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참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굴 써볼까~ 누굴 써볼까~ 이제는 아시아 축구스타들도 좀 써볼까, 빠뜨린 좋은 선수들은 없나. 어쩌면, 산마리노의 마시모 보니니 같은 선수들도 있을텐데, 헉! 보니니는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다 나와있네. (브라보 위키피디아!) 그러다가 구 유고연방 쪽이 생각나서, 조금 살펴보니 역시 프로시네츠키나 스토이코비치 등이 빠져있었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프로시네츠키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이야기 바로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Robert Prosinečki
생년월일 : 1969년 1월 12일
신장/체중 : 182cm / 76kg
포지션 : MF
국적 : 구 유고슬라비아 / 현재는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 64시합 14득점 (유고, 크로아티아 합계)
구유고연방이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 - 프로시네츠키의 이야기
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의 화려함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은 가끔, 향수에 가끔 젖습니다. 그 때의 그 멤버들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따냈어야 하는데...! 비록 그런 영광의 시절은 오지 않았고, 유고연방은 분리되어 이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요. 구 유고연방에서도 테크닉 면에서 톱클래스의 선수를 꼽자면 역시 프로시네츠키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프로시네츠키의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독일로 건너와서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어린 시절을 독일에서 보내고, 10살 무렵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1986년 디나모 자그레브 팀에 입단하고, 곧바로 이듬해 전설의 명문팀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츠르베나즈베즈다)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10대 시절부터 공을 상당히 잘 다뤘던 프로시네츠키는 곧바로 주전자리를 차지했으며, 유고슬라비아 U-20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1987년 세계청소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요. 당시의 멤버들 슈케르나 보반 등과 함께 그들의 놀라운 축구실력은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브라질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대활약을 펼친 프로시네츠키는 대회MVP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일찍부터 재능이 폭발하기 시작했지요.
유고의 클럽팀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에서도 에이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와 함께 중원을 지배하면서 멋진 활약을 계속해 나갑니다. 유고에서 이미 프로시네츠키만한 테크니션이 없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요. 리그 우승 3회를 비롯해서, 1991년에는 챔피언스컵(현 챔스리그)에서 마르세유를 누르고, 첫 우승까지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화려한 명성을 누리며, 1991년 라리가의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하게 되는 프로시네츠키. 그야말로 여기까지 만화에서나 봄직한 활약들입니다 (웃음) U-20 대표로 세계대회 우승 및 MVP, 챔스무대 제패. 동유럽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는 그는 아직 20대 초반입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는지 살펴볼까요.
양발을 잘 사용하며, 근사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키핑력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공을 달고 다니는 듯한 움직임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러다가 강력한 중거리슛을 폭발시키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같은 장관이었지요. 감히 말하자면, 당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입니다. 별명은 발칸의 황금총이었는데, 공을 보기 좋게 다루다가, 한 번에 멋지게 날리는 슈팅이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축구선수 치고는 참 멋진 별명이지요. 강한 킥력에, 부드럽고 정확한 슈팅도 잘 차고, 프리킥에서도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드리블과 감각적인 패스 등의 기본기도 탄탄했던 프로시네츠키는 훌륭한 플레이메이커로도 불립니다.
그렇게, 레알 마드리드로 건너갔으나 잦은 부상이 계속되면서, 기대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는 평입니다. 이후에도 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 세비야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 여러 팀들을 오가면서 활약했고, 현역 마지막은 포츠머스 등에서 활약하다가 2004년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지요. 벨기에, 잉글랜드, 슬로베니아 리그까지 다양한 곳을 맴돌았던 클럽팀의 활약은 오히려 91년 유고 시절의 챔스컵 우승 때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 되는 것 같으니 조금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국가대표 활약상으로 넘어가서, 1991년 이후, 유고는 붕괴되었고, 고심 끝에 그는 크로아티아 국적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1996년 크로아티아의 깃발을 걸고, 유로 96에 참가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는 에이스 수케르 등을 앞세워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크로아티아는 (대회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독일에게 8강에서 패배했지만, 역시 구 유고의 전설들은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립니다!
이윽코 1998년 월드컵 대회. 크로아티아에게는 참으로 오랜기간 기다려 왔던 대무대가 시작됩니다! 거침없는 크로아티아는 독일을 3-0으로 대파하는 등 2년전의 아픔을 복수했고 4강까지 올라갑니다. 4강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아쉽게 1-2로 역전패 당한게, 이 멤버들에게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겠지요. 대업이 눈앞이었는데...! 한편, 3-4위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멋지게 프로시네츠키가 선제골을 넣었고, 결국 3위라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고요.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야 겠네요. 독특한 드리블로 시선을 사로 잡았고, 유려한 테크닉으로 필드를 지배했던 프로시네츠키. (이를테면 우루과이 레코바 같은) 천재 테크니션이 종종 그러하듯, 부진하면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단점도 있고, 체력면에서도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그의 화려한 플레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담으로, 건강이 생명인 프로선수 중에는 드물게도 하루에 2갑 이상씩 담배를 피우는 헤비스모커인데, 이것이 후에 체력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전설 요한 크루이프도 담배를 너무 사랑하다가, 몸에 무리가 오고 말았지요. 여러분, 건강을 위해서 담배는 자제합시다! 마치며 영상을 덧붙입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건강 유의하세요. 잔소리 같지만, 담배는 몸에 정말 안 좋습니다!
2010. 10. 27. 초안작성.
2020. 09. 22.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