을 만날 텐데, 고맙게 여기도록 마음 먹자. 라고 무척 가볍게 쓸 수 있겠습니다.
맑은 날도 좋고, 흐린 날도 좋고, 비오는 날도 좋다는 것입니다.
저같이 병약한 사람을 인용하면,
아프지 않으면 당연히 좋고, 뭐 좀 아픈 날도 참을만 하니 좋고,
많이 아픈 날은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약을 먹어 가면서 작은 일을 했으니까 감사해 보는 것 입니다.
이 정도의 범위가 제가 써볼 수 있는 묵상 넓이 입니다.
깊이로 들어가보면, 장점과 단점은 사실은 가깝다고 합니다.
나의 단점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은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정직히 말하면, 저는 젊은 시절 말을 잘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게 장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있으면, 저의 달변은 항상 불편함이 되었습니다. 거의 99% 였습니다.
제법 늦게 이 사실을 몇 번의 눈물 끝에 알게 되어서, 의도적 침묵을 훈련합니다.
귀가 2개인 이유는, 첨단 시대에 스테레오 사운드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번 듣기 위함인 게 맞습니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친한 의사 선생님과 경청법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나의 언어로, 한 번 되물어보라는 아주 고급 기술을 전수 받았습니다.
제가 이제껏 알던 대화, 예를 들어 탁구나 배드민턴, 테니스 같은 티키타카 주고받기 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근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제 이야기로 금방 돌아와서, 우리가 감사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 못한 일은 가끔 더 신기한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꽤 좋은 지갑을 늘 잘 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든 상품들의 내구성이 그러하듯 지갑 역시 보수하기 힘든 시점이 오고 맙니다.
안 그래도 가난한 살림살이에, 뭔가 서운하고, 답답합니다. 역시 가난은 숨길 수 없나 싶습니다. 하하.
서랍을 열었더니, 아버지가 더 이상 쓰지 않는 갈색 지갑이 있습니다. 여쭤보니 그냥 쓰라 하십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지갑은 정말 고급 지갑이라고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습니다.
이 다섯 줄 짧은 이야기의 초점은 "좋은 것"을 쓰자가 아닙니다.
불평하는 태도는 사람에게 갈증을 줍니다. 높아지는 눈높이로 인생의 쳇바퀴를 더 빨리 돌리며 힘들어 합니다.
감사는 좀 이상합니다. 어떤 때는 비가 와도, 비에 대한 판단 조차 하지 않은 채, 우산을 준비해 하늘을 봅니다.
현대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약간 우울한 것이 "놀랍게도 정상" 이라고 합니다.
역시, 약간의 우울함은 언제나 좀 더 정확한 판단,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줍니다.
자본주의 고도 마케팅의 틈에 우리가 굴복한다면, 기분 좋은 상태의 지출 중독으로 곤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더라도 감정들 조차, 다 쓸모가 있다는 점에 때로는 엄청난 경이감을 느낍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란, 처음에는 힘든 과제임이 분명할테죠.
그래서 작은 일에 감사하기 정도로 출발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오늘 저의 감사는 독특하므로 남겨놓을만 합니다.
얼마 전, 오른팔에 피를 뽑은 자국이 아직 가벼운 멍으로 남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 결과를 오늘 전화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내과 복용약 더 올려야 겠네요. 건강관리 더 노력해 봅시다."
병과 동행하지만, 건강을 훨씬 더 높은 우선순위로 챙겨야 된다는 선생님 말씀은, 관점에 따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망할지, 감사할지, 그것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정말로 하나님이 듣고 계시다면, 그리고 살아계시다면,
하루를 감사하는 영혼을 더 섬세히 잘 돌보시지 않을까?
저야 뭐, 수명이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은 감사를 당신의 세계 라고 정하셨습니다.
저의 작은 글 커텐을 닫습니다.
다가올 미래는 기계세계가 되어, 빠르게 자극의 홍수로 넘쳐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반갑게 인사해 보는 것.
고맙습니다 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 보는 것.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인간세계의 풍경.
세월이 아득하게 흘러도 그 온기야말로, "사람이 사랑스러운 이유" 일 것입니다.
사랑 없는 거리에,
어두운 거리에,
감사의 등불을 들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2026년에도 뉴스에서는, 사람은 더 크게 떠들고, 목소리를 높이려 확성기까지 준비했습니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작은 눈물의 기도가 더 잘 들린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 수록, 병이 들어갈 수록,
인생을 이끄시는 것도, 나라를 이끄시는 주인도, 주님의 손길이 닿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용히,
감사하며,
간구할 때,
그 응답이 들려오는 날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오리라, 저는 믿습니다.
- 2026. 06. 토요일 늦은 저녁에.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