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쓸까나... 요즘은 정보도 많고, 위키피디아 처럼 집합지능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시대에 대체 누굴 쓸까. 그런 고민만 잔뜩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결정하면서 - 브라질의 숨은 레전드 카레카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너무 조명받는 선수만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요 :) 이야기 출발!
프로필
이름 : Antonio de Oliveira Filho / 주로 카레카(Careca)로 부름
생년월일 : 1960년 10월 5일
신장/체중 : 179cm / 75kg
포지션 : FW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60시합 29득점
브라질 에이스 스트라이커의 포스! 카레카 편.
1978년 브라질 소속팀에서 전국선수권 우승을 경험하고, 1982년 드디어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카레카. 브라질은 이 20대 초반의 신예에 대해서 나름의 기대가 모아졌습니다. 하지만 꼭 이런 선수 있지요. 월드컵 활약 직전에 부상으로 고생하는 선수들! 카레카도 그랬습니다. 결국 카레카는 82년 월드컵 결장! 두둥. (뭐, 브라질은 82년 당시 지코 등 황금의4인방의 화려한 축구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 잡았습니다)
시간은 흘러서 1986년 월드컵이 되었고, 카레카에게는 드디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브라질의 9번을 달고 있던 월드컵 멤버는 바로 카레카 였지요. 텔레 산타나 감독이 이끌던 브라질의 1986년 역시 충분히 강했습니다. 조별리그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3연승, 16강전에서 폴란드 4-0으로 대파! 그런데, 하필 8강에서 만난 상대가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던 잘 나가던 강호 프랑스! 마치 결승전이 열리는 듯한 엄청난 관심 속에서 경기는 치뤄졌지요. 86년 월드컵이 마라도나가 엄청 떴던 대회이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여러가지 관심을 받았던 경기가 있었음을 놓쳐선 곤란하겠지요.
여하튼 전반전 선제골을 넣은 것은 브라질의 에이스 스트라이커 바로 "카레카"였지요. 프랑스도 이에 질세라 플라티니가 동점골을 넣었고, 팽팽하던 경기는 후반전 브라질이 PK를 얻어냅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10번 지코가 실축... 경기는 끝끝내 승부차기까지 흐르고만 것입니다. 승부차기에서도 브라질의 인기스타이자 PK달인 소크라테스가 실축! 프랑스에서도 PK의 명수라 불리던 장군님 플라티니 마저 실축! 허허... 끝내 간신히 경기를 이긴 것은 프랑스였지요. 가혹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것은 프랑스였고, 이 경기 자체는 월드컵 명승부 중 하나로 훗날 불리게 됩니다. 이름하여 86월드컵 8강전의 명승부! 온 힘을 쏟아부어서 프랑스는 강호 브라질을 잡았지만, 너무 힘을 쏟은 탓일까요. 이후 4강에서 독일에게 무너지고 맙니다.
86월드컵 득점순위도 재밌었는데, 1위는 6골의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2위는 공동으로 마라도나(아르헨), 카레카(브라질), 부트라게뇨(스페인)가 차지합니다. 당대 스타 공격수들이 득점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카레카는 첫 월드컵 출장에서 5시합 5득점이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세계의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82년 월드컵에 카레카 같은 결정력 있는 공격수가 부상이탈없이 있었더라면, 이탈리아를 잡은 팀은 마법의 브라질이었다! 라는 평가도 있지만... 원래 만약은 만약일 뿐이겠지요. 86년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것 치고는 결과적으로는 8강 탈락이라는 아쉬움을 안고 말았습니다.
활약에 힘입어서 1987년 마라도나가 이끌던 나폴리로 팀을 옮기면서, 이제 유럽에서 활약하게 된 카레카 선수. 마라도나와 콤비네이션은 정말로 차원이 다른 전개였습니다. 카레카-마라도나 라는 환상의 남미콤비는 수 많은 골을 양산하면서 나폴리의 화려한 시대를 여는데 톡톡히 한 몫합니다. 카레카는 89년, 90년 연속으로 20골 이상의 폭발적 득점력을 과시했고, 이 무렵에 나폴리는 UEFA컵 우승(`89), 세리에A 우승(`90)도 경험하게 됩니다. 1926년 창단 후 우승이 없던 나폴리였기에, 정말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였지요.
그 놀라운 투톱에 대해서, 이런 평가마저 전해집니다. 세리에 A 역대 최강의 투톱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라도나 - 카레카 를 이야기 하겠다. 그들의 콤비야말로 다시 보기 힘든 최고의 공격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세계 최고의 투톱 중 하나로 평가받을 것이다! - 여기서 잠깐!? 찬사가 지나쳐 보이나요. 당시 나폴리의 팬이였다면, 아마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우주최고의 투톱이다!" 라고 불러야 마땅했을 것 같습니다 (웃음) 그 정도로 강렬했던 환상 콤비였지요.
그럼 카레카는 어떤 공격수 였는가를 살펴봐야 겠지요. 우선 공을 다루는 발재간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되며, 슈팅력이 날카롭습니다.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확실한 결정력이었지요. 공격수가 결정력이 좋다 라는 평을 듣는다면, 그것만큼 듣기 좋은 찬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스피디한 드리블과 팀플레이도 능했기에, 만능 포워드라는 평가도 듣습니다. 혹자는 반 바스텐과 비견될만큼 완성된 공격수 였다 라고도 평가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 94년 월드컵 호마리우, 베베토가 활약하던 그 이전 세대의, 브라질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를 꼽는다면, 9번 카레카가 있다! 라고 불릴만큼, 나름대로 세계에서 인정받던 명공격수였다 하겠습니다.
카레카는 나폴리 시대 이후, 93년 일본 J리그의 카시와레이솔에서 활약하기도 했고, 이후 브라질에 돌아가서는 40살이 다 되도록까지 현역에서 플레이하고,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일담으로는 2005년에 잠깐 잉글랜드의 가포스 타운이라는 클럽과 계약해서 1시합 뛰었다는 기록도 있고요. 이제 카레카의 이야기를 마쳐야 겠습니다. 마치며 영상을 덧붙입니다. 후반부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후덜덜" 하고, 놀랍네요.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월드컵에 항상 출장하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지만, 언제나 강한 포스를 뿜어낸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우승을 하지 못한 82년에도 화려한 축구로 세계를 놀라게 해주었고, 또한 8강 탈락이지만 86년 월드컵에서의 오늘 이야기 주인공 카레카 포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90년 월드컵에서도 잘해놓고 16강에서 아르헨티나의 바람의 아들 카니쟈(http://suparobo.kr/292)에게 통한의 일격을 맞으며 0-1로 침몰했을 뿐, 늘 우승후보에 이름을 올릴만큼 출중한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번 2010 월드컵에서까지 말입니다.
결국 그 원동력은 많은 이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아끼기 때문이겠지요. 브라질은 인구의 수만큼 감독이 있다는 소리가 있을 만큼, 무서우리만큼 축구에 관심이 강한 나라지요. 독일도 그만큼 축구저변이 좋아서, 큰 무대에서 늘 결과를 가져오곤 하고요. 결국 관심과 성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재차 생각해봅니다. 한국은 비록 아쉽게 16강에서 패배한 2010년 이지만, 변함없이 응원한다면 훗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즐거운 월드컵 기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