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을 사랑한다면, 비틀즈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축구팬이라면 리버풀FC와 에버턴FC가 떠오르고, 혹시 제라드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리버풀 축구팀에는 과거에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레전드 선수가 있습니다. 킹 케니 라고 불리던 전설적 선수에 대해서 소개할까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Kenneth Mathieson Dalglish
생년월일 : 1951년 3월 4일
신장/체중 : 173cm / 73kg
포지션 : FW
국적 :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 102시합 30득점
역대 최고의 리버풀 선수로 불리는 - 킹 케니 이야기
킹 케니로 통하는 달글리시는 유명한 레전드 입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출장과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맨유에서 대활약을 펼친 데니스 로와 함께 스코틀랜드가 낳은 최고의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밌게도 데니스 로의 별명은 킹이었고, 오늘의 주인공 케니 달글리시 역시 리버풀에서 킹 케니로 불리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요. 그럼 킹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출신인 케니 달글리시는 어린 시절부터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팬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은 이루지 못합니다. 레인저스에 입단은 할 수 없었고, 게다가 다른 클럽에서도 축구선수 입단테스트를 하면 자꾸 떨어지고 맙니다. 으이구 성질나네!!! 결국 달글리시는 자신이 동경하던 팀의 라이벌 팀이라고 할 수 있는 글래스고 셀틱 팀에 입단하게 됩니다!
셀틱에서 달글리시의 재능은 눈부시게 꽃핍니다. 한 시합 6골도 기록했으며, 셀틱에서 69-77년까지 활약하며 통산 204시합 112골이라는 높은 골결정력을 보여줍니다. 리그우승도 4차례 차지했습니다. 1971년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지요. 대표로서도 10년이상 부동의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월드컵도 3번 출장했습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기 힘들었지요. 국적이 일단 축구강국이 아닌 스코틀랜드다 보니... 아무래도, 클럽팀의 눈부신 활약에 비해서는 국가대표로는 최다출장, 최다골의 기록 정도로 그의 실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클럽팀의 활약은 무시무시할 정도입니다. PFA 올해의선수상 1회, 기자단선정 올해의선수상 2회, FIFA100 선정, 20세기 위대한선수 22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명예의 전당, 스코틀랜드리그 득점왕 1회. 잉글랜드리그 득점왕 2회. 열거하기에도 힘들 지경입니다. 실은 셀틱의 레전드로도 유명하지만, 리버풀의 레전드로도 더 유명하지요. 앞서 보았듯이 셀틱에서 112골을 넣었고, 리버풀에서도 118골을 넣으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양리그에서 100골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선수였을까요? 달그리시는.
리버풀은 70년대의 전설 케빈 키건이 독일의 함부르크로 이적하자 그 공백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지요. 당시 리버풀은 챔스우승을 차지할 만큼 최강팀 중 하나였고, 그런 리버풀의 선택은 케니 달글리시 였습니다. 1978년, 당시 44만 파운드라는 기록적인 이적금을 지불하면서 그를 데려옵니다. 20대 중반 전성기를 달리던 달글리시는 그 기대를 멋지게 보답합니다. 케빈 키건의 7번을 이어받았고, 이적해 오자마자 20골을 몰아치면서, 팀의 핵심선수로 바로 자리 잡습니다. 이듬해에는 21골을 넣으며 득점왕도 차지하고요.
달글리시의 비결이라면 볼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어떠한 자세에서 공을 받더라도 정교하게 컨트롤 해서 골을 노리는 움직임은 압권입니다. 천성적인 골헌터 였던 그는 예리한 득점감각으로 멋진 골들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뛰어난 스피드와 슈팅력도 물론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플레이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명공격수 중 한 명으로 감히 부를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킹 케니 였습니다.
리버풀에서 영광으로 가득한 6번의 리그우승과, 3번의 챔피언스컵 우승을 경험하는 등 눈부신 황금기를 보낼 수 있었고, 팬들은 그를 너무나 좋아했으며, 킹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오~ 킹 케니~ 1983년 유럽최우수선수상 투표에서도 플라티니에 이어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안팎으로 많은 인정과 큰 존경을 받던 명공격수 였습니다.
선수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잉글랜드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리버풀은 1985년 5월 챔스결승전에서 헤이젤 참사가 발생하면서 (서포터들끼리 패싸움 39명 사망) 리버풀은 국제대회 7년 출장금지 중징계를 받게 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비극으로 당시 리버풀 감독인 조 페이건은 사임하고, 그 대신에 바로 케니 달글리시가 선수겸 감독이 됩니다. 이렇게 30대 중반인 달글리시의 지도자 생활은 시작됩니다.
지도자로서는 리버풀, 블랙번, 뉴캐슬, 셀틱 등을 맡았습니다. 꽤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1991년에 약체 블랙번 팀을 이끌었는데, 당시 1993년 승격, 1995년에는 명FW 앨런 시어러 등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것도 유명합니다. 95년 올해의감독상을 받습니다. (블랙번은 무려 81년만의 리그우승이었지요) 달글리시는 리버풀 팬들이 꼽은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선정되면서, 레전드의 존재감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축구선수로서 가장 기쁜 것은 역시 우승과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달글리시는 참으로 행복한 선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리버풀 팬이라면 달글리시의 이름을 꼭 기억해 주세요. 항상 즐겁게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마치면서 영상을 덧붙여야겠지요. 오늘 준비된 업데이트는 여기까지!
2010. 10. 24. 초안작성.
2020. 07. 0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