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리뷰 (Slumdog Millionaire, 2008)

시북(허지수) 2010. 5. 16. 21:10


 오늘은 슬럼독 밀리어네어 라는 유명한 영화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 글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감상하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슬럼가에서 자란 고아 출신의 청년이 퀴즈쇼에 나가서 거액의 상금을 탄다는 이야기지요. 아아~ 이것이 인생역전!

 친구와 함께 종종 1 VS 100 같은 퀴즈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저로써는 상당히 흥미로운 줄거리가 인상적이었지요. 어떻게 해서 저렇게 배운 것도 변변치 않은 친구가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정답을 맞춰나갈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영화에서 나오는 문제들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100달러 짜리 지폐에 새겨진 인물은? 겨우 그 정도만 답을 알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두꺼운 책을 읽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리볼버를 개발한 사람? 이런 것을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 자꾸 문제를 맞춰나가는 주인공 청년은 상금이 커질수록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급기야 끌려가게 되고, 사기를 치고 있는거 아니냐면서 진실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놀랍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지요. 그의 인생은 어쩌면 우울함 그 자체였습니다.

 고아가 되고, 인간에게 속고, 형에게 속고, 심지어 사랑하는 그녀를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고,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청년이 되고, 일자리라고는 보조로 차를 나르는 일을 하는 우울한 인생이었습니다. 재밌었던 점은 이러한 사실들을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조명한다는 시선이었습니다.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비관적이지도 않게,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게, 그냥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복잡하고 힘겨운 인생을 견뎌오면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해왔고, 그 경험들이 우연히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준 셈이지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까지 받은 만큼,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좋은 점이 상당합니다. 인도를 담고 있는 사실적인 화면, 깨끗한 영상, 음악도 특유의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루하지 않게 상당히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게 좋았습니다. 몰입도가 높아서 지루할 틈을 별로 주지 않았네요. 별로 복잡하지 않고, 심각한 고민을 강요하지 않는 한에서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생각할 꺼리를 던져본다면, 영화에서는 이른바 "좋은 사람"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 세상이 험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주인공이, 어쩌면 한심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인다는 것... 순수함 = 바보스러움, 교활함 = 승자의포스 가 되어가는 현대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느낌이 종종 들었습니다. 게다가 총이 있고, 힘이 있고, 권력이 있을 수록, 타인을 함부로 대하기 쉽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지요. 어릴 적부터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며 자꾸 도태되어 왔던 주인공을 응원하는 구도가 간단해서 좋았습니다. 순수청년 화이팅!

 이 영화의 힘은, 역시 어떤 환경을 맞이하더라도, 살아남아 가는 삶의 무게 를 밝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어두운 환경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강한 마음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청년의 모습에, 비록 그 희망이 현실 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복권의 당첨확률처럼 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생에는 다양한 경험이 담겨 있고, 그의 청춘에는 애뜻한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크게 외치고 있는 듯 합니다.

 절망하지도 않고, 헛된 꿈을 그리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원망 대신에 주어진 일에 충실 하면서, 가능성을 향해서 조금씩 움직여 가는 그 힘이, 그 한 걸음이 매우 멋지게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적인 명장면은 후반부의 아주 고전적인 대사였습니다. "돈은 필요 없어, 이제 우리 함께 살아가고 싶어." 역시 슬럼가 출신으로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여주인공의 대사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이 많고 불화가 가득한 집안 보다는, 가난해도 화목한 집안이 차라리 낫다.

 제가 앞서서 - 힘을 가지게 되면, 타인을 함부로 대하기 쉬워진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스펙이 좋고, 돈을 잘 버는 커플이 결혼을 해서, 서로 험악한 사이가 되어서 이혼 직전까지 간다는 사례를 상당히 듣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의 기준과 성공을 타인에게 양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상대방에게 삶의 습관을 내 쪽으로 맞추라고 강요하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성격 차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커플은 그만큼 서로 멍들기 쉽다는 것이지요.

 아, 물론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은 여자친구가 우리 여기서 도망쳐서 어떻게 살아갈껀데? 라고 묻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현실...) 돈이 많고, 힘이 센 것이 행복한 인생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 함께 마음을 맞춰가고, 발걸음을 맞춰가면서 살아간다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혹자는 그게 무슨 웃기는 소리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는 아픔을 알고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것이 현실일지라도, 가난하다고 사랑조차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는 쪽으로 살아가고,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난 해줄 게 없어, 우리 헤어져." 그렇게 가난을 핑계로 도망치기 쉽지만, 차라리
 "해줄 게 없는 게 현실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할께, 우리 만나보자." 라고 담담하게 살아보자 라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다면, 그 사랑의 가치는 결코 돈으로 함부로 매길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영화를 다 보고, 훌륭하지만 별점 4 점 점도를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소설을 토대로한 영화이지, 현실과는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생각보다 여운이 오래 갑니다. 한 씬, 한 씬과 여러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와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별점 5개를 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추천할 만 합니다. 마냥 밝은 작품은 아니고, 마냥 괴로운 작품도 아니고, 우리네 인생처럼, 슬픔과 기쁨, 소소한 일상이 함께 들어있다고 생각되네요. 무엇보다 힘들어도 비난과 짜증대신에,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삶의 자세는 꽤 오래도록 인상적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굳이 로또를 맞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제까지 삶을 그렇게 살아내왔고, 그 자체로도 근사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을 행복하게 보냅시다! 저는 그것이야 말로 로또 10번을 맞아도 되살릴 수 없는 오늘의 무게라고 생각해 봅니다. 2010. 05. -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