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98 리버풀의 전설적 라이트백, 필 닐

시북(허지수) 2020. 7. 23. 14:30

 

 리버풀은 7-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던 명문클럽이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선수는 그 때 그 시절 부동의 라이트백이자, 명수비수로 명성을 날린 리버풀의 전설적인 철인 스타 필 닐 입니다. 그럼 시간여행을 한 번 시작해 봅시다.

 

 프로필

 

 이름 : Philip George Neal
 생년월일 : 1951년 2월 20일
 신장/체중 : 180cm / 77kg
 포지션 : DF
 국적 : 잉글랜드
 국가대표 : 50시합 5득점

 

 철인 필 닐, 리버풀의 영광과 함께하다!

 

 하부리그에 속해있던 노샘프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필 닐은 어린 나이 임에도 꾸준한 출장과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경험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1974-75시즌, 리버풀은 필 닐을 데려오게 된 것입니다. 리버풀의 이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1974년 11월, 1부리그(현행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 나선 필 닐은 훌륭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리버풀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밥 페이즐리 감독은 바로 이 녀석이다! 라고 생각했는지 너무 흡족해 했습니다. 이후 오랜세월 리버풀의 라이트백은 필 닐이 든든히 책임지게 됩니다.

 

 전설은 시작됩니다. 필 닐이 몸담고 있던 리버풀은 잉글랜드를 제패하고, 유럽에서도 승리를 거듭하며 강호로 이름을 휘날립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11년 동안 리버풀은 리그우승을 무려 8차례 기록했으며, 더욱이 유러피언컵(현행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4번이나 차지하면서 유럽 최강의 클럽팀 중 하나로 리버풀이 꼽힐 정도가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요즘이야 맨유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팀으로 종종 불리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단연 "리버풀"이었습니다. (세월은 또 바뀌어 2020년 기준, 가장 잘 나가는 클럽은 리버풀이 되었군요! 후후...)

 

 이 리버풀을 지휘하던 명감독 밥 페이즐리는 (지금까지도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는) 챔스리그 우승을 3회나 차지한 영광을 자랑했으며, 필 닐의 경우는 부동의 선수로 활약하면서 리버풀 챔스우승을 무려 4회나 경험한 당시 유일한 선수였습니다. 리버풀 영광의 자리에 필 닐은 늘 함께였습니다. 어떻게 필 닐은 이처럼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선 그의 스타일을 살펴봐야겠습니다. 견실한 수비력은 당연히 기본으로 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두 가지 장기가 있었는데 첫째는 공격참가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날카롭게 공격을 도왔던 필 닐은 한 마디로 공수가 뛰어났으며 게다가 철인과도 같아서 부상도 없이 튼튼하게 리버풀의 중심선수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기록 417시합 연속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바로 필 닐 이지요. 둘째로 PK를 워낙 잘 찼습니다. 그는 PK의 스페셜리스트로도 명성을 날립니다.

 

 리버풀에서는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던 필 닐이었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잉글랜드의 경우 대표팀이 침체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지요. (요즘도 잉글랜드는 유독 대표팀이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비록 50시합 정도 출장했지만, 그럼에도 필 닐을 기억하는 많은 팬들은 그를 잉글랜드 역대 베스트 11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사랑받는 선수였습니다.

 

 한편 리버풀 시절 수 많은 트로피를 싹쓸었던 필 닐이지만 한 가지 비극이 닥쳐옵니다. 리버풀의 캡틴을 맡은 필 닐은 1984-85시즌 유럽 챔피언스 무대에 도전합니다. 이번에도 결승에 오른 명문 리버풀! 결승전 상대는 미셸 플라티니 등이 이끌던 강호 유벤투스 였습니다. 워낙 세기의 대결이고 하니 경기장의 긴장감이 극에 달해 있었고 서포터들끼리 한바탕 난투가 펼쳐집니다. 리버풀 서포터가 유벤투스 팬이 있는 곳에 난입해서 엄청난 싸움이 발생... 사망자만 수십명, 수백명이 다쳤습니다. 축구사의 큰 비극이었지요. 오늘날 이 사건을 당시 경기장의 이름을 따서 헤이젤 참사 라고 부릅니다.

 

 좀 당황스럽게도 이런 참사 속에서 경기는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필 닐 리버풀 캡틴을 비롯해서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연기하자고 건의했으나 경기는 진행되었고 유벤투스가 1-0 으로 승리를 따냅니다. 경기장은 거의 아수라장이었고 영광과 기쁨의 챔피언스 우승이 아니었습니다. 상대팀 유벤투스의 핵심선수였던 미셸 플라티니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시간이 조금 흘러 비교적 젊은 나이에 축구선수를 때려치웁니다.

 

 리버풀은 7년간 국제대회 참가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덩달아 잉글랜드 축구클럽들도 5년간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축구 서포터 문화도 그 이후로 바뀔 수 밖에 없었지요. 패싸움하러 축구장 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테니까요.

 

 필 닐도 이듬해 영광의 리버풀을 떠납니다. 역시 이 쪽도 충격이 적지 않았던지 하부리그에 속해있던 볼튼으로 이적해서 선수겸 매니져로서 볼튼을 지도하며 선수생활 마지막을 보내게 됩니다. 아마 필 닐, 플라티니 등 당대의 명선수들은 축구가 사람의 목숨까지 잃게 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게 상심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유럽 축구계 최악의 참사, 그 당시 주장을 맡았던 리버풀의 전설 필 닐. 아무쪼록 훌륭한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그 불꽃을 태우지 못하게 만들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이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어쩌다보니 본의아니게 평소보다 훨씬 글이 무거운 느낌입니다. 축구는 원래 그렇게 전설들이 맞붙어 가는 흥미로운 스포츠입니다. 리버풀과 유벤투스는 당대의 최강자들이었고 그런 한 판 승부에 뜨거운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축구를 스포츠답게 즐겨야 한다는 것, 새삼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 봅니다. 축구는 싸움이니 전쟁이니, 도박이니... 물론 그런 요소들이 다 들어있겠습니다만, 제게 있어서 축구란 열정이자 도전입니다.
  
 예컨대 오늘 이야기 속에서는 필 닐 처럼 굳건히 쉬지 않고 기둥처럼 출전하는 그 모습을 무엇보다도 높게 사고 싶습니다. 뭐든 한 가지만 계속 파면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전문가가 못 될까, 한 가지를 잘 해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400시합 넘게 연속으로 출장한다는 것은 위대한 전설이지만, 그도 처음에는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가면서 출장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훗날 캡틴까지 맡게 되었고... 그렇습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한 사람의 인생은 멋진 전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독자님의 요청으로 잠깐 써보았던 필 닐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8. 12. 08. 초안작성.

 2020. 07. 23. 가독성 보완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

 

 덧붙여 FIFATV에서 필 닐의 영어 인터뷰가 실려 있으니, 어학이 되시는 분은 참고 바랍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QFVMPbAZ9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