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990년 월드컵MVP 살바토레 스킬라치

시북(허지수) 2010. 11. 8. 22:43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MVP를 차지한다는 것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가 반드시 특급선수들만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마라도나나 크루이프 같은 선수들이 MVP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1990년과 2010년 월드컵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던 선수가 차지해 버렸습니다. 2010년 MVP는 메시도, 호날두도 아닌 포를란이 탔고, 1990년에는 깜짝 스타로 떠올랐던 스킬라치가 MVP를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은 스킬라치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

 프로필

 이름 : Salvatore Schillaci
 생년월일 : 1964년 12월 1일
 신장/체중 : 171cm / 72kg
 포지션 : FW
 국적 : 이탈리아
 국가대표 : 16시합 7득점


 4부리그 클럽에서 출발해, 월드컵 MVP 까지 - 스킬라치의 드라마 출발합니다 :)

 스킬라치는 엘리트코스와도 거리가 한참 멀었고, 1982년 4부리그에 있던 멧시나 팀과 계약하면서 축구인생을 시작하지요.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탈리아에는 워낙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고, 축구 클럽 숫자도 많아서, 축구를 좋아하고, 좀 공을 찬다면 여러 번 축구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목받지도 못한 스킬라치 였으나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월드컵 MVP가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하기도 하고 ^^

 여하튼 소속팀 멧시나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번의 승격을 거쳐서, 마침내(!) 2부리그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20대 중반까지도 스킬라치는 2부리그에서 두자리수 득점을 두어번 기록한 평범한 공격수에 가까웠습니다. 그나마 이정도까지 성장해 준 것도 팀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고요. 그러다가 1988-89시즌 스킬라치는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소속팀에서 23골을 넣었고, 2부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것입니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상당한 관심을 받게 되었고, 강호 유벤투스로 이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4부리그에서 축구를 시작했다가, 드디어 유베의 공격수가 되다니, 여기까지도 대단한 드라마였지요.

 스킬라치는 특별한 테크닉이 있던 것도 아니고,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전성기 시절에 순발력과 부드러움이 뛰어났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차면 골을 넣을 수 있는지 그 감각으로 승부하는 타입이었지요. 유벤투스에 가입하자마자,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15골을 넣으면서 실력을 증명하는데 성공하는 스킬라치, 이 활약을 인정받으며 1990년에 드디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물론 대표팀에서도 촉망받는 주전은 아니었고, 일단 후보선수...

 1990년 이탈리아는 자국에서 대망의 월드컵을 개최합니다. 그런데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주전공격수이자 90년대 이태리의 간판골잡이 지안루카 비알리가 계속 부진에 빠지고 맙니다. 이태리는 큰 모험을 감행합니다. 석달전 국대에 뽑힌 스킬라치라도 교체투입해보자! 그리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요.

 월드컵 첫 경기, 교체투입한 스킬라치의 결승골로 승리. 이후 선발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에서도 스킬라치 선제골, 바조 추가골로 승리. 이탈리아는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입니다. 오오, 놀라워라. 16강전, 아르헨 바람의 아들 카니자가 브라질을 침몰시킬 때, 이탈리아에서는 갑자기 떠오른 스킬라치가 우루과이를 상대로도 거침없이 골을 넣으면서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8강전에서도 역시 스킬라치가 또 골을 넣으며 아일랜드 격파. 결국 4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4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또 스킬라치가 선제골을 넣습니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었지요. 경기는 후반 카니쟈의 동점골로 승부차기까지 갔고,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는 패배의 쓴 맛을 맛 봅니다. 여러모로 스킬라치의 대활약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놀라웠지요. 한 순간 나타난 무명 스트라이커가 세계를 놀래킨 것입니다. 스킬라치는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였습니다. 절묘한 움직임과 순간적인 번뜩임으로 골을 넣어버리는 모습이 꽤나 멋있었지요.

 갑자기 세계적 스타로 거듭나며 많은 인기와 명성을 얻게 되었던 스킬라치는, 그러나 불과 1년도 그 빛이 가지 못했습니다. 작은 몸으로 열심히 달려온 게 무리가 되었는지, 이후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활약이 20대 중반을 조금 넘긴 시점부터 급격히 떨어져 갑니다. 1991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났고, 유벤투스와 인터밀란에서 활약하지만 명성만큼의 활약은 없었고, 1990년 이후 세리에 무대에서는 더 이상 두 자리 수 득점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현역 마지막은 일본 J리그에서 뛰었고, 1997년 은퇴하게 됩니다. 현재는 고향에 축구학교를 세워서, 제 2의 월드컵 혜성들을 키워나가고 있지요. 글쎄요, 혹자는 한 방에 훅 떠버린 선수로 스킬라치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프로축구의 길을 선택했고, 4부리그, 3부리그, 2부리그에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실력으로 짤릴지도 몰랐던 그는,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겠지요.
 
 앞서 말했듯이 그는 특별히 공을 잘 다루던 테크니션도 아니었고, 그저 동네에서 공을 좀 차던 수 많은 소년 중 한 명일 뿐이었으니까요. 그 험난한 길을 뚫고 2부리그 득점왕까지 올랐던 그 책임감과 열심을 내심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킬라치는 서포터들의 우려 속에서도 89-90시즌 유벤투스의 첫 시즌에 15골을 기록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1990년 준비된 월드컵 스타 였을지도 모릅니다. 월드컵에서 뛰게 되자, 내가 대표로 뽑혀서, 비록 벤치선수지만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가, 주어진 기회를 온 힘을 쏟아부어서 이탈리아를 4강 까지 이끌었으니 (게다가 결승도 거의 눈 앞에 둘 정도였으니!) 한 방에 훅 뜬 것은 엄밀하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필사의 노력으로 그 대무대까지 달려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 대기만성형 스타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이제 스타가 된 스킬라치에 대한 수비수들의 집중 수비와, 그 동안 달려왔던 몸의 고장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월드컵에서만 6골을 넣었던 스킬라치였으나, 이후 국가대표 성적은 월드컵 까지 모두 합해서 16시합 7득점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저는 이 기록도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의 7골에는 그가 달려온 인생의 길들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스킬라치는 상당한 인기를 자랑합니다. 가난과 싸우고자 4부리그팀에서 출발해서 월드컵MVP라는 드라마 같은 인생 여정도 그렇고, 골을 넣고자 집착하는 그 간절함도 그렇고, 패스 하기 싫어해서 동료 로베르토 바조와 싸우기도 해가면서, (또 급 사과하면서 친해지기도 합니다) 그냥 우리네 인생살이 같아서 스킬라치를 꽤 좋아합니다.

 현역 마지막 일본에서 활약할 때도 부상과 싸우면서도, 몇 년이고 팀을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플레이 하는 모습도 그가 대스타 보다는, 어떻게든 축구 하나로 현실과 싸워나가는 한 인간의 진한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월드컵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을 덧붙입니다. 월드컵에서 감격의 골 넣고, 너무나, 너무나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새삼 또 감동을 받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리며, 오늘도 힘내세요, 어쩌면 우리의 출발은 볼품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계속 노력한다면, 10년 뒤 어디에 서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