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12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명MF 파울로 소사

시북(허지수) 2020. 8. 20. 23:47

 

 오늘은 파올로 소사라는 포르투갈 선수를 소개할까 합니다.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등과 함께 골든 제네레이션 멤버로도 알려져 있는 소사는, 20대 중반부터 지독한 무릎 부상에 시달리느라, 그 찬란한 포스를 오래도록 날리지 못하고 맙니다. 포르투갈이 한 때, 세계에 자랑하던 명미드필더 파올로 소사의 이야기 속으로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Paulo Manuel Carvalho Sousa
 생년월일 : 1970년 8월 30일
 신장/체중 : 177cm / 76kg
 포지션 : MF (수비형 미드필더)
 국적 : 포르투갈
 국가대표 : 51시합 출장

 

 놀라운 재능, 그리고 무서운 활약, 무릎 부상... 안타까운 파울로 소사 이야기

 

 어린 시절 한 때, 학교 선생님을 목표로 하고 있던, 총명한 소년 소사는 축구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1989년 포르투갈의 명문팀 벤피카에서 축구 인생의 막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1989년에는 FIFA 청소년 세계 선수권을 포르투갈이 제패하게 됩니다. 이 멤버들에게는 "골든 제너레이션(황금세대)"이라는 멋진 칭호도 따라붙지요.

 

 벤피카에서도 이윽코 주전으로 자리 잡은 신예 소사는, 루이 코스타, 조앙 핀투 등과 함께 벤피카를 이끌면서 리그우승에 크게 공헌하게 됩니다. 청소년 세계 선수권 때도 그랬지만,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공을 뺏고, 정교한 패스를 날리는 모습이 일품이던 선수였습니다. 1991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이제 포르투갈에서는 파울로 소사를 모르는 인물이 없을 만큼,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1994년 월드컵을 앞두고 포르투갈은 유럽예선을 통과하고자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승부가 관건이었는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도, 끝내 이탈리아가 월드컵에 출장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이 젊은 친구들의 활약은 이탈리아 클럽팀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잘 나가던 소사는 결국 1994년부터 세리에의 명문팀 유벤투스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루이코스타도 같은 해, 피오렌티나로 이적해 이름을 날리지요)

 

 유벤투스에서 소사의 재능은 더욱 돋보이게 됩니다. 명장으로 불리는 마르첼로 리피는 유벤투스에 취임하고 팀의 개선을 시작하지요.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지향하고, 중원부터 압박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지요. 이런 스타일이라면,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소사는 이 역할을 굉장하게 해냅니다.

 

 중앙에 위치한 소사는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며 필드를 누볐고, 외모에 걸맞지 않는 거친 플레이로 공을 빼앗아 냅니다. 그리고, 탁월한 시야를 살려서, 정확하게 패스를 보내면서 게임을 지배합니다. 공격을 만들어 가는 이 능력은 당시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훌륭했지요. 소사는 곧장 유벤투스의 중심축으로 떠올랐고, 공격의 기점이 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유벤투스는 9년만에 마침내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요. 소사는 세계적 클래스의 명선수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듬해 1995-96시즌은 유벤투스 영광의 시즌이었지요. 챔피언스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합니다. 아약스와의 결승전은 유벤투스의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두 미드필더인, 데샹과 소사가 굉장한 압박을 보여주면서, 아약스의 템포를 곧잘 무너뜨립니다. 결국 승부차기 까지 가서 유벤투스는 영광의 챔스 우승을 따냈습니다.

 

 유로96에서도 포르투갈 대표팀은 특유의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축구로 많은 팬들을 사로 잡습니다. 포르투갈 골든멤버가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보여줄 첫 무대였지요. 피구, 루이코스타, 조앙핀투 등 걸출한 멤버들이 멋진 축구를 선보이며, 토너먼트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8강전에서 포르투갈은, 체코의 명선수 포보르스키에게 통한의 일격을 당하며 0-1로 패하고 맙니다. 8강이라니.. 참 아쉽지요.

 

 더욱 아쉬운 것은, 이 무렵 20대 중반부터 소사의 무릎은 고장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유벤투스의 프런트와 사이도 틀어졌지요. 결국 1996-97시즌 직전에 독일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방출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지난 날의 우승에 큰 기여를 했던 소사가 이렇게 굴욕을 겪다니...

 

 당시 떠오르던 강호 도르트문트는 마티아스 잠머도 있었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전 맨유를 잡았고,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만나게 되었지요. 소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하하. 이제 도르트문트에서 뛰게 된 파울로 소사. 그의 화려한(?) 복수는 시작됩니다. 무릎이 좋지 않았지만, 결승전에 뛰게 된 소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유벤투스를 괴롭힙니다. 역시 몸이 안 좋았던 마티아스 잠머도, 발군의 통솔력으로 팀을 지휘하면서 당대 최강팀 유벤투스를 막아냅니다. 결국 이 시합에서 웃은건, 도르트문트와 소사 였습니다. 3-1로 승리를 하며, 14년 만에 독일팀이 챔스무대를 제패한 것입니다.

 

 파울로소사 입장에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지요.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서로 다른 팀(유벤투스,도르트문트)에서 맞이한 챔스우승이라니! 이 순간을 두고 소사는 내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며 회고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이후 부터, 소사는 급격한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1997년 인터밀란으로 이적한 소사는 무릎 부상에 계속 시달리며, 점점 그라운드에 서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후 파르마, 파나시나이코스, 에스파뇰 등을 떠돌아 다니다가, 불과 31살의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를 표명하게 됩니다. 전성기 때의 그 발군의 전술감각과 재능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상처와의 싸움에서 지쳤다며 그라운드를 떠난 그를 두고, 팬들은 그저 박수로 회상할 수 있을 뿐이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소사는 국가대표임에도 벤치를 지키며, 동료들을 응원하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200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생활을 모두 정리하지요.

 

 부상이 없었다면, 누구보다 찬란한 90년대를 대표할 수 있는 명미드필더가 될 수 있었던 파울로 소사. 그는 최고의 시야와, 놀라운 패스감각을 무기로 필드를 누비던 전설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비록 상처로 그 빛나는 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마치며, 포르투갈 황금세대에는 이런 뛰어난 선수도 있었음을 기억해 주신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2010. 10. 07. 초안작성.

 2020. 08. 20.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