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블론드 엔젤, 베른트 슈스터

시북(허지수) 2009. 10. 10. 21:58

 처음 축구스타 이야기를 쓸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지고 사람들이 꾸준히 찾게 될 지는 사실 몰랐습니다. 여하튼 글을 쓸 때는 그 때 당시의 정보를 토대로 쓰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정보를 갱신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잘못된 옛날정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지요. 슈스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알마드리드의 감독으로 화려하게 우승을 이끌었던 그가 갑자기 성적부진으로 해임되고 말았지요. 세상사는 참 급변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레알은 2003년 이후로 매년 감독이 교체되고 있으니, 뭐 이런 속도감도 당연한 것인지도요. 당시만 해도 레알의 수장으로 소개했던 베른트 슈스터였는데, 이제 정보를 갱신해 독일의 멋진 판타지스타로서 현역시절을 재조망해 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Bernd Schuster
 생년월일 : 1959년 12월 22일
 신장/체중 : 183cm / 75kg
 국적 : 독일
 포지션 : MF
 국가대표 : 21시합 4득점

 독일의 판타지스타, 슈스터의 이야기

 지금의 슈스터 외모는 마치 옆집에서 살고 있는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외모입니다만, 현역시절에는 샤방한 금발외모로 한 인기를 자랑하던 슈스터 였습니다. 현역시절, 그러니까 8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적 축구스타이자, 판타지스타 베른트 슈스터. 그의 이야기로 한 번 빠져봅시다.

 어린시절부터 공을 잘 찼던 이 금발소년은, 아이스하키에도 빠져들었던 만능 운동 소년이었습니다. 유소년 때부터 축구팀 주장을 맡아왔고, U-18 유소년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어서 주전으로 그 재능을 선보입니다. 당연히 많은 프로팀들이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영입하고자 애썼지요. 이런 걸 보면 뛰어난 재능은 숨길 수 없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잘 하니까, 눈이 가는 걸 어쩌겠습니까!

 슈스터는 1.FC쾰른과 보루시아MG, 두 팀의 이중계약 논란 속에서도, 여하튼 다행히도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1.FC쾰른에서 분데스리가 프로무대를 밟게 됩니다. 시작부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친구군요! 이 천재 소년은 데뷔부터 곧바로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명불허전의 실력파임을 입증하였고, 곧이어 스무살도 되기 전에 국가대표에 발탁됩니다.

 이런 일방통행식 성공스토리는 조금 흔한가요?

 여기서 조금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한데, 슈스터는 좀 다릅니다. 이 친구가 환상 그 자체거든요. 때는 1980년 유럽선수권, 즉 유로80 입니다. 당대의 강호 중의 강호였던 서독은 이 해 멋지게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우승 멤버 중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불과 20세 불과했던 천재 미드필더, 베른트 슈스터 였습니다. 흠잡을 데가 도무지 없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로 경기장을 지배하면서 서독의 우승에 큰 공헌을 합니다.

 사실 독일축구 라고 함은 전차군단이라는 별명처럼, 딱딱하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기 마련이지요. 화려하고 섬세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주인공 슈스터가 바로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이러했습니다.
 화려합니다. 세련되고 우아합니다. 전성기시절,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그의 축구감각은,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볼터치, 좀처럼 보기 드문 놀라운 패스센스, 게다가 아름다운 슛까지 겸비!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빠져들면서, 금발의 천사 (블론드 엔젤) 이라는 아주 화려한 별명을 붙여줍니다. 특히 정확하고 깔끔한 패스는, 70년대 전설적인 센티미터패스의 주인공 귄터 네처를 연상시킬 정도였습니다.

 1980년 유럽최우수선수(=발롱도르) 시상식이었습니다. 독일의 레전드 선수 중에 한 명이자, 미스터 유럽으로 불리던 명공격수 루메니게가 이 상을 수상합니다. 놀랍게도 2위는 불과 20살의 이 슈스터였습니다. 그는 이렇듯 유럽을 놀라게한 젊은이였습니다!

 이러한 유능하고 화려한 젊은이를 세계의 명클럽들이 주목했고, 1980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던 4천만 페세타의 이적금 기록을 남겨주며,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됩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도 그의 활약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바르샤의 주축으로 성장한 슈스터는 많은 우승에 공헌합니다. 특히 1984-85시즌에서는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해 리그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습니다. 발롱도르 후보로도 이름이 재차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슈스터는 레알 마드리드, AT 마드리드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라리가의 대표적인 인기스타 중 한 명으로 군림합니다. 특히 레알마드리드 시절에는 팀의 핵심이자 기둥인 중심선수로 우뚝 서서 수 많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슈스터의 라리가에서의 활약은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당대 프리메라리가를 뒤흔드는 엄청난 활약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혹자는 그의 화려한 스타일, 테크닉이 넘치는 스타일을 두고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진 스타였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편 스페인 3대 명문클럽으로 꼽히던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AT마드리드, 이 세 팀 모두에서 플레이한 기록이 있는 아주 드문 선수이기도 하지요.

 선수 생활 후반기에는 독일으로 돌아와서 레버쿠젠 등에 몸담기도 했으며, 30대 중반까지도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쳐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 길고 화려했던, 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자, 이제 그의 놀라운 활약을 살펴봤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는 유럽을 넘어서 세계에 이름을 날릴 수 없었던 걸까요. 서독이라는 축구 강국에서 그렇게나 축구를 잘하던 판타지스타 였다면서!!! 그것은 불운한 국가대표 커리어에 기인합니다.

 앞서 본 것처럼 그는 20살 때부터, 독일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가대표팀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국가대표에 선정되어도 사양하는 등 좀처럼 국가대표로 뛰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의 국가대표 통산은 21시합이 전부입니다. 대표팀을 멀리한 이유 중 중요한 이유로는 선수기용방식에 불만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최고의 선수로 대하지 않고, 시합 중 교대, 벤치 신세. 이런 것들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애정이 떠나버리면, 가까이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서독 축구사의 안타까운 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82년, 1986년, 1990년, 서독은 3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결승에 오릅니다. 그야말로 강호 독일이었지요. 슈스터는 "모두 불참" 합니다. 심지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에는, 베켄바워 감독이 직접 참가 요청을 하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사양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독일은 1990년 단 한 차례만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두 번은 준우승이었지요. 이 때, 독일에서는, 또 그의 플레이를 보았던 많은 이들은 "아.. 슈스터만 있었다면" 이런 소리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슈스터만 있었더라도 꿈의 3회 연속 월드컵 우승의 쾌거도 이룰 수 있었을텐데... 라는 바람이 컸던 탓이지요. 그는 그토록 실력하나가 끝내주던, 모두가 이름을 찾던 그런 스타플레이어였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은 무척 짧았지만, 슈스터는 그 짧은 시간에도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꿈을 안겨주는 천사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독일의 손꼽히는 판타지스타였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플레이메이커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월드컵 출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전설적 선수였던 미셸 플라티니, 지코 등과 비교하면 지명도가 낮은 편이랄까요. 베른트 슈스터는 실력보다 인지도가 낮은 전설적 선수로도 평가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놀라운 실력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못한 선수라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슈스터는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도 손꼽는, 그야말로 축구사의 희대의 천재선수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결코 아닙니다. 80년대의 대표적인 명선수이지요.

 글을 마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진짜 타고난 천재라고 불렀던 금발의 천사 슈스터 였으나, 슈스터의 코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의 훈련은 주위 선수들의 몇 배였다. 그는 진정한 노력가였다."
 
 천재의 진실은 때로는 이럴 때가 있습니다. 단지 몇 배나 더 하기 때문에, 월등히 잘 하는 것이지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드상을 수상한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말합니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평범했던 그가 훌륭한 수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다만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더 멋진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유명한 판타지스타 로베르트 바조 역시 감독으로부터, 내가 보아왔던 선수 중에 가장 열심히 훈련 하는 선수가 바로 바조였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슈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라운 플레이의 이면에는 수 많은 노력과 땀방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놀라움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곰곰히 되씹어보면서, 노력의 아득하고도 무서운 힘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레전드 스타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그 자리에 있기까지의 수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가 정상에 오래도록 우뚝 서는 일은 없습니다. 슈스터는 선수생활 대부분을,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며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명선수입니다. 이것으로서 슈스터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의 플레이 영상은 많지 않아서 일단 짧막한 것이라도 추가해 놓을까 합니다. 늘 즐겁게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초안 : 2008/02/26
 갱신 : 200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