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리뷰 (Dead Poets Society, 1989)

시북(허지수) 2010. 6. 11. 20:10


 죽은 시인의 사회 - 라는 손꼽히는 명작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전에 봤을 때는, 큰 감동과 충격이 남아있어서, 좀처럼 그 인상과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모처럼 다시 보니까, 더욱 깊은 생각을 안겨주는 것 같아서, 과연 좋은 영화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카데미 각본상에 빛나는 멋진 이야기로 한 번 빠져봅시다.

 이 영화의 주된 테마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 - Carpe diem"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시인 호라티우스가 했던 말이지요. 영화 에서도 나오지만, 영어로는 "seize the day" 라고 합니다. 흔히 현재를 즐겨라 라는 해석으로도 통용됩니다만, 오늘을 붙잡아라 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멋진 말이지요. 바로 오늘을 잡아라! 라는 것. 지금 이 순간이 그만큼 값지고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라틴어로 조금 더 파고들어가면 Carpe는 꽃을 딴다 의 명령형으로, "꽃을 따라" 라는 의미이고, Diem은 목적어로서 "day"를 말합니다. 이걸 그대로 쓴다면, (목적을 가지고) [오늘이라는 꽃을 따라] 라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 봅시다. 이것와 정반대 되는 말을 상상해봅시다. 반대말은 아마도 [무의미하게 오늘을 그냥 보내라] 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의미없이 산다는 것은 비록 오늘은 살아가지만 영혼은 이미 죽어있는 사람과 같다고 영화에서는 힘주어 강조합니다.

 호라티우스 시인은 왜 이런 말을 했는가!? 그는 내일을 믿지 말고, 오늘을 충실히 보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언제 죽을 지 조차 알 수 없는 인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이런 명백한 사실을 두고 괴로워 하는 것 보다는, 어떠한 죽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짧은 인생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의지하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더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한 삶을 맞이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카르페 디엠에 대한 "개념"을 영화는 매우 사실적이고도 근사하게 보여줍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자신이 직접 창작을 해보고, 계속해서 생각을 해보고, 용기내어 행동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섣불리 행동하기도 전에 미리 판단부터 해서, "안 될꺼야...", "나에게는 무리야..." 라고 단념하며, 포기해 버릴 때가 많지 않습니까? 혹여 상처 받더라고,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고백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새로운 일이나 흥미가 가는 일에는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그 하루의 용기가 인생을 바꿔버릴 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매우 근사한 이 영화의 테마는 "자신답게 사는 것" 입니다. 획일화 -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기준으로 걷고 있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독특하게 보이더라도,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 재밌는 예를 들자면, 박명수의 호통개그 같은 것도 자신의 매력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굳이 남의 눈을 의식해서 피곤하게 억지가면을 쓰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잊지 마세요.

 경쟁에서 이겨서 - 드디어 1등이다! 나는 탁월해! 나는 성공한 인생! 이라는 기준을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가 그와 똑같은 기준들 위에서 불행해 질 위험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위에서 자신을 판단하고, 혹여 그 기준에 못 미친 자신의 어떤 모습이 열등감의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흰 종이에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써보세요.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하루를 산다면, 그는 그 하루를 열심히 보낸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습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하루가 재밌을 수 밖에 없지요! 칼라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표가 확실한 사람은 아무리 거친 길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만의 근사한 목표를 정하고, 그에 걸맞는 충실한 하루를 보낸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인생을 써나갈 것입니다. 그는 나답게 살고 있으므로!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 주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대학을 나오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의 부모님과 선생님들도 그 점을 강조합니다. 생각해보면 힘이 듭니다.

 명문대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또 명문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어려우며, 직장을 잘 잡기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만 물론 쉽지 않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괴로운 부부도 많으며, 가정을 꾸려서 헌신적으로 쏟아부은 내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의 삶은 겉으로는 성공일지라도, 속으로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지요. 인생의 고민이 많은 것도 다 이런 까닭이겠지요.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힘이 드는 것입니다.

 하루가 답답할 때는 다른 시점으로 돌려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알아가기 위해서 배워나가고, 신이 내린 직장에 못 들어가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 내가 선택한 일을 즐겁게 생각하도록 노력하고, 나부터가 좋은 남편, 아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소통을 해보고... 말이지요. 결국, 냉정하게 살펴보면 완벽한 인생이란 애시당초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솔직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주어진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인생이... 정말로 행복한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겠지요.

 요즘 같이 복잡성이 증가되고,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장치와 시스템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오늘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어쩌면, 이 영화는 오늘이야말로 인생의 전부이며, 오늘을 붙잡지 않으면, 무의미한 하루들만 반복되다가 어느 날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 2010. 0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