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르디올라 & 티에리 앙리
앙리와 나이차가 6살 밖에 나지 않는 젊은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 만 38살의 젊은 그가 마침내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클럽으로서 사상 최초의 트레블(3관왕) 달성, 챔피언스리그 최연소 우승 감독, 그의 축구인생과 우승비결을 살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축구포스팅이기도 합니다 (웃음) 자, 그럼 출발해 볼까요.
프로필
이름 : Josep Guardiola (호셉 과르디올라)
생년월일 : 1971년 1월 18 일
신장/체중 : 180cm / 76kg
포지션 : MF (수비형 미드필더)
국적 : 스페인
국가대표 : 스페인 - 47시합 5득점 / 카탈루냐 대표 - 9시합 출장
감독경력 : 2008-09시즌 FC바르셀로나를 이끌고 트레블 달성
FC바르셀로나의 상징, 그리고 전설을 써가는 과르디올라 이야기
현역시절 이야기부터 해봐야겠습니다. 1990년대 바르샤(FC바르셀로나)의 아이콘이자 아이돌이었던 과르디올라. 왜 그가 바르샤의 상징이자, 바르샤의 아이돌로 군림했던 걸까요. 과르디올라는 카탈루냐 출신이자, 카탈루냐에서 실력을 쌓아서, 카탈루냐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FC바르셀로나 엘 드림팀의 멤버였기 때문입니다. (바르샤는 카탈루냐 지방을 연고로 합니다. 따라서 자기 동네 출신인 과르디올라를 무척이나 사랑했지요.)
우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실력을 쌓았고, 부산 아이콘스를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고향사람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겁니다. 야구에서도 부산싸나이 이대호의 인기는 부산에서 절정이지 않습니까!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 고향에서 환영받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요.
그런데 과르디올라는 선수시절 큰 아픔도 있었습니다, 메시처럼 어릴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타고난 축구천재와는 조금 거리가 먼 선수였습니다. 10대 때만해도 주위로부터 프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한 비판을 듣곤 했었습니다. 모르긴해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런 비판에도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르디올라의 첫 번째 힘은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간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저력이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비판이나 당하며, 흙 속에 묻혀서 빛나고 있던 진주를 제대로 보았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당시 바르샤의 감독인 요한 크루이프였지요. 요한 크루이프에 의해서 전격 발탁된 이 카탈루냐의 젊은이는 이후 오랜시간 동안 FC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줍니다. 수 많은 타이틀 획득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바르샤의 리그 우승 6회를 이끌었습니다. 1991-92시즌에는 선수로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챔피언스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선수시절 활약은 놀라운 것이었는데, 잠깐 그만의 독특한 축구스타일을 살펴보겠습니다.
과르디올라는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기존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개념을 뒤집은 선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하면 중원의 수비수로서 강력한 압박과 공을 뺏어서 볼을 공격수에게 연결하는 위치입니다만, 과르디올라는 수비형 미드필더 이면서도 예술적인 축구를 구사하던 정말 독특한 선수였습니다. 발군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상황 판단력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패스를 예술적으로 찔러주는데 능했습니다. 적절한 사이드체인지, 감각적인 스루패스! 그의 패스는 섬세하고 우아했습니다. 도무지 전형적 수비형 미드필더의 플레이라고 보기 어려운, 예술적인 지휘자요 사령탑이었습니다. 과르디올라가 출장한 시합과 출장하지 않은 시합의 경우, 승률차이가 무려 2할이나 난다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과르디올라는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상대팀으로부터 집중견제대상이 되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과르디올라는 지능적인 수비수이면서도, 예술적인 공격을 펼쳐나가던 선수였지요. 팀의 키플레이어로서, 절대적 존재감을 자랑하던 과르디올라! 그의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은 현재까지도 사비 - 이니에스타 의 계보로 이어지면서, 카탈루냐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비의 예술적인 패스는 감탄을 자아내고, 이니에스타의 지능적이고 감각적인 모습은 박수를 받지 않습니까!
바르샤의 상징으로 맹활약을 펼쳐가나던 과르디올라는 과감하고도 전격적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는 것을 선언합니다. 과르디올라가 고향 카탈루냐 지방, 바르샤의 누 캄프 경기장을 떠날 때, 이례적으로 수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것도 유명합니다. 타팀에 이적하는 그의 선택과 새로운 도전에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지요. 그는 FC바르셀로나의 아이돌이자, 슈퍼스타였습니다. 2001-02시즌부터는 고향 카탈루냐 지방을 떠나서 이탈리아 세리에A 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브레시아 팀으로 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적한지 얼마 안 되어 약물도핑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오고 맙니다. 4개월 출장 정지 처분에다가, 후에 판결에서도 유죄판결을 받고 말았습니다. 과르디올라 측은 많은 과학적 증거를 제출하면서 과르디올라의 약물 도핑은 오해라고 주장했고, 끝내 2007년 10월에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6년간의 긴 싸움이었지요. 한편 과르디올라는 브레시아 이적 후에도 몇 군데 팀을 더 옮기기도 합니다. AS로마를 비롯해서 먼 타국인 카타르, 멕시코 등에서 선수생활을 해오다가, 2006년 11월에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선수 말년에는 도핑문제도 있었고, 바르샤 시절보다 여러가지로 힘들게 선수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고향이 좋은 법입니다. 아, 그리고 로마를 모처럼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그였는데 말입니다 (웃음)
한편 국가대표로는 그다지 운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축구팬이 아닌 이상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국내에도 광범위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92년 올림픽 때만 해도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스페인의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월드컵 때마다 부상으로 인해 1998년, 2002년 월드컵 모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참 아쉬운 일이지요. 여담을 덧붙이자면, 스페인에서는 1998년 월드컵 당시 과르디올라의 부상에 너무나도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우승후보로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주목 받던 스페인 대표팀은 과르디올라가 부상으로 출장할 수가 없었고, 끝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지난 20년동안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적이 이 때가 유일합니다. 아! 과르디올라여... 그대만 있었다면! 당시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부터 널리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고 좋았을 터인데...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젊은 명군 감독 과르디올라 로서! 말입니다. 격세지감!
이제 그의 인생 2막이 펼쳐집니다.
과르디올라는 현역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FC바르셀로나의 하부조직팀인 바르셀로나B(현재 바르셀로나 아틀레틱)팀의 감독을 맡습니다. 4부리그에 있던 바르샤B를 맡았을 때부터, 그의 놀라운 재능이 또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나 봅니다. 소속팀은 멋지게 1위를 달성하면서, 3부리그 승격을 기록합니다. 취임 1년만에 쾌거였습니다. 빠르게 재능을 인정받은 펩은, 마침내 2008-09시즌 FC바르셀로나의 선장(감독)이 됩니다. 30대의 젊은 감독이 맡게된 바르샤. 그의 감독으로서의 성공비결은 단호하고도 또 정확했습니다. 바로 바뀌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승리를 위해서 몰입하는, 그는 준비된 지도자 였는지도 모릅니다.
카탈루냐 출신 축구예술가, 과르디올라 감독은 취임회견에서부터 핵심 멤버를 조준하면서 개혁의 칼을 꺼내듭니다. 지난날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로 군림하던 호나우지뉴, 데쿠, 에투 등을 이제 핵심멤버로 쓰지 않겠다는 충격적 발언을 합니다. 바르샤 판타스틱4가 깨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환상 대신에 승리를 선택하기로 단호히 결심했나 봅니다. 그렇게 호나우지뉴와 데쿠는 떠났습니다. 그나마 에투는 바르샤에 다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에투는 완벽히 부활합니다. 에투는 각오를 단단히 불태우면서 프리메라리가에서 29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리그우승에 크게 공헌합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에투는 환상적 원샷원킬 - 탁월한 결정력으로 선제골을 작렬시킵니다.
앙리, 메시, 에투가 이끄는 공격은 자유로웠습니다. 마법의 3인방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비, 이니에스타 등이 뒷받침해주는 환상의 미드필더진! 사실상 바르샤의 빈틈은 주전들의 부상 등으로 버티기가 힘들었던 수비일 뿐이다 라는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개혁은 어려운 길입니다. 처음부터 바르샤가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8-09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두 경기 동안 바르셀로나는 홈팬들의 열광적 지지에도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물러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감한 과르디올라의 결단은 결국 페이스를 끌어올리더니 맹렬한 공격축구로 새로운 환상을 창조했습니다. 레알마드리드와의 유명한 "엘 클레시코" 라이벌 경기에서도 홈, 원정 모두 승리를 따내며 2연승을 기록합니다. 6-2로 라이벌 레알을 대파하며 파죽지세로 달려갈 때부터 FC바르셀로나의 자신감은 절정을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바르샤는 104득점 34실점이라는 압도적이고 무시무시한 리그성적을 자랑했으며, 일찌감치 리그우승을 확정짓습니다. 코파 델 레이 컵대회에서도 빌바오를 4-1로 가볍게 대파해 버립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가 펼쳐집니다. 맨유 선수들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르샤는 물 흐르듯이 유려한 축구를 선보입니다. 선제골을 넣고도 걸어잠그는 전략 대신에, 침착하고도 확실하게 맨유의 숨통을 조릅니다. 전방에서 펼쳐지는 압박, 놀라운 패스정확도, 바르샤가 펼치는 축구예술에 많은 팬들이 환호를 보냅니다. 맨유의 완패이자, 바르샤의 완승이었습니다. 과르디올라는 만 38살의 나이에 그렇게 팀을 3관왕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것도 취임 단 1년만에.
박지성이 아시아인 최초로 챔스결승에 출장하던 그 날. 많은 팬들과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일어나 박지성이 잘 해내기를 응원했습니다. 맨유는 안타깝게 패하고 말았지만, 이 날 또 하나의 위대한 전설이 태어났습니다. 승리하겠다는 자신감으로 뭉친 FC바르셀로나는 근래에 보기 드문 결승전에서의 화려한 축구를 선보이며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스페인 클럽의 새역사를 썼습니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샤 시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젊은 감독을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맨유, 그리고 박지성도 거기서 끝날 모습이 아니기도 합니다. 어제의 챔피언이, 오늘의 챔피언에게 당하는 진검승부의 세계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두 팀 모두 앞으로도 더욱 흥미진진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오래전에 썼던 글을 편집하고 내용을 덧붙인 글입니다. 자료를 나름대로 찾아보고 읽어보았음에도 또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흥미롭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