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57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의 주역, 스키아피노

시북(허지수) 2020. 10. 21. 21:28

 

 이직 문제로 며칠 바빴네요. 업데이트를 이어갑니다. 월드컵이 열리면 많은 나라들이 참가하곤 합니다만, 실제로 우승트로피를 경험한 나라는 10개국도 되지 않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도, 겨우 8개국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2회 이상 우승한 나라는 겨우 6개국. 우리가 잘 아는 축구강호 독일과 프랑스, 이태리, 브라질... 그리고 바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입니다. 사실 우루과이가 1950년에 차지한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은 대단한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의 중심선수였던 스키아피노를 살펴볼까 합니다. 이번 시간은 한 번 먼 과거로 날아가 봅시다.

 

 프로필


 이름 : Juan Alberto Schiaffino Villano
 생년월일 : 1925년 7월 28일 (2002년 작고)
 신장/체중 : 175cm
 포지션 : FW, MF
 국적 : 우루과이
 국가대표 : 21시합 8득점

 

 50년대 세계최고 이적료를 자랑하던 우루과이의 전설적 축구스타 - 스키아피노 이야기

 

 우루과이 명문클럽 페냐롤 출신인 스키아피노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실력으로 주목받습니다. 20살이 넘어가던 1946년부터 이미 우루과이 대표팀의 중심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50년 우루과이는 월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의 월드컵은 지금과는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우루과이는 운이 좋았습니다. 조별리그의 2팀이 기권했고, 남은 상대 볼리비아를 8-0으로 대파하며 결선리그에 진출합니다. 물론 스키아피노가 골도 넣었고요. 문제는 이제부터지요. 왜냐하면, 결선리그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으니까요.

 

 4팀이 올라와서 리그전으로 우승트로피를 다투는 방식이었고,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 우루과이의 진검승부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가 되자, 개최국 브라질과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가 우승을 놓고 사실상의 결승전을 치루게 됩니다. 이미 2승을 챙겨둔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2승 1무로 우승이었고, 1승 1무의 우루과이는 어떻게든 브라질을 꺾으면 역전우승의 실마리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남미 대회에서의 기록을 본다면 - 남미의 강호는 우루과이가 더 맞다고 봅니다. 조금 과감히 정리하자면, 우루과이는 전통의 강호였고, 브라질은 남미의 떠오르는 별 정도 될까요.

 

 브라질은 기세가 대단했고, 홈팀이었고, 경기장에는 20만명의 구름관중이 운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는 시작됩니다. 브라질이 선제골도 넣으면서, 우승을 거의 확정짓는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설마 엄청난 관중이 모인 홈에서 2골을 먹어 역전당할까 싶긴 하죠.. 하하. 그런데 우루과이에는 바로 스키아피노 라는 전설의 스타가 있었지요. 그의 양발에서 모든 운명이 뒤바뀌고 맙니다.

 

 스키아피노는 세련된 테크닉과, 마법같은 패스를 자랑하던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언제나 스키아피노를 축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던 사령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격도 화끈하고 말이지요. 굳이 후대 선수를 갖다붙인다면, 토탈사커의 축 요한크루이프나, 독일의 황제 베켄바우어 처럼, 자신이 항상 팀의 중심선수로 활약하게 되는 그런 선수. 따라서 브라질 입장에서는 스키아피노를 막지 못한게 대단한 화근이 됩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지고 있던 우루과이 스키아피노의 동점 골이 작렬하며 경기는 1-1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종료 10여분을 남겨놓고, 스키아피노의 결정적인 패스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루과이 기쟈 선수의 역전골이 그대로 브라질 골망을 갈라버립니다. 브라질은 이른바 "마라카낭의 비극"을 맞이하면서, 역전패를 당합니다. 기적같은 우루과이의 두 번째 우승. 그 중심에 스키아피노가 서 있었지요. 20만의 홈관중은 너무나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브라질 전체가 슬픔과 충격의 밤이었지요.

 

 유럽의 명문 클럽들이 이 선수를 데려오고자 당연히 움직이지만, 우루과이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럽무대 진출은 그로부터 4년이 더 흘러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AC밀란으로 1954년 이적하기에 이릅니다. 스키아피노의 이적금은 당시 세계신기록이었습니다.

 

 AC밀란에서도 그의 활약들은 계속되었는데,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막대한 활약을 하면서 50년대 강호 AC밀란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스웨덴 출신 그레노리 삼인방, 또한 체자레 말디니 등과 함께 인기스타 였지요. 후에 아예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서,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잠깐 뛰기도 했습니다. 1958년 챔피언스컵에서는 AC밀란과 레알마드리드의 이른바 당대 세기의 시합이 펼쳐집니다. 남미 출신 최강의 선수들인 스키아피노(밀란) vs 디스테파노(레알) 의 꿈의 대결은 역시나 구름 관중을 모았고, 선제골도 스키아피노가 넣습니다만... 레알의 디스테파노가 보란듯이 동점골을 터트리지요. 결국 2-3으로 AC밀란 패하며,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수 많은 활약들은 훗날 전설적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스키아피노는 1999년 발표한, 20세기 위대한 선수 100명 안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합니다.

 

 월드컵 당시를 담은 흑백 영상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데, 또 다시 감상하며 그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로 브라질 중심으로 이 역전패가 회자됩니다만, 우루과이 국민들에게는, 굉장한 자랑거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비록 50년대 이후 우루과이가 경제위기와 함께 축구위상이 다소 떨어지지만, 월드컵 우승은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야기를 마칩니다. 20만명을 침묵시킨 남자 스키아피노.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한 때 세계최고의 이적료를 자랑하던 남자. 우루과이에는 이런 전설적 스타도 있었군, 뭐 그 정도라도 생각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늘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1. 01. 04. 초안작성.

 2020. 10. 2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