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체코의 공룡 공격수, 얀 콜레르 이야기

시북(허지수) 2010. 11. 2. 18:53

 네이버 웹툰의 인기작가 조석님은 "마음의소리"라는 카툰을 끈질기게(!) 연재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축구에 관하여 웹툰을 그리셔서 재밌게 보곤 했습니다. 저도 종종 마음의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이 친구를 써야 해. 이 친구를 써야 해. 어디선가 자꾸 얀 콜레르를 써보라는 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서론을 채웠으니, 곧바로 이야기 출발하지요 (웃음). 체코의 명공격수 얀 콜레르 편입니다.

 프로필

 이름 : Jan Koller
 생년월일 : 1973년 3월 30일
 신장/체중 : 202cm / 106kg
 포지션 : FW
 국적 : 체코
 국가대표 : 91시합 55득점


 노력,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이라는 두 글자로 만들어 줍니다. - 얀 콜레르 이야기

 본론에 앞서 또 한 번 뜬금없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안철수 아저씨가 TV에 나오셔서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직업이 있으며,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내가 그 일에 정말로 맞는지, 맞지 않는 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라는 멋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도하기 전에, 해보기도 전에 "나는 안될꺼야" 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고친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고, 더욱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상처 받는 시간이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좌절해 버리지 않는 것,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글에 앞서서, 얀 콜러로도 많이 부르는데, 독일어 읽기에 따르면 얀 콜러가 맞으며, 체코어 읽기에 따르면 얀 콜레르가 맞다고 합니다. 체코 사람이니까, 얀 콜레르로 읽는게 더 맞을 듯 하여서, 저는 위키피디아를 따라서 얀 콜레르로 표기하겠습니다.

 얀 콜레르는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키가 유달리 컸고, 장신을 살려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선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1994년 체코의 명문팀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본격적인 축구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지요. 거인 공격수의 출현이다! 라고 좋아할 법 하지만, 현실이란 원래 차갑고 냉정한 구석이 있는 면입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특히 실력이 부족하면, 팬들의 사랑대신 비난도 감수해야 하지요.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얀 콜레르의 존재감은 미미 했고, 2시즌 동안 고작 5골 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놀림감이 되기 시작합니다. "쟤는 덩치만 크고, 느려터졌어, 완전 공룡이네 -_-..." 골키퍼 하다가 공격수로 전향해서 갑자기 잘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함에도, 콜레르는 이렇게 둔한 공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아 보였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깐, 계속 노력이 더해지면서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얀 콜레르가 딱 그런 선수였습니다.

 체코를 떠나서 벨기에 리그 로케렌팀으로 건너간 얀 콜레르는 조금씩 스트라이커 본능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비록 우승 한 번 없던 약팀이었지만, 로케렌팀에서 콜레르는 놀랍게 발전해 나갔습니다. 포스트플레이어가 무엇인지 정말로 멋지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콜레르는 최전방에 있다가 볼을 받으면, 그 공을 잘 지켜냈고, 주변 선수가 공격에 가담하면 부드럽게 패스를 건내줍니다. 게다가 슈팅 등의 테크닉 면에서도 점차 나아지더니, 나중에는 놀라운 골결정력까지 보유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공포의 포스트플레이어, 얀 콜레르"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2미터가 넘는 키를 자랑하기 때문에, 제공권 싸움에서 질 리도 없었지요. 어시스트도 잘 하고, 골도 잘 넣으면서, 얀 콜레르는 벨기에리그 최고의 선수로까지 평가받았습니다.

 1998년까지 활약하면서 얀 콜레르가 넣었던 골은 5년동안 24골에 불과했었는데...... 1998-99시즌 얀 콜레르는 그 시즌에만 24골이라는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득점왕에 오릅니다. 정말 체코를 놀래킬만한 대활약이었습니다.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체코 올해의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둔한 공룡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큰 덩치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로 상대를 압도하는 "공포의 공룡"으로 불립니다. 소속팀 로케렌은 클럽사상최고금액을 받으면서 얀 콜레르를 벨기에의 명문팀 안더레흐트로 이적시켰습니다.

 1999년 20대 중반의 나이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얀 콜레르가 등장합니다. 유로 예선에서도 무서운 골 폭풍을 몰아쳤고, 1999년에만 국가대표로 10시합에 나와서 9골을 기록합니다. 이후 체코의 공격은 콜레르가 책임지게 되었지요. 체코의 주포로 자리잡게 됩니다. (유로2000에서는 당대 유럽의 지존들인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조라서 조별리그 탈락 -_-;)

 새로운 클럽팀 안더레흐트에 와서도 잘 적응하였고, 1999-00시즌 20골, 2000-01시즌 22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에 막대한 공헌을 해냅니다. 2000년 벨기에리그MVP로 얀 콜레르가 뽑힙니다. 설움 받던 과거에서,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 그의 축구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안더레흐트의 투 톱, 캐나다인 라진스키와 체코의 콜레르는 여러 클럽들에게 관심 받게 되었고, 콜레르는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도르트문트에서도 팀에 곧바로 적응,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2002년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도르트문트에서 5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면서, 인기스타로 활약했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덧붙이자면, 2002년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뮌헨과 경기 도중, 골키퍼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골키퍼를 투입해야 하는데, 교체선수를 이미 다 써버렸던 것입니다. 아직 경기는 30분 정도나 더 남아있는데... 덕분에 10대 시절 골키퍼를 했다는 콜레르가 떡 하니 골문을 지키게 되었지요 :) 더 재밌는 건, 콜레르가 그 날 레만보다 더 안정감 있게 골키퍼를 잘 해냅니다 (웃음) 다음 날 신문에 이번 주 최우수골키퍼는 콜레르!!! 라는 기사도 떴습니다. 살다보면, 가끔 지난 날의 경험들이 필요할 때가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하하.

 자, 이제 이어서 2004년 유로 이야기. 체코는 조별리그에서 독일과 네덜란드를 박살내면서 토너먼트에 진출합니다. 8강에서도 콜레르의 선제골을 앞세워 3-0 대승을 거두었으나, 아쉽게도 4강에서 당대 벙커축구의 달인 그리스에게 연장 끝에 아쉽게 석패하고 말았습니다. 네드베드, 로시츠키 등이 있던 체코는 정말로 강했고, 피파랭킹에서도 항상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2005년 체코는 랭킹 2위 였고, 월드컵 예선에서 콜레르가 8경기 9골을 몰아치면서, 2006년 대망의 월드컵 무대를 앞두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30대가 훌쩍 넘어서 생에 첫 월드컵을 앞둔 콜레르가 2005-06시즌에 십자인대파열이라는 치명적 상처가 생겼고, 경기장에 당분간 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반년 넘게 재활을 계속해서, 월드컵 무대에는 다행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6년 월드컵 첫 경기 미국전, 체코는 여전히 강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얀 콜레르의 선제골이 터졌고, 로시츠키가 연속으로 골을 추가하면서 미국을 3-0 으로 대파합니다. 그러나, 콜레르는 부상으로 더 이상 뛸 수 없었고, 다음 경기부터 벤치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운은 시작됩니다.

 주포가 빠진 체코는 다음 경기부터 돌파구를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콜레르가 차지했던 비중은 컸습니다. 경기가 안 풀리던 체코는 슈팅을 16개나 날렸지만, 골문 근처로는 겨우 4개가 날아갔고, 그마저도 모두 골이 되지 못했습니다. 체코의 수비수는 퇴장당하기 까지 했고, 결국 유럽의 강호로 손꼽히던 체코는 0-2로 가나에게 패합니다. 다음 경기 이탈리아전도 별 수 없었습니다. 체코는 선수 한 명이 퇴장당했고, 역시 골결정력 부재에 시달리며 0-2로 패합니다. 1승 2패. 체코에게 돌아온 성적표는 월드컵 16강도 못 가본채 탈락이었고, 체코의 피파랭킹은 10위권으로 급락합니다. 많은 이들은 말합니다. 그 때 콜레르만 있었어도 2006년 월드컵에서 체코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깨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월드컵이 끝나고 콜레르는 이제 30대 중반의 노장선수가 되었습니다. 현역 마지막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리그등에서 뛰게 되는데, 이제는 부상의 영향도 있고, 나이도 있고, 전성기 시절보다는 아무래도 퍼포먼스가 다소 떨어졌습니다. 회춘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몇 년 안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겠지요. 2009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도 물러납니다. 국대통산 91시합 55득점, 체코대표팀 역대 최다득점자가 되었던 콜레르지만, 기쁨 보다는 어쩌면 아쉬움이 컸던 늦깎이 국가대표 (1999-2009) 콜레르의 대표팀 커리어 입니다.

 여담으로, 네드베드도 없고, 콜레르도 없고, 이제 체코는 (2010년) 월드컵 유럽예선도 통과못했으며, 피파랭킹도 한국 근처인 30위권을 맴돌고 있습니다. 2012년 유로무대에서 어쩌면 못 볼지도 모르지요. (유로12 예선리그 첫 경기부터 라트비아에게 패배) 그만큼 쉽지 않은 체코의 요즘입니다.

 여하튼, 이제 길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야 겠습니다. 장신의 헤딩 괴물이자, 노력으로 골결정력을 끌어올려서, 명공격수로 불리던 남자, 얀 콜레르. 둔하다며 놀림받다가, 무서운 존재감을 자랑하는 진짜 "공룡"같은 거물 선수가 되어버린 체코의 전설. 그의 동영상을 덧붙이면서 글을 마쳐야 겠습니다. 영상 도중에 덩치가 작은 독일의 필립 람과 볼다툼을 하는 모습이 있는데, 키 차이가 워낙 나서 어른과 아이의 대결처럼 다소 재밌네요.

 10대시절 덩치 큰 골키퍼였던 아이, 20대 초반 둔하다고 야유받던 공격수, 이제는 "he is one of the best players" 라고 불리는 공룡 얀 콜레르. 우리는 저 영어문장을 간편하게 줄여서 레전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출발이 늦어도 괜찮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당신이 어쩌면 한 분야의 대가, 전설이 될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오늘 준비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힘내세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