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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156 아르헨티나 우승의 주역, 마리오 켐페스

친절한 시북(허지수) 2020. 10. 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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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첫 우승을 할 때가 1978년. 바로 그 시절의 주포인 마리오 켐페스에 대해서 이번 시간에 알아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Mario Kempes
 생년월일 : 1954년 7월 15일
 신장/체중 : 181cm / 78kg
 포지션 : FW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43시합 20득점
 주요수상 : 1978년 월드컵 득점왕 및 MVP

 

 투우사로 불리던 호쾌한 공격수 켐페스

 

 꿈은 이루어집니다. 한국도 언젠가 월드컵 정상에 서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처음이 힘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74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2차리그까지 진출하지만,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네덜란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게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국가대표였던 켐페스는 월드컵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켐페스가 누구일까요. 그는 74년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할만큼 유능한 공격수 였지요. 그럼에도 네덜란드 토탈사커의 위용은 높았던 것 같습니다.

 

 마리오 켐페스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공격수로 손꼽혔습니다. 이듬해 1975년에는 리그에서 35골을 폭풍처럼 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특급 공격수가, 어린 시절에는 명문 보카 주니어스의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도 했다니... 인생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에 실패하고 떨어졌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순간을 넘어서면, 찬란한 일들이 펼쳐지곤 합니다.)

 

 드디어 켐페스는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서 아르헨티나인 사상 최고 금액의 이적료를 자랑하면서 스페인 라리가 발렌시아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라리가 데뷔 이후부터, 골을 휘몰아 친 켐페스는 첫 시즌부터 머나먼 이국땅에서 24골을 넣으며 득점력을 인정받습니다. 1977-78시즌에는 무려 28골 작렬! 두 시즌 연속 득점왕에 빛나면서 발렌시아의 인기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지요.

 

 장발을 휘날리면서 돌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호쾌한 플레이를 자랑으로 삼았던 켐페스에게 사람들은 어울리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투우사" 정열적이고, 뜨거웠던 공격수에게 보내는 찬사였습니다. 화려한 플레이를 펼쳤으며, 훌륭한 스피드와 강력한 슛을 겸비한 스트라이커 였지요.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당대 아르헨티나의 아이돌이었습니다.

 

 그렇게 1978년 월드컵 무대의 막이 오르게 되었지요. 모국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오른 두 팀은 공교롭게도 바로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였습니다. 지난 날의 탈락의 쓴 맛을 복수할 날이 온 것이지요. 경기는 치열하게 펼쳐집니다. 1-1 무승부로 전후반이 끝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네덜란드도 아직 우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장전. 뒤에서 달려오던 켐페스가 패스를 받으면서, 순간적인 드리블을 시작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가볍게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골키퍼와 1대 1 상황을 만듭니다. 간신히 골키퍼가 공을 쳐냈지만, 쳐낸 공은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켐페스는 정확한 위치를 잡은 후, 그 공을 골망으로 날려버립니다. 2-1 승부는 기울어 집니다. 환호하는 켐페스와 7만 관중들... 승기를 잡은 아르헨티나는 이후 추가골까지, 기록하면서 네덜란드에게 3-1 로 승리합니다.

 

 결승전에서 두 골을 작렬시키며, 4년 전의 뼈아픈 탈락을 되갚아준 켐페스와 아르헨티나는 마침내 1978년 월드컵 첫 우승을 경험합니다. 마리오 켐페스가 대회 MVP에 선정된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의 발 끝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천금의 골이 나왔으니까요.

 

 이후에는 모국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 공을 차다가, 다시 스페인, 오스트리아 리그 등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주로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FIFA100에도 선정되었고, 앞으로도 켐페스는 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이 오르내릴 것입니다. 다만, 뒤에 나타난 마라도나의 강렬한 포스 덕분에, 그 이름이 다소 덜 알려진 느낌은 있습니다. 오늘도 글을 정리하며 그의 화려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한 번 보는게 그 선수에 대하여 "허걱, 이 선수 장난 아니었네" 라고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늘 아낌없이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009. 12. 17. 초안작성.

 2020. 10. 17.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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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리자 로사리노 센트럴시절 105경기 85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골기록을 남겼고.
    마리오 캠페스의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의 6골은 24년이지나서야 깨졌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호나우두의 8골입니다
    바티스투타, 카니쟈, 발다노, 마라도나 와 같이 제가 좋아하는 공격수입니다
    아참, 캠페스가 발렌시아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었던가요?
    제가 기억하기론 패널티킥도 실축하고 별 활약 못했던걸로 아는데...
    물론 첫시즌 득점왕에 오르긴하였습니다만.. 제가잘못알고있는거일수도 있어요~
    2009.12.17 21:09
  • 프로필사진 시북 리자님의 정확한 지적에 재차 감사를 ^^ 급하게 쓰느라 제대로 확인 안하고 올렸네요. 데뷔전이 아니고, 데뷔 이후에 많은 골을 넣었던 게 맞아요; 여하튼 두 시즌 연속 라리가 득점왕에 빛나던 (28골은 푸스카스가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로는 가장 많은 골 기록이었다고 하네요) 매서운 공격수 였음은 분명합니다. 시원한 공격수들을 좋아하시는군요 ^^ 늘 훌륭한 댓글에 감탄과 감사를 표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09.12.18 12:45
  • 프로필사진 케이비스 선수 한 명에 초점을 맞춰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바라보면 이렇게 서술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르헨티나의 첫 우승에는 불가항적으로 꺼림칙함이 깃든다고 보는데 아무리 선수 한 명에 포커스를 집중한다고 해도 이렇게 좋게만 쓰기는 껄끄럽지 않나요? 2009.12.21 22:48
  • 프로필사진 시북 월드컵도 예전에는 여러가지 압력들이 있었지요. 특히 일부 대회의 경우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던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78년 월드컵 때도, 저 유명한 요한 크루이프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독재에 반대하며 참가를 거절했고, 네덜란드는 이처럼 우승문턱에서 아쉽게 우승컵을 놓쳤지요. 66년 월드컵 결승전도 그 골장면으로 종종 문제가 되고, 아주 오래전 34년 대회에서 있었던 이탈리아의 우승은 정치적 압력이 경기에 직접적으로 작용한 더티한 트로피도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이 쉽사리 정당화 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결국 스타 한 명에 조명을 맞춘 서술은 케이비스님의 지적처럼 제 불찰로 인해 몇 가지를 (대회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 등) 놓치고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에 대한 조명에 큰 개괄을 함께 넣기에는 제 역량부족인 것 같습니다 ^^ 의견 감사합니다. 2009.12.22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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