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데미르 라는 브라질 스트라이커에 대해서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A매치 39시합 32득점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나, 정작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 그러나 실로 뛰어났던 공격수. 그의 이야기 속으로 한 번 출발해 봅시다.
프로필
이름 : Ademir Marques de Menezes
생년월일 : 1922년 11월 8일 (1996년 5월 11일 작고)
신장/체중 : 176cm / 73kg
포지션 : FW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39시합 32득점
브라질 유니폼이 노란색인 이유? 아데미르 이야기를 보면 압니다!
브라질은 축구를 아주 잘하는 나라로 인식됩니다만, 처음부터 잘했을까?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1910~40년대에는 우루과이 혹은 아르헨티나가 남미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지요. 우루과이팀 역시 50년대 경제위기와 함께 축구실력이 곤두박질 쳐서 그렇지, 그 전까지는 축구로는 알아주는 강국이었습니다. 이 시절에 워낙 트로피를 많이 따놓아서 지금도 코파아메리카 최다우승국이 우루과이지요. (14회 우승, 아르헨티나와 동률)
그런 우루과이의 높은 벽을 넘고 싶은 것이 브라질 축구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브라질은 넓은 땅덩어리로부터 정예 멤버를 꾸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대표팀보다는 클럽팀이 인기가 있고, 여전히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오는 법! 브라질은 1949년 드디어 27년만에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한 번 좋은 찬스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주포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아데미르 선수였지요.
테크닉이 월등히 좋고, 양다리를 모두 사용하면서 강렬한 슈팅을 날리는 아데미르는 당대 브라질의 간판 스타였습니다. 심지어 슈팅을 날릴 때, 어찌나 강력한지 "쾅" 이라는 대포소리가 났었다는 과장된(!) 이야기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별명도 포병, 마법의 포병 등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점프력과 스피드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49년리그, 1950년리그 연속득점왕에 빛나는 이 아데미르가 있었기에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리는 1950년 월드컵에서 기대가 더욱 컸습니다. 당시 멤버도 좋은 선수가 많았고요.
그렇게 1950년 큰 무대는 막이 올랐고, 첫 경기부터 "골~" 이라는 포문을 열어젖힌 것도 아데미르 였지요. 브라질은 1차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합니다. 그렇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4팀이 만나서, 결승리그가 시작됩니다. (이 대회만 적용했던 독특한 우승국 결정방식) 브라질의 결승리그 첫 경기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를 격침시킨 스웨덴과의 어려운 경기였지요. 하지만 아데미르는 무섭게 폭발했습니다. 이 때 무려 4골 작렬. 스웨덴을 초토화 시키면서 팀의 7-1 대승을 이끕니다. 결승리그에서의 대량득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브라질은 첫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지요. 같은 시각, 강호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비기면서 무승부가 되고 말았으니 더욱 브라질 국민들은 환호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브라질은 스페인을 6-1로 누르면서, 우승에 성큼 다가서게 됩니다. 우루과이는 힘겹게 스웨덴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1승 1무를 기록하지요. 그렇게 1950년 7월 16일,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볼 수 있는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만났습니다.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대회를 위해서 건설된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구름같은 관중이 몰려듭니다. 공식수치로는 19만9천명인데, 실제로는 20만명도 넘은 사람이 경기장에 입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월드컵 최다입장기록임) 브라질은 축제를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긴장되는 경기에서, 아데미르가 어시스트를 했고, 프리아카 선수가 골을 넣으면서 브라질은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흥분이 정말 엄청났지요. 비겨도 우승하는 경기에서 1-0 으로 후반 초반까지 앞서고 있다니!
그런데 축구라는 경기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코 알 수 없는 경기입니다. 1골 차이는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거지요. 우루과이는 후반에 매섭게 공격을 날린 끝에 마침내 경기를 1-2로 뒤집어 버립니다. 최종결과는 브라질의 충격 역전패. 우루과이의 월드컵 우승이 되었습니다.
많은 관중이 실신했고, 심지어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자살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브라질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아데미르는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기쁠 수가 없었지요. 우루과이에서는 이 경기를 두고 기적같은 역전승이었다고 말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이 경기를 두고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부르게 됩니다. 이 때까지 상, 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착용하던 브라질은, 이 날 이후로 카나리아 색깔로 유니폼 색을 변경하게 됩니다.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을 인상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아데미르를 두고, 비운의 득점왕이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득점왕도 팀이 우승하고 그래야 더욱 의미 있어 지는 것이지요.
당시 이 경기를 지켜보았던 9살 소년 펠레는 이 때 브라질의 상황에 대해서 "깊은 슬픔이었고, 마치 전쟁이 끝났을 때 같았다"라고 회상합니다. 결국 이 소년 펠레는 8년후,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후 펼쳐지는 브라질 축구는 항상 월드컵 출장이었고, 상당한 성적을 자주 올려오고 있습니다. 확실히 월드컵 경기 - 특히 토너먼트에서 패배하면 정말 그 표정들이 너무나 침울하지요. 눈물도 자주 볼 수 있고... 승자위주로 기억되는 것이 월드컵의 이치지만, 가끔은 아데미르 같이 득점왕에 올랐으나, 비운의 스타로 남은 선수들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아데미르 영상을 덧붙이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즐거운 월드컵 시청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